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49편

성경
시편5권

새 노래로 찬양

시편 149편

인생은 결코 한결같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을 되돌아보면 희노애락이 항상 함께해 왔습니다. 기쁜 일이 있어서 그 기쁨으로 평생을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아 고통과 슬픔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그 고통도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고통은 끝나고 행복한 일, 즐거운 일이 다시 찾아옵니다. 인생에는 항상 오르내림과 굴곡이 있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나 같은 마음, 곧 평정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생이 항상 등락을 반복하기 때문에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좋으면 너무 기뻐하고, 슬프면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슬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의 한계요 약점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결같아야 하는데 이 한결같음을 유지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은 우리 인생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인생이 좋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인생의 깊은 밤을 지날 때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찬양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시인은 언제나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찬양함을 믿음으로 보이라고 권면합니다.

새 노래로 예배하라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시 149:1)

시편은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하라는 말씀을 자주 합니다. 여기서 '새 노래'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보다 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찬양할 때마다 처음 보는 노래를 가지고 오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이 매번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라는 뜻입니다. 성전에 올라올 때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마다 한 번도 예배 드려 보지 않은 사람처럼 항상 기쁨과 설렘을 가지고, 마치 처음 예배드리는 사람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드리는 이 예배가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예배인 것처럼 늘 한결같은 새 마음을 가지고 예배드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사람이라는 존재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같은 행위가 여러 번 반복되다 보면 우리를 습관에 젖게 만듭니다. 예배가 습관에 젖어 버리면 감격도 사라지고, 감동도 사라지고, 기쁨도 사라지며, 항상 늘 그랬듯이 그냥 몸뚱아리만 와 있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예배가 우리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항상 새 노래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 앞에서 기쁨과 감사로 오늘도 내일도 우리 인생 마치는 날까지 늘 예배드리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모임에서 찬양하라

시인은 성도의 모임 중에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성도의 모임 중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성도들 가운데 시험에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속사정을 들어보면 성도의 모임 가운데서 시험에 든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를 하려고 그 자리에 나갔다가 오히려 그곳에서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성도의 모임이 여호와를 찬양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리는 모임이 아니라, 자기 자랑과 자기 인생의 헛되고 헛된 것을 드러내는 자리가 되어서 오히려 성도를 시험에 빠지게 하는 모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의 모임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임이 되도록 나 한 사람부터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야 합니다.

과거 유대인들은 성도의 모임을 자기를 자랑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특별히 바리새인들은 큰 길거리 어귀에 서서, 회당에 서서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하루 세 번씩 큰 소리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으며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도의 모임을 자기의 잘남과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는 자리로 삼았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예배 자리에서 헌금함 위에 금덩이를 얹어놓고, 많은 돈을 던져 넣으며 자신의 부를 과시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는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시험에 들었겠습니까?

부디 성도의 모임 중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이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가 모이는 모든 성도의 모임 자리가 나로 인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은혜의 자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 한 사람이 모임의 성격을 바꾸어 가면 됩니다. 그러면 성도의 모임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은혜의 자리로 온전히 새로워질 것입니다.

지으신 이를 즐거워하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 (시 149:2)

여기서 이스라엘은 나라 이름이기도 하고, 성도 각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객관적으로 보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나라인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주변에는 강대국들이 많았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이집트가 있고, 주변에 모압과 암몬이 있으며, 아람 제국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호전적이고 이스라엘을 호시탐탐 노렸던 블레셋도 있었습니다. 동쪽으로 더 멀리 나가보면 시기에 따라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같은 제국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틈바구니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객관적으로 보면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있어야 농사짓고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농사를 시작할 때 비가 내려야 파종할 수 있고, 농사를 끝낼 때쯤에 늦은 비가 내려야 먹고 살 길이 열리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집트는 그렇지 않습니다. 비옥한 나일강 주변에 삼각주가 있어서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별로 즐거워할 일이 없는 나라가 아닙니까?

"하나님, 왜 우리에게는 저 이집트와 같은 비옥한 땅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왜 우리에게는 저 앗시리아와 바벨론, 페르시아 제국처럼 강력한 군대를 주지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따져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16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시 16:6)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셨기 때문에 귀하고 아름다워서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나라, 이 민족, 전 세계 지구상에서 보면 우리나라가 작고 작은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기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민수기 14장을 보면 정탐꾼 열두 명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했습니다. 하나님은 매우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악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땅을 함부로 자기 마음대로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나라, 이 민족,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 가정과 우리 일터를 즐겁게 여기고 아름답게 여기며 귀하게 여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이 이스라엘은 우리 각 개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즐거워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을 보면 "하나님, 왜 저를 이렇게 지으셨습니까?"라는 원망이 있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잘나지도 않았고, 예쁘지도 않았고, 능력이 탁월하지도 않고, 좋은 집에 태어나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그 자체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갈수록 복 주실 것입니다. 타인과 비교하며 원망하고 불평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귀한 장점과 영원한 구원의 자리로 인도하신 그 하나님께 감사하고 살면, 감사가 우리 인생의 곳간에 매 순간 가득 차고 넘칠 것입니다.

침상에서도 노래하라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시 149:5)

성도들이 영광 중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침상에서의 찬양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침상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루의 수고를 다 마치고 저녁에 잠자리에 눕는 침상입니다. 그 침상에서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온종일 열심히 달리고 수고했습니다. 온종일 수고한 저를 이 침상에 편안히 눕게 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침상이 병들어서 누워 있는 침상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 몸이 아파서 건강하지 못해서 침상에 자리 보전하고 누워 있는데,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은 영화로우시다, 하나님은 기쁘시다"라고 노래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침상의 두 가지 의미가 우리에게 강하게 다가옵니다. 시인은 침상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라는 말만 던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병상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깊은 신앙, 뿌리 깊은 영성이 우리 인생에 있어야 합니다. 병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나를 낫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며, 병들어서 아프다가 이 세상 떠나게 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을 찬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찬양했다가 상황이 바뀌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매 순간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믿음의 백성으로 오늘도 올곧게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예배를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드려야 합니다. 예배가 습관에 젖어 버리면 감격도, 감동도, 기쁨도 사라집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늘 새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드리는 이 예배가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한결같은 새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성도의 모임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도의 모임이 자기 자랑이나 과시의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내가 먼저 바르게 서서 그 모임의 성격을 바꾸어 가면, 성도의 모임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은혜의 자리로 새로워질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 주신 구역이 실로 아름답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타인과 비교하며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그 자체로 기뻐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나라와 가정과 일터를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침상에서도, 심지어 병상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깊은 신앙의 뿌리가 우리 인생 가운데 굳건히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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