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다운 우선순위
사무엘상 22장
모든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중에 가진 돈이 한정되어 있으면 우선 먼저 사용해야 할 곳을 정하고, 그 다음 사용해야 할 곳을 정한 후 나중에 사용해야 할 곳은 가장 뒤로 미루어둡니다. 이렇게 해야만 가정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수중에 돈이 한정되어 있는데도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심각한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의 우선순위에 따라서 먼저 해야 할 일을 가장 먼저 하고 나중에 해야 할 일은 뒤로 미루어두는 것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입니다. 목숨을 건 위기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 위기에서 내 목숨을 먼저 구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 다음에 타인들의 목숨이 눈에 들어오는 것인데 거꾸로 하는 것을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보면 다윗은 목숨을 건 위기 상황에서 우선순위를 뒤집어서 행하고 있습니다. 자기 가족들 그리고 타인들을 먼저 돌보는, 남들이 볼 때는 이상한 우선순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을 기뻐하십니다.
아둘람 굴의 무리
다윗이 사울의 미움을 받고 질투를 받아서 더 이상 왕궁에 살 수 없어서 쫓겨났습니다. 갈 곳이 없던 다윗, 아무것도 가지고 나온 것이 없던 다윗이 그를 따르던 몇 명의 부하들과 함께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로 갔습니다. 아히멜렉은 배고픈 그들에게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제공해 주었고, 그 옛날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칼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나선 다윗은 딱히 갈 곳이 없었습니다. 사울이 온 나라의 정보력을 가지고 있고 군사력을 다 가지고 있는데, 피한다 해도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갈 곳이 없어서 다윗은 그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광야의 아둘람 굴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던지 그곳에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다윗의 가족들과 억울한 사람들이 그곳으로 속속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삼상 22:1-2)
우선 다윗의 가족들은 사울 치하에서 이런 상황이 되자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사울이 사람들을 보내고 군대를 보내서 감시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다가 아마 그의 가족들, 부모들도 죽일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이들이 다윗이 있는 곳으로 피신한 것입니다.
가족들이 피신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 또 다른 사람들 400명이 모여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억울한 자들, 사울의 치하에서 모든 일이 억울한 사람들, 억울하게 사울에게 당한 사람들, 이런 자들이 400여 명 가량이나 모여들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다윗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 중에 형제들은 몰라도 특히 나이가 드신 어른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피신
그래서 다윗은 부모님들을 먼저 모압으로 피신시킵니다.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삼상 22:3-4)
목숨을 걸고 모압 왕에게까지 나아가서 부모님을 부탁했습니다. 사실 이것도 다윗에게는 대단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님, 그분들은 사실 다윗을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였습니다. 사무엘이 그의 집에 왔을 때도 아들을 사무엘에게 보이지 않고 들판에서 양을 치게 했던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광야에서 가장 어려운 상황, 가장 위기 상황,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부모들을 마음을 다해서 자기 목숨을 걸고 모셨습니다. 안전한 곳, 모압으로 우선 피신시킨 것입니다.
그 다음이 더 중요합니다. 다윗은 400명의 사람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함께했습니다. 사실 이들 중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누가 있었겠습니까? 마음이 원통한 자, 환난 당한 자, 억울한 일을 당한 자들, 빚진 자들, 이런 자들은 단 한 사람도 다윗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부귀영화를 가진 자, 돈을 가진 자, 군량미를 대어줄 수 있는 사람, 피신처를 넓고 안전하게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지 이런 자들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왕의 자격
오히려 다윗과 함께한 몇 명의 부하들과 다니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고 편안했을 것입니다. 먹을 것을 구하는 일도 그렇고 은신처를 찾는 일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400명의 무리가 함께 다니면 사울의 눈에 발각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것 아닙니까?
그런데 다윗은 이들과 끝까지 함께했습니다. 시간이 가면 400명이 점점 늘어서 600명이 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들을 한 사람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과 함께 다니면서 피난 생활을 지속적으로 십수 년 동안 이어갔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싶은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훈련받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사무엘을 그에게 보내서 기름부음을 하시고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진짜 왕이 될 수 있는지 그를 달아보고 계시는 중이었습니다. 왕의 사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백성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런 위기 상황이라고 해서 이 억울한 사람들을 버리고 다윗 자기의 목숨만 구하기 위해서 떠나가 버린다면 그는 자기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지언정 왕이 될 자격은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계시는 중이었습니다.
다윗이 이것을 알고 이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그러나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백성들의 생명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한 생명, 한 생명을 버리지 않고 함께 데리고 다니고 그 생명들과 함께 광야에서 먹고 마시고 같이 죽고 같이 살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존재를 바치고 걸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하루하루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합당하게 시험하고 바라보는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저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을 주셨을까? 나에게는 오늘 왜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을까?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깨닫게 하고자 하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묵묵히 생각하고 깊이 들여다보고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게 살아가셔야 할 것입니다.
사울의 잔혹함
그런데 반면 사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 욕심대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삼상 22:18-19)
누구를 죽인 것입니까? 다윗과 함께한 부하들에게 진설병을 제공한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 땅에 있는 나머지 제사장 85명, 그리고 그 처자들, 자녀들, 소와 양과 나귀들까지를 다 죽여버렸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다윗에게 진설병을 주었고 그에게 칼을 주었다는 이유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사울은 한참 전에 사무엘을 통해서 받은 명령, 하나님의 마지막 기회의 명령을 어긴 사람이었습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되 헤렘 명령으로 모든 것을 다 치고 없애버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습니다. 자기 눈에 좋은 양과 소 짐승들을 남겨두었습니다.
그랬던 사울이 지금은 분노에 차서 다윗에게 진설병을 제공해 주었다는 이유로 제사장들을 도엑을 시켜서 죽이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들,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제사장들을 돌보지 않는 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울, 그러나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한 생명이라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는 다윗. 하나님이 누구를 택하시겠습니까?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우선순위를 깨달아야 합니다. 다윗은 목숨을 건 위기 상황에서도 자기 가족들과 억울한 백성들을 먼저 돌보는 우선순위를 보여주었습니다. 세상적으로는 어리석어 보이는 이런 우선순위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다운 우선순위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우선순위를 분별하고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둘째는 사람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다윗이 400명의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한 사람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와 함께하는 자들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한 생명, 한 생명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이며, 그 사명을 매번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우선순위를 깨달아 지켜나가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하루하루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합당하게 시험하고 바라보는 과정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우연이 아니며,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을 주셨을까,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일까를 묵묵히 생각하고 깊이 들여다보며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람의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리와 함께하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며, 그 사람의 생명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명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의 우선순위를 분별하여 지켜나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