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6장

성경
사무엘상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사무엘상 16장

사람이 보는 눈은 거의 비슷비슷합니다. 좋은 것을 보면 대부분 다 좋다고 여기고 나쁜 것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비호감으로 나쁘다고 여깁니다. 좋은 관광지나 좋은 휴양지를 보면 사람들은 나도 여기 와서 가족과 함께 쉬고 싶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사람을 보는 눈도 거의 비슷합니다. 회사 입사시험에서 면접관 3명이 지원자들을 본다면 나중에 시험을 다 마치고 나서 채점 결과를 보면 거의 다 비슷비슷합니다. 사람 보는 눈이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입니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내가 나이가 들어서 한 가지 잘하는 것이 있다면 사람 보는 것은 그래도 남들보다 잘한다는 말씀을 가끔 하십니다. 맞는 말입니다. 오랫동안 경험이 있기 때문에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이 사람도 만나고 저 사람도 만나 보았기 때문에 이런 사람 한 번 척하고 보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대부분 다 바라보고 그대로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과연 사람이 사람을 100%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고 말했지 않습니까? 부부가 수십 년을 함께 살아도 그 속을 모르는 것이 부부의 세계이고, 내 속으로 낳고 수십 년을 길러도 내 자식의 속을 알 수 없는 것이 오늘 우리의 아이러니한 모습 아닙니까?

사울의 마지막 기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위대한 하나님의 영적 지도자 사무엘도 사람을 보는 일에 실패합니다. 아버지 이새도 아들 다윗의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고, 정말 하나님이야말로 사람의 본질과 사람의 생각과 그 계획하는 바를 다 꿰뚫어 보고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그냥 버리지 않으시고 마지막 기회를 주셨습니다. 아말렉 진멸명령을 내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진멸인데 아말렉을 철저하게 진멸하라. 해레 명령을 내리시고 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전리품을 취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너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하나님 명령을 따르고 순종하겠느냐 이것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어깁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사울에게 더 이상 미련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삼상 16:1)

하나님께서 이새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셨다고 사무엘을 시켜서 그에게 가서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걸 보면 하나님의 촛대는 항상 옮겨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사울만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그 기회를 붙잡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시기는 항상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을 위해서 일하지 않습니까? 내 욕심을 위해서, 내 욕망을 위해서, 내가 원하고 가지고 싶은 것을 위해서 마치 사울처럼 하나님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네가 원하는 것 취하지 않고 모든 것 다 진멸하고 하나님만 위해서 일하라고 말씀하실 때 핑계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 먹고 살아야 되고 우리 자녀들도 길러야 되고 해야 될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까지 아직까지"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상황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그래서 원하는 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촛대가 옮겨집니다.

기회는 항상 영원히 우리 앞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붙잡아야 되는데 어리석어서 그 기회를 붙잡지 못하면 속절없이 흘러가버리고 "하나님이 내가 이새의 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이런 시기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 그 기회를 두 눈을 부릅뜨고 붙잡아야 됩니다. 이 짧고 짧은 인생 가운데 우리가 언제 주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을 대가 없이 전리품 없이 순전하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사울은 그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서 다윗에게 이 기회를 흘려보내 버리고 만 미련한 사람입니다.

사무엘의 실패와 하나님의 선택

사무엘은 이제 이새의 집에 기름 부으러 갑니다. 이새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사무엘은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유명한 영적 지도자입니다. 그런 분이 갑자기 자기 집에 온다고 합니다. 예배드리러 온다고 합니다. 식구들을 다 집합시켰을 겁니다.

그런데 예배는 드리지 않고 자녀들을 줄 세우라고 하고 큰아들부터 살펴봅니다.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삼상 16:6)

엘리압이 사무엘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실 자가 바로 여기 있도다." 얼마나 잘생겼는지, 얼마나 그가 뛰어난 인물을 가졌는지 성경은 이걸로 우리에게 충분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마음이 엘리압에 가서 꽂힐 것처럼 그는 정말로 뛰어난 인물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즉각 아니라고 반응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삼상 16:7)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이 말씀이 굉장히 무서운 말씀 아닙니까?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 집에 사무엘을 보내기 전부터 엘리압의 됨됨이를 다 보고 계셨고 알고 계셨습니다.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위로가 되는 말씀이지만 우리에게 굉장히 무서운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는 외모를 꾸밀 수 있지 않습니까? 잘생긴 외모로, 아름다운 외모로 얼마든지 꾸밀 수도 있고 그리고 가지고 있는 것도 물질로 그리고 여러 가지 것들로 장식할 수도 있습니다. 외모는 우리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꾸밀 수 있으나 중심은 치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이 아니라 어찌 보면 굉장히 두렵고 무서운 말씀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압이 하나님의 종 사무엘은 멋지게 속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까지 속이지는 못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일지, 하나님께서 내 마음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데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정신 차리고 제대로 묵상하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도 "나는 너를 버렸노라. 나는 외모를 보지 않고 너의 중심을 보았다"라고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얼마나 두렵습니까?

아무리 외모가 출중해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버림받는다면 쓸모없는 인물이 되고 말 겁니다.

막내 다윗의 부르심

이렇게 둘째, 셋째, 넷째, 다 지나가는데 하나님은 그 자리에 있는 일곱 아들 모두가 하나님이 택한 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삼상 16:10)

그 자리에 아들 일곱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일곱 다 아니라고 하십니다. 사무엘은 몹시 당황스럽습니다. 그래서 아직 혹시 이 자리에 없는 오지 않은 아들이 있느냐 라고 묻습니다.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삼상 16:11)

막내가 하나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막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문화에서 막내는 굉장히 짠한 이름 아닙니까? 막내야 라고 부르면 따뜻한 느낌이고 돌봐줘야 될 그런 느낌입니다.

그런데 여기 히브리 문화에서 막내 "하카톤"이라는 말은 보잘것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티끌 같은 자, 먼지 같은 자, 보잘것없는 자. 아버지 이새의 눈에 아들이 얼마나 보잘것없이 보였으면 당대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그의 집에 오는데도 그를 사무엘에게 보여 주지 않았겠습니까?

왠만하면 그날은 다른 사람을 돈을 주고 사서라도 자기 양떼를 치게 하고 모든 식구들을 그의 집에 모아두고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에게 인사나마 한 번씩 받게 했을 텐데, 이 아들을 보여주기가 부끄러운 나머지 보잘것없고 초라한 그런 외모를 가진 자여서 아버지 이새는 그 아들을 멀고 먼 들판에서 양을 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 정도였습니다.

아버지조차 다윗의 진가를 몰랐고 아버지조차 그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만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데려오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그 자리에 세우시니 사무엘의 마음이 감동됩니다. 이제 그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삼상 16:12-13)

하나님의 택하심은 출생서열을 뛰어넘습니다. 장남이라고 해서 무조건 택하는 것도 아니고 막내라고 해서 무조건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잘생긴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택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무시하는 하카톤 같은 자라고 해서 하나님이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사람 보기에 뛰어난 외모, 사람 보기에 뛰어난 여러 가지 모습을 갖추려고 애쓰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내 중심이 어떠한지를 우리 스스로 내 마음 중심을 살펴보시는 하루 되기를 바랍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방향 지어져 있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복된 주의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촛대는 항상 옮겨지며, 사울처럼 마지막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내 욕심과 욕망을 위해서만 살면서 하나님의 일에는 핑계만 늘어놓는다면 그 기회는 다른 곳으로 옮겨갑니다. 이 짧은 인생에서 언제 대가 없이 전리품 없이 순전하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두 눈을 부릅뜨고 붙잡습니다.

둘째는 외모가 아닌 중심을 가꾸어야 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외모는 우리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꾸밀 수 있지만 중심은 치장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스펙을 만들어주거나 외모를 치장하는 부모가 되지 말고, 자녀들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 앞에 바로잡혀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사무엘도 엘리압의 외모를 보고 속았고, 아버지 이새도 막내 다윗을 하카톤 같은 자라고 여겨 그의 이름조차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보고 계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살아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중심을 온전히 세워가야 합니다. 출생서열이나 외모가 아니라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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