시편146편

성경
시편5권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시편 1편

부모가 자녀들에게 꼭 필요한 시기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거쳐 성장하여 자립할 때까지, 스스로 독립하고 스스로 사리 분별을 할 때까지 부모의 집중적인 육아와 돌봄, 그리고 적절한 간섭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간섭하고 지속적인 돌봄을 시도한다면, 그 아이는 정상적인 인격체로 성장하기가 어렵습니다. 부모의 궁극적 목표는 자녀를 이 세상에서 독립적인 인격체로 키워서 내보내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부모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 부모, 믿음의 부모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그 순간까지 자녀를 양육하면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의 손을 잡고 이끌어 가시고 인도하시며, 이 험한 세상을 이겨내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분별하는 능력, 그 지점까지 지속적으로 양육하고 돌보는 능력이 부모에게는 대단히 필요한 덕목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돌보시고 양육하실 때 그러하셨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 우리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바로 제자들을 독립적인 신앙 인격체로 키우고 세워가는 일이었습니다. 때로는 나무라기도 하시고, 때로는 부드럽게 달래기도 하시고, 때로는 견학도 시키시고, 때로는 앉혀 놓고 제자 훈련을 시키시며 제자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한 사람 한 사람 키워가고 돌보셨습니다. 3년 동안 제자들을 다 돌보신 이후에 그들을 파송하시면서 "너희는 가서 제자를 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내보낸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내보내실 때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와 함께하면 이 어려운 일을, 악한 세상을, 힘겨운 세상을 얼마든지 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성령이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제자들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성령받은 제자들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 이후에 스스로 홀로 서서 믿음의 길을 올곧게 걸어갑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키우시고 돌보신 방식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그런 독립된 신앙 인격체로 길러 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여기 가서 기웃거리고 저기 가서 기웃거리며, 이 사람을 의지하고 저 사람을 붙들고 살아가는 참으로 불쌍한 영혼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귀인을 의지 말라

오늘 읽은 시편 말씀은 독립된 신앙 인격을 갖추지 못한 자들이 겪는 불행을 다루고 있으며, 진실로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시 146: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귀인이란 어떤 자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귀인이라고 부르는 자들은 귀티가 나야 합니다. 귀티가 나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권력이 있어야 하며,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좋은 집에 살아야 합니다. 그런 자들을 귀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좋아 보이는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돈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있다가도 없는 것이 돈이고, 없다가도 갑자기 생길 수 있는 것도 돈이기 때문입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도 있다가도 없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한순간 권력이지 화무십일홍이라 했는데, 그 권력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겠습니까? 귀인의 인생도 영원하지 못한 것이 바로 귀인의 숙명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어서 귀인이 바로 도울 힘이 없는 인생들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미련한 인생은 귀인의 이 한순간을 바라봅니다. 이 귀인이 가지고 있는 한순간의 권력과 한순간의 부귀영화를 보며 그 사람 곁에 자꾸 서고자 합니다. 그 사람들 곁에 서서 그들을 의지하고, 그들과 함께 있음으로 인해서 나도 귀인이 될 수 있다는 순간적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이런 착각을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허망하게 망해버렸는지를 말입니다. 사울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습니다. 사울 주변에는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울이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귀인이라고 여기고, 그 귀인을 붙들고 살고자 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진짜 귀인은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눈에는 다윗이 귀인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다윗,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함께 붙들어 주시는 다윗은 그들의 눈에는 일개 도망자에 지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은 다윗에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눈은 사울을 향해 있었습니다. 사울과 함께 있고 그 권력에 부역하는 자들 모두가 함께 망해버리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우리의 눈과 우리의 마음은 미련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남유다가 망할 때 유다 왕실에는 두 파가 있었습니다. 이집트와 함께해야 한다는 친이집트파가 있었고,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바벨론과 함께해야 한다는 친바벨론파가 있었습니다. 나라 안이 시끄러웠습니다. 친이집트파와 친바벨론파가 매일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 혹은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도 아니고 바벨론도 아니라고, 너희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권력자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이 귀인 같고, 이집트가 귀인 같았습니다. 그런데 바벨론도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이집트도 도울 힘이 없는 마른 막대기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모두가 한순간 권력으로 끝나고 망해버리지 않았습니까? 결국 바벨론도 70년이 채 가지 못해서 페르시아에게 망해버립니다. 어떻게 그것이 영원한 권력이 되고 의지할 만한 귀인이 되겠습니까?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을 독립적인 신앙 인격으로 길러내지 못하면, 그들이 성령받지 못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지 못하면, 그들은 자기들 눈에 보이는 귀인들을 의지하고 살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은, 어른들의 역할은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 우리 교회에서 성장하고 자라나는 우리 믿음의 세대들을 오직 하나님만 붙잡고 의지하도록 길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귀인들의 마지막을 시인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시 146:4)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고 생각도 소멸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귀인의 마지막 운명입니다. 호흡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호흡은 곧 생기이며, 하나님이 창조 때 주신 것인데, 귀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권력자, 심지어 왕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로 붙잡고 따라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46:5)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야곱이 어떤 인간이었습니까? 간교한 자가 아닙니까? 거짓말쟁이가 아닙니까? 사람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난 인간이 아닙니까?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여전히 인간성으로 무장되어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한 나라의 이름으로 그의 이름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 간교하고 이상한 사람 야곱을, 사람이 용납할 수 없는 야곱을 하나님이 바꾸어 주셔서 이스라엘이라는 놀랍고 위대한 이름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나를 바꾸어 주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도 돌아보고 살펴보면 야곱 같은 인생입니다. 욕심 많고, 물질에 탐욕 많고, 연약하고 부족하고 죄 있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고 그 하나님을 붙잡고 따라가면, 하나님이 나를 바꾸어 내시고 결국은 이스라엘이라는 위대한 이름을 선물해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혈기 많은 사람이 아닙니까? 좌충우돌하는 사람이고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베드로를 바꾸어 내셨습니다. 결국 그를 바꾸어 내시고 예루살렘 교회의 위대한 영적 지도자로 그를 성장시키고 바꾸어 내셨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바뀌어지고, 사람이 성장하고 변화되는 것은 결코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바 되어야 하고, 우리 자녀들도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바 되어야 합니다. 그때 힘이 있고, 그때 소망이 있습니다.

위대하고 세심하신 하나님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시 146:6-7)

하나님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위대한 분이시며, 통이 크신 분이시며, 손이 크신 분이시고, 스케일이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은 억눌린 자들을 위로하시는 참으로 섬세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신 동시에 세심하게 우리 연약한 자들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따르면, 하나님이 우리의 꿈을 크게 하시고 위대한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또한 이 하나님을 따르면,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위로하실 것입니다. 이 위대하시고 능력 있는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위로자가 되신다고 하니 힘이 나지 않습니까?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녀들을 독립된 신앙 인격체로 양육해야 합니다. 부모의 궁극적 역할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그 순간까지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을 잡고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시고 독립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셨듯이, 우리도 우리 자녀들이 성령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도록 길러내야 합니다.

둘째는 귀인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돈도, 권력도, 귀인의 인생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고 그의 생각도 소멸합니다. 사울을 의지했던 자들이 함께 망했고, 이집트와 바벨론을 의지했던 자들도 모두 패망했습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도울 힘이 있으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간교한 야곱을 이스라엘로, 혈기 많은 베드로를 위대한 영적 지도자로 바꾸어 내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세심하게 돌보시고 진실하게 위로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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