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중심
사무엘상 20장
딱딱한 의자에 앉을 때는 쿠션 방석이 필요하고 쿠션이 있는 등받이가 있으면 편안합니다. 특히 살집이 별로 없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쿠션이 있는 의자를 찾는 것이 훨씬 편안합니다. 완충작용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의자와 사람 사이에만 쿠션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완충작용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있는데, 그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 나타나면 분위기가 아주 좋아집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쿠션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도 이 사람이 있어야 분위기가 좋아지고 웃을 일이 생기고 즐거워지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보석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주 귀한 분들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윤활유 같은 역할, 쿠션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꼭 필요한데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그 사람이 변할 수도 있고 떠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이 계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사람과 사람 사이도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지고, 행복이 싹틀 것입니다.
우정의 비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다윗과 요나단의 맹세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두 사람이 서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이렇게 뜨거운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이유, 두 사람이 이렇게 신분을 초월한 사랑과 우정에 깊이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둘 사이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공개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온나라의 정보력을 다 장악하고 있었던 사울은 다윗이 라마 나욧에 가 있다는 것을 알고 군대를 끌고 그곳에 들이닥칩니다. 좁은 동네에 사울의 군대가 에워쌌으니 다윗이 잡히는 것은 순식간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을 내립니다.
그가 성령이 충만해서 예언하는 동안 다윗은 겨우 피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절망감을 느낍니다. 이런 식으로 내가 얼마나 사울을 피해 다닐 수 있을까? 곧 잡힐 것 같은데, 그래서 요나단에게 찾아가서 자기 절망감과 그 심정을 토로합니다.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삼상 20:1)
얼핏 요나단을 책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다윗의 이 답답한 심정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 토로하는 장면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나는 왕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는데, 너는 네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이유를 알고 있느냐?" 이런 질문입니다.
이런 답답한 친구의 마음을 보고 듣고 있었던 요나단이 "정말 내 아버지가 너를 죽이려 하는지 내가 진심을 알아올 테니 이렇게 이렇게 하자"고 약속합니다. 화살의 약속을 합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실 것이라 너는 사흘 동안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내가 과녁을 쏘려 함 같이 화살 셋을 그 바위 곁에 쏘고 아이를 보내어 가서 화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평안무사할 것이요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앞쪽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삼상 20:18-22)
이렇게 두 사람만 아는 약속을 합니다. 초하루가 되었습니다. 잔칫날 식사 자리가 되었는데 다윗이 그 자리에 보이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약속한 대로 사울이 요나단에게 묻자, 요나단이 다윗을 변호해 줍니다. 그런데 사울이 불같이 화를 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삼상 20:30-31)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막말을 내뱉으며 다윗을 죽이겠다고 공포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도대체 다윗이 죽어야 될 이유가 무엇이냐?" 그러자 이제 사울은 아들까지 죽이려 듭니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한지라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고" (삼상 20:33)
사실 사울의 입장에서는 아들 요나단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기만 하면 아들 요나단은 그 자리에서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을 것이고, 요나단이 왕이 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다윗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것인데, 굳이 자기가 나서서 정적을 보호하려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지. 그래서 화가 난 나머지 아들까지 죽이려 합니다.
영원한 언약
이제 요나단은 다윗을 피신시킵니다. 두 사람이 헤어지면서 이제는 함께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어서 영원한 약속을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삼상 20:42)
여기서 두 사람이 맹세하는 언약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너의 자손 사이에 계실 것이다." 하나님이 두 사람 사이에 계신다는 이 고백이 두 사람의 과거를 만들었고, 현재를 만들었고, 미래를 만들 것입니다.
만약에 요나단과 다윗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두 사람은 왕자와 신하 사이일 뿐입니다. 신분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왕자와 신하 사이입니다. 한 사람은 명령하고 또 한 사람은 명령을 받들어야 됩니다. 왕자는 당연히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되고, 왕자의 인기보다 더 인기가 많은 다윗은 제거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와 힘을 합쳐서 다윗을 죽이려 할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그런데 둘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런 아름다운 우정이 싹트고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앞으로 두 사람 사이 그리고 두 사람의 자손들 사이에도 아름다운 일이 연속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하나님이 계셔야 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부부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자기 욕심대로 남편을, 자기 욕심대로 아내를 좌우하려 들지 않겠습니까?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하나님이 계셔야 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부모는 자식을 자기 소유물처럼 다루려 들지 않겠습니까?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도, 성도와 성도 사이에도 하나님이 계셔야 됩니다.
사회적으로 갑질 문화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하나님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계시면 갑질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시각으로 타인을 볼 것이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람을 대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하나님이 반드시 계셔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시면서 많은 사람을 대하고 만나야 되는데, 내가 만나는 사람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는지 하나님이 계시기를 구하고 기도하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와 타인 사이에 계시면 우리는 실수할 일이 없습니다.
좋은 관계를 맺어가고 유지하고, 그 관계 가운데서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 것입니다. 온종일 하나님을 사람 사이에 두시고 지혜롭게 살아가시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인간관계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요나단과 다윗의 아름다운 우정의 비결은 그들 사이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단순히 왕자와 신하의 관계, 경쟁자와 위협받는 자의 관계로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 사이에 계셨기 때문에 신분을 초월한 진정한 우정이 가능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관계에서도 하나님이 중심에 계실 때 갈등이 해결되고 진정한 사랑과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계시는 관계는 영원한 축복이 됩니다. 요나단과 다윗은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고 맹세했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에 계신 관계는 일시적이지 않고 세대를 이어가는 복된 관계가 됩니다. 부부 관계, 부모와 자녀 관계, 목회자와 성도 관계, 모든 인간관계에서 하나님이 계실 때 그 관계는 단순한 인간적 유대를 넘어서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가치를 갖게 됩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계신 관계에서는 자기 유익보다 상대방을 섬기게 됩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면서까지 다윗을 도왔습니다. 이것은 자기 욕심이나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계시면 갑질이나 이기적인 행동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방식으로 대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진정한 관계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그 중심에 계시기를 간구하며, 하나님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만나고 느끼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