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찬양
시편 150편
시편 전체의 주제는 시편 1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편 1편 시작이 어떻게 시작되고 있습니까? "복 있는 사람은"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시편 전체는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이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시편 1편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어떤 장점이 있겠습니까? 그의 뿌리가 시냇물과 깊이 깊이 닿아 있습니다. 땅 위는 가뭄이 오고 땅 위는 뜨겁고 마른다 할지라도 그러나 그 뿌리는 생수와 함께 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뿌리는 촉촉하게 젖어 있고 그 뿌리를 통해서 물을 길어 올리고 양분을 길어 올립니다. 그래서 줄기와 가지와 잎으로 공급합니다. 그래서 그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꽃을 피울 것이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그러므로 열매 맺는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열매 맺는 일에 성공하고 그 열매는 그 나무를 유익하게 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 열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복되게 하고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악인도 나오지 않습니까?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했습니다. 시류에 따라 이쪽으로 저쪽으로 흘러갑니다. 바람에 나는 겨는 일견 볼 때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열매가 없는 인생들입니다. 시편이 이어져 가면서 다윗의 시편이 계속 나오는데 다윗은 악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이른바 다윗에게 있어서 악인은 원수인데 다윗의 원수 시편을 보면 악인의 결말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권력을 따라 움직입니다. 악인은 돈이 있는 곳을 쫓아다닙니다. 악인은 자기 마음에 따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 악인은 열매가 없는 인생이며 그 인생은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또 시편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 뒤편으로 가면 성전에 올라가는 이의 노래들이 나옵니다. 결국 복 있는 자는 성전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전을 찾는 열심이 있는 자들입니다.
포로기 이후에 그들은 순례자가 되었습니다. 과거 성전을 소유하고 있었을 당시 그때 그들은 성전의 본질을 지키지 못해서 망하고 쫓겨갑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그들은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전으로 올라오며 지난날의 잘못된 삶을 회개합니다. 결국 복 있는 자는 하나님 전에서 행복을 찾는 자들입니다. 그 이후로 가면 복 있는 자는 찬양하는 자들임을 노래합니다. 찬양하라, 새 노래로 찬양하라 등등의 찬양의 가사들이 많이 나옵니다. 복 있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읽은 마지막 시편 150편도 역시 찬양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하지만 이 찬양은 우리가 입을 벌려서 곡조 있는 기도로 올려드리는 그 찬송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보다 더 광범위합니다. 우리 인생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찬양이 되어야 함을 지속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관된 찬양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 150:1)
성소와 권능의 궁창은 어디를 말하는 것입니까? 성소는 예배드리는 공간인 성전입니다. 권능의 궁창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분법적, 이원론적으로 사는 사람이 꽤 많이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교회 안에서는 거룩하게 살다가 예배당 문밖을 나가면서부터 세상 사람들처럼 삽니다. 옷을 바꿔 입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속성이 있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한결같아야 된다고 말합니다. 성소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 권능의 궁창에서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전 안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데 밖에 나가서 그렇지 않다면 그는 가짜입니다. 금은방에서는 빛나는 보석처럼 보였는데 금은방 문을 나서자마자 빛나는 보석이 아니면 그 보석은 가짜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우리 스스로 질문해 봐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찬양하라고 하셨습니다. 성전 안에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주를 찬양해야 하는데 성전 밖에서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면 그는 진짜 성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성소에서도 또 권능의 궁창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 뜯어보면 과연 우리가 성소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인가 자문해 봐야 됩니다. 과거에 그렇지 않은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남유다가 망할 때 성전 안에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도적들이 많았습니다. 성전의 권력자들이 그랬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옷을 입고 예배를 집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권력에 기생하고 아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성전 안에서 입으로는 찬송가를 불렀지만 그들은 여전히 돈을 탐하고 권력에 기생하는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 시절 성전 안에 돈 바꾸는 자들, 비둘기 파는 자들, 유대인의 명절을 핑계 삼아서 한몫 챙기려 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입니까? 찬양한다 하지만 사실은 성소에서 곶감 빼먹고 있는 자들입니다. 오늘날도 그런 자들이 왜 없겠습니까? 교회를 이용하려고 하는 자들, 성전 안에 있으면서 내 믿음 좋은 것처럼 보이면서 성도들을 사기 치는 자들,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성소에서 찬양한다고 말하겠습니까?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성소에서 너 정말 하나님을 찬양하느냐, 너는 정말 교회 안에 있는 참된 성도가 맞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한결같고 변함없는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의 찬양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 150:3-5)
다양한 악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이런 다양한 악기가 다 동원되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1차적인 의미입니다. 과거 30년, 40년 전만 하더라도 교회 안에서 드럼을 치는 것, 기타 치는 것을 어른들이 싫어하셨습니다. 그때 가장 많이 인용했던 구절이 이 구절입니다. 다양한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셨는데 왜 기타는 안 됩니까? 왜 드럼은 안 됩니까?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과연 그런 의미만 있겠습니까?
사실 이런 악기들 중에 다양한 악기들 중에 내가 잘 연주할 수 있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 중에 내가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사람 가르치는 것을 잘합니다. 그런데 음식을 잘 만들지를 못합니다. 어떤 이는 몸으로 봉사하는 것은 잘합니다. 하지만 찬양을 잘하지를 못합니다. 등등의 자기의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고 성품이 있고 기질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하는 것만 내세워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의 단점도, 나의 부족함도, 내 약점도 모든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와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끔 간증을 듣지 않습니까? 그런데 간증이 성공한 자들의 간증으로만 치부되는 것은 불편한 일입니다. 인생의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한평생 살다 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골짜기도 만나고 강도 건너야 되고 물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인생을 총체적으로 집합해서 이 모든 인생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죄를 지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 죄마저도 하나님께서 나를 깨닫게 하시는 방법으로 사용하시고 죄 지을 때 나를 책망하시고 혼내셔서 다시 하나님 보좌 앞으로 우릴 인도하십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입니다.
실패가 왜 간증이 되지 못합니까? 사업에 실패한 것, 망한 것, 관계에 실패한 것, 죄 지은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위대한 임금이었던 다윗의 비행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습니까? 그분을 욕보이려고 성경의 기자가 그렇게 기록했겠습니까? 위대한 사도 베드로의 비행과 그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사실이 성경에 버젓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를 책망하려고 영원토록 그를 괴롭게 하려고 성경에 기록된 게 아닙니다. 그의 약점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의 약함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가 됩니다. 우리의 부족함이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됩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약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강하게 하시고 나의 약함 위에 하나님께서 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자랑하셔야 됩니다. 부족함이 하나님 앞에 찬양이 되고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이렇게 부족하고 모자란 인간을 들어서 하나님 일에 사용하시는 주께 모든 영광 올려드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호흡의 찬양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이 호흡은 내가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고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지으신 이후에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이 호흡은 바로 그때 불어넣어 주신 생기입니다. 하나님의 호흡입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우리에게 들어와서 우리가 생명이 되고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호흡을 주신 분이시니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붙여주신 이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왜 살게 하시겠습니까? 돈 벌라고, 그저 이 땅에서 하루하루 더 생명을 연명하라고 살게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뜻이 있어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기, 그 호흡을 우리에게 주시고 오늘도 그대로 두시는 이유, 거두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두신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발견할 때 그 발견한 뜻이 사명이 됩니다.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냥 사는 것입니다. 의미 없이 사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밥 먹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나에게 호흡을 주시고 생기를 주시고 나에게 인생을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됩니다. 기도하고 찾으시고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시면 그것이 바로 복된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삶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성소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권능의 궁창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한결같은 삶이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서만 거룩하고 밖에서는 세상 사람처럼 사는 이원론적 삶은 가짜 신앙입니다. 금은방에서만 빛나는 보석은 가짜입니다. 어디에서나 변함없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는 모든 것을 찬양의 도구로 삼아야 합니다. 다양한 악기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처럼 우리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과 약점, 실패와 부족함까지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가 됩니다. 다윗의 비행과 베드로의 부인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그들의 약점마저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처럼 우리의 약함을 자랑하며 그 약함 위에 일하시는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셋째는 생명의 목적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뜻을 발견하면 사명이 되고, 발견하지 못하면 그냥 하루하루 연명하는 삶이 됩니다. 오늘도 호흡을 주시고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 기도하며 그 영광을 위해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