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시편 147편
운동 경기에서 1대1로 시합을 해보면 상대가 나보다 약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기량이 월등하고 출중하며 상대가 부족하고 모자란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감이 생기고 우쭐해집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의 기량이 탁월하고 특별해서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당황하고 놀라다가 그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결국 그 상대를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겨뤄볼 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기량을 가진 상대를 만나고 그 기량이 모든 선수들을 초월하여 아주 특별하고 탁월하다고 느껴지면, 그 다음에는 같은 선수이면서도 상대방의 팬이 되어버립니다.
운동 경기에서 같은 선수들끼리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상대가 워낙 특별하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순간에 그렇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 참으로 교만한 인생은 하나님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얼마나 큰 질적 차이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그 하나님의 손으로 빚으신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며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는 전능자이시지만, 인간은 스스로를 돌아보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의 운행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시지만, 우리 인간은 바로 한 치 앞도 모르는 무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이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와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시 147:1)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하다고 했으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 마땅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찬송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반드시 하나님 앞에 곡조 있는 노래를 불러야만 그것이 찬송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고, 우리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며,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고 피조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마땅한 일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 마땅한 일이 오늘 수많은 성도들에게는 마땅한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마치 하나님께 선심 쓰듯이 드리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행하는 이율배반적 행동입니다. 예배 드리는 것이 일반적이고 마땅하다고 말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년에 한두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그렇게 예배 드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면서도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과연 그렇게 생각하시겠습니까? 피조물이 해야 할 마땅한 바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라 했는데, 여기에 다른 토를 달지 않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선심 쓰듯이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자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이런 단계를 넘어서서 예배를 방해하는 악한 자들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출애굽 당시의 바로 왕이었습니다. 모세가 바로를 찾아가서 출애굽의 명분을 설명하는데, 내 백성을 보내라, 이 백성들이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하나님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라고 말합니다. 출애굽의 명분은 바로 예배였습니다. 예배가 억눌린 자들, 430년 동안 제대로 예배 드리지 못한 자들을 해방시켜서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것이 출애굽의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그것을 거절합니다. 가서 너희 일이나 하라고 했습니다. 벽돌이나 구우라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괴롭혔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열 가지 재앙이었습니다. 마지막은 장자의 죽음이었습니다. 홍해에서 최정예 군대가 모두 수장당합니다. 이것이 예배를 방해하고 예배를 막아선 자의 마땅한 결말입니다. 예배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고 하나님과 흥정의 대상도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피조물이 해야 할 마땅한 일입니다.
세우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시 147:2-3)
이것은 하나님께서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새롭게 하시는 장면을 노래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세우시는 방식이 참으로 독특하고 특별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세우셨습니까? 처음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택하시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아름답게 세워 가셨습니다. 다윗을 통해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찬란하게 복 주시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타락하고 변질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십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하게 하시고 포로로 끌려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세우시는 방식은 믿음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그들을 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우시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망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대로 영원히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70년 동안 포로기를 거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우시는 또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고통 가운데 훈련시키고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 세 번째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우시는 방식은 포로기에서 그들을 돌아오게 하신 것입니다. 1차, 2차, 3차 포로 귀환을 거치게 하시지 않습니까? 1차 포로 귀환자들은 성전을 세우고, 2차 귀환자들은 성전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고, 3차 귀환자들은 성벽을 세우고 성문을 닫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세워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백성들을 세우시는 방식도 이와 같이 독특합니다.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예배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들을 무너지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 무너짐이 영원한 무너짐이 아니고 하나님이 새롭게 세우시기 위한 방식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고난 중에 오래 머물게 하십니다. 그 후에 다시 그들을 돌아오게 하시고 믿음의 집을 짓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우시는 방식이 이와 같기 때문에 시인은 시간이 지난 이후에,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에 하나님이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고 이스라엘을 세우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에도 이렇게 개입하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주를 운행하시는 하나님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시 147:4)
하나님이 별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별들의 수를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별들의 이름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며 불러내십니다. 우리 인간이 알고 있는 별이 과연 몇 개나 되겠습니까? 불과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 온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존재하는데 인간의 눈에 보인 별들, 인간의 눈에 파악된 별들, 그 별들의 운동 주기를 알고 있는 별들이 몇 개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별들의 수효를 세고 계시고 이름을 불러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시 147:8)
하나님께서는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고 비를 준비하셔서 이 땅에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별들의 운행을 관장하고 계시고 비구름을 준비하셔서 이 땅에 때가 되면 비를 내려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별들의 운행을 관장할 수 있습니까? 거기에 개입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비 한 방울이라도 하늘에서 떨어지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이 신경 써야 할 일은 별들의 운행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늘에 비가 내리도록 할 수 없기 때문에 비를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만 맺고 있으면 온 우주를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비를 내리게 하시고 시기가 되면 별들의 운행을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내가 책임질 수가 없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사업상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일터에서도 많은 사람들과 얽히고설켜서 살아갈 것입니다. 모든 관계 속에서 살게 되는데 이 관계들을 우리가 어떻게 관장할 수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만 좋으면 됩니다. 하나님과 깊고 바른 관계, 올바른 관계 가운데만 살면 하나님이 별들의 운행을 책임지시고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돌보고 책임지시지 않겠습니까?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시 147:11-12)
하나님을 찬송하고 찬양하기만 하면, 올바른 예배자로 살기만 하면 나머지는 책임지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간단하고 쉬운 일, 이렇게 기본적인 일을 우리는 외면하고 내가 무언가를 해보려고만 계속해서 노력합니다. 그러나 잘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별들의 운행을 책임질 수 없고 우리가 하늘의 비구름을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디 믿음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위임받은 일을 하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아름다운 관계 가운데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가시면 주께서 그다음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배가 피조물의 마땅한 본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하고 아름답고 마땅하다고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선심 쓰듯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출애굽 당시 바로가 예배를 방해하다가 열 가지 재앙으로 심판받은 것처럼, 예배는 타협이나 흥정의 대상이 아닙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방식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세우실 때 먼저 아름답게 세우시고, 타락하면 망하게 하시며, 고난 중에 연단시키신 후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믿음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한 방식으로 역사하십니다. 무너짐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영원한 무너짐이 아니라 새롭게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식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비구름을 준비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도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일은 우주의 운행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여호와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 위임받은 일에 충실하며 깊고 아름다운 관계 가운데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