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4장

성경
룻기

책임의 사람

룻기 4장

사람이 사람답다고 여겨지는 것과 그 사람이 믿음직하게 여겨지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참으로 귀한 경험입니다. 우리가 만나고 상대하는 사람이 책임감이 강하고 누군가를 인격적으로 대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람답고 믿음직하다고 느낍니다.

목회자가 목회자답다고 할 때는 목회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사람을 존중하며 인격적으로 대할 때입니다.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식당 주인이 참 존경스럽고 그 식당 주인다워 보일 때는 음식에 진심이 묻어날 때입니다. 만약 그저 돈만 벌기 위해서 장사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람답고 식당 주인답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참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도가 성도답고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다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책임감 있는 사람, 의무를 다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무척 존중하고 사랑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보아스가 바로 그런 인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율법과 현실

이스라엘에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아주 독특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엘제도였습니다. 고엘제도는 다른 말로 기업을 무를 자의 제도라고도 불렸습니다. 고엘이라는 말은 가까운 친족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아내를 취하고 결혼했는데 자녀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면, 가장 가까운 친족이 그 여인을 취하여 자녀를 낳아줘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는 자기의 아이가 아니라 죽은 자의 아이가 됩니다. 그 아이가 장성하면 재산도 분할해주어야 하고, 유산도 남겨줘야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죽은 자의 기업으로 귀속되어 자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가까운 이웃이나 친족이 땅을 잃었거나 밭을 잃었을 때, 고엘인 가까운 친족이 땅을 되찾아주어야 했습니다. 이 경우에도 자신에게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오경에 고엘제도를 정해두셨지만,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이 제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누가 그런 일을 사서 하려고 하겠습니까?

특히 룻기가 배경으로 하는 시대는 사사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실종된 시대,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사람들이 율법에 기록된 말씀을 지키기나 했겠습니까? 레위인들부터 사사들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던 시대였으니, 이런 손해 가는 일을 누가 하려고 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제도는 있으나 없으나 한 제도, 율법에 기록만 된 화석화된 제도였습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이 제도를 다시 실행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전날 밤 타작 마당에서의 약속대로 날이 밝자 기업을 무를 자 중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만납니다.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을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룻 4:1)

보아스는 그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합니다. 나오미와 룻이 돌아와서 먹고 살 길이 없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땅을 팔려고 하는데, 네가 기업을 무를 자의 첫 번째 순위이니 그 땅을 대신 사서 그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룻도 책임지라는 의미가 함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반응은 예상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대조되는 선택

"보아스가 그 기업을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룻 4:3-4)

처음에는 그 사람도 승낙합니다. 하지만 보아스가 전체적인 조건을 설명하자 태도가 완전히 바뀝니다.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그 기업을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룻 4:5-6)

이 사람은 땅을 사는 것까지는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서 자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땅을 사서 다시 나오미와 룻에게 돌려주고, 룻을 취하여 자녀를 낳아주며, 그 자녀를 죽은 자의 이름으로 세우는 것은 절대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 당시에는 기업을 무를 자의 책임을 거부할 때 신을 벗어서 이스라엘 장로들 앞에서 권리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이 사람은 신을 벗었고, 이제 모든 책임이 보아스에게 넘어왔습니다.

보아스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성문에서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장로들 앞에서 당당하게 선언했습니다. 내가 기업을 무를 자의 책임을 다하고 룻을 취하여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입니다.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과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룻 4:9-10)

이것은 보아스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보아스는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부자일수록 남길 유산이 많고 상속할 유산이 많은데, 한 방울 피도 섞이지 않은 가족에게 자신의 재산을 주고, 그것도 자기 이름이 아닌 타인의 이름으로 남겨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하나님 말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그대로 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유불리를 많이 따집니다. 유리하면 하고 불리하면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본능적입니다. 그런데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말씀이 때로 불리하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지키면 당연히 손해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이 신앙의 유불리를 따진다면 하나님 앞에서 낯을 들 수가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졌다면 어떻게 십자가를 질 수 있었겠습니까? 전적으로 불리한 언약이었는데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유불리를 따지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라고만 하셨습니다. 보아스는 자신의 삶에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지 않고 기업을 무를 자의 책임을 말씀에 기록된 대로 온전히 행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룻 4:21-22)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원래라면 여기에 보아스의 이름이 기록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아스가 룻을 취하고 낳은 자녀 오벳은 율법상 말론의 아들로 기록되어야 했습니다. 그 당시 율법에 의하면 보아스는 이 족보에서 사라져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장 5절에서도 같은 상황이 나타납니다.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더라"고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법대로라면 "말론은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더라"고 해야 정상적인 율법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간 보아스의 이름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초월하여 하나님 나라의 기록 방식대로 보아스라는 이름을 룻기에도 기록하시고, 예수님의 족보인 마태복음 1장에도 그대로 기록해 두셨습니다.

자신의 썩어 없어질 재산을 지키느라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않은 보아스를,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영원히 남을 위대한 이름으로 만드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읽히도록, 오고 오는 모든 사람들이 이 말씀을 붙들고 살 수 있도록 기록해 두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얄팍한 유불리를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보아스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때로는 불리하게 다가올 때도 있고, 그 말씀 그대로 지키면 당연히 손해가 될 때도 있지만, 신앙의 유불리를 따지면 하나님 앞에서 낯을 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전적으로 불리한 십자가의 언약을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입니다. 사사시대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실종된 시대,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그 시대에도 보아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레위인들과 사사들까지도 타락한 시대였지만 보아스의 성실한 모습이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성실한 자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록하십니다. 자신의 썩어 없어질 재산을 지키느라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않은 보아스를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율법을 초월하여 하나님 나라의 기록 방식으로 보아스의 이름을 룻기와 예수님의 족보에 영원히 남을 위대한 이름으로 기록해 두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얄팍하게 자기 인생의 유불리를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남을 하나님의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해 두시고 기록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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