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3장

성경
사무엘상

절대적 신앙

사무엘상 13장

요즘은 우리 생활 깊숙한 곳까지 상대주의적 윤리, 상대적 사고가 굉장히 뿌리 깊게 들어와 있습니다. 절대적이라는 말은 이미 용도폐기된 고루한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건 반드시 해야 되는 일이야", "이건 절대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공동체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때 가 봐서 상황을 봐가며 그때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고, 하기 싫으면 안 할 수도 있는 거고, 누가 반대해도 해야 되는 일이면 그냥 내가 하기를 원하면 하는 일이다"라는 사고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역시 그런 시대적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는 상당히 자유롭고 때로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상대적 사고가 윤리 도덕의 영역에 들어와 버린 나머지 요즘 우리 사회가 아주 혼란스럽게 되고 말았습니다.

과거에는 절대적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공동체 사회 전체가 지키려고 노력하고 살았습니다. 가정은 절대적인 영역이었습니다. 그래서 고통스럽더라도 힘에 겹더라도 가정을 지키려고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사회가 애를 쓰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가정이 절대적인 영역이 깨어지고 무너집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 간통죄가 폐지되지 않았습니까?

동성애가 이처럼 사회 저변에까지 들어와 버린 것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상대적인 사고가 윤리 도덕의 영역에까지 들어와 버렸기 때문입니다. 남녀가 사랑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산다는 이런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절대적인 사고가 무너지니 동성애가 어느샌가 우리 마음속 또 우리 사회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부득이하여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사울도 "부득이하여"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우리도 자주 쓰는 말입니다. "어쩔 수 없어서", "상황이 그래서", "부득이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 이런 말을 보면 이건 상대주의에 물든 우리의 핑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해야 될 것이 있고 해서는 안 될 것이 있는 절대적인 윤리가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붙잡고 있어야 되고 기억하고 있어야 됩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난 이후에 백성들에게 인정받은 계기는 암몬 사람을 길르앗 야베스에서 쫓아낸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광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왕을 원했다"고, "우리도 이제 다른 나라처럼 강력한 왕을 갖게 해서 행복하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광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었던 사무엘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이면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사람을 바라볼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사울을 보면서 사무엘도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올려야 하는데 사람들의 인기에 취해서 살아가다가 일을 그르칠까 봐, 하나님께 버림받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백성들과 사울에게 공히 경고했습니다. "여호와만 섬기라"고, "그래야 너희가 오래 하나님 앞에서 복 받고 인정받고 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사면초가

바로 그 일 이후에 일어난 일이 오늘 본문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진을 쳤습니다. 그들의 군대의 규모가 실로 엄청났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삼상 13:5)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군대가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전면전을 벌이려고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웠습니다. 이들은 아직까지 블레셋과 전면전을 벌일 만큼 강한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삼상 13:6-7)

백성들은 흩어지고 어떤 사람은 요단강을 건너 요단 동편으로 가버리고 모든 백성은 떨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울이 이런 백성들을 이끌고 전쟁을 해야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전쟁하기 전에 사무엘과 함께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전쟁하러 나가야 되었습니다. 사무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삼상 13:8)

사면초가였습니다. 약속한 7일 안에 사무엘이 오지 않았고 백성들은 그 7일을 기다리다가 이제 모인 군인들조차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사무엘은 오지 않고 번제는 드릴 수 없고 백성들은 흩어지고 대적하고 있는 블레셋 군대의 수는 실로 엄청나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사울은 이렇게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삼상 13:9)

사울의 변명

사실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사울을 책망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잘못이 있다면 사무엘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본인이 약속한 7일 안에 오지 않아서 사울이 어쩔 수 없이 번제를 드렸다고 우리는 그렇게 사울의 편을 들기가 쉽습니다.

사무엘이 와서 번제를 드린 사울을 책망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삼상 13:11-12)

사실 사울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나님 앞에 하고 말았습니다.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습니다."

제3의 길

사실 우리는 사울에게 두 가지 선택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하지 않고 포기하고 항복하고 돌아가 버리든지, 아니면 사무엘이 오지 않으니 자기 손으로 번제를 드리고 전쟁하러 나가든지. 그런데 정말 과연 사울에게 이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겠습니까?

하나님을 왕으로 삼는 사람, 하나님을 진정한 인생의 주인으로 삼는 사람,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사람에게는 제3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바로 기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울은 기도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사면초가에 처해 있습니다. 사무엘은 오지 않고 백성들은 흩어지고 블레셋 군대는 진치고 있는데, 제가 명색이 왕인데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 저를 왕으로 세우셨는데 제가 지금 여기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한테 물어봐야 되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는 왕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 앞에 한마디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마치 진짜 왕인 것처럼, 이스라엘의 왕은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 한 번도 여쭈지 않고 묻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는 자의 태도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사무엘이 견고하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울에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겨야 된다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가장 중요한 태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제3의 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해치우는 자

또한 두 번째 사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배를 마치 해치우듯이 자기가 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전쟁해야 되는데 빨리 블레셋과 전쟁하고 승리해야 되는데, 얼마 전에 길르앗 야베스를 암몬 자손의 손에서 건진 것처럼 얼른 전쟁해야 되는데 예배라는 것이 앞에 걸리적거리고 있어서 이것 형식적으로 해야 되는 것인데, 예배를 집전해야 할 사무엘이 오지 않으니 내가 그냥 해치워 버리고 빨리 전쟁하고 이기겠다." 이 마음이 그에게 강하게 있었던 것입니다.

예배는 해치우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보다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먹고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예배고,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잘 섬기는 예배입니다.

기도와 예배는 부득이해서 해치우는 것도 아니고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절대적 신앙의 윤리를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상대적인 것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해야 될 성도로서의 사명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세상의 가치를 이겨서 절대적인 사고와 절대적 신앙의 윤리를 붙잡고 승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는 "부득이하여"라는 핑계를 버려야 합니다. "부득이하여"라는 말은 이 세상의 흐름과 시류에 따라서 살겠다는 불행한 모습입니다. 믿음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가는 자들인데, 우리는 양자택일의 선택뿐만 아니라 기도라는 제3의 길이 있습니다. 사면초가 모든 것에 둘러싸여 있을 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여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셋째는 예배를 절대적 가치로 여겨야 합니다. 기도는 무력하고 연약한 자가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자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행위입니다. 예배는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진정으로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전쟁보다 중요한 것이 예배이며 먹고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예배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가장 중요한 예배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수많은 일들을 만납니다. 악한 블레셋 같은 사람도 만나고 그런 열악한 환경도 만납니다. 우리가 기도로 나아가서 승리하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자가 되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승리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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