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5장

성경
사무엘상

지혜로운 말

사무엘상 25장

인간이 가장 비참한 순간은 언제일까요? 가난이나 인간관계의 파탄만으로는 좌절하지 않는 사람도,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받으면 삶의 의지를 잃게 됩니다. 물질적 궁핍이나 관계의 어려움은 견딜 수 있지만, 누군가로부터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짓밟히는 순간 인간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자존심에 상처받은 사람들은 각기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어떤 이는 직접 찾아가 복수를 감행하고, 어떤 이는 세상과 담을 쌓고 고립의 길을 걷습니다. 또 다른 이는 이를 악물고 일어서서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려 치열하게 몸부림칩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 역시 깊은 모독을 당했습니다. 그의 자존심은 처참하게 짓밟혔고, 분노에 사로잡힌 그는 복수의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을 만나면서 무너진 자존심이 치유되고 분노가 지혜로 승화되는 놀라운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크게 상한 자존심

다윗의 광야 생활은 고독한 유랑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운명을 함께한 육백여 명의 동지들이 있었습니다. 오랜 광야 세월 동안 이들은 각자 인연을 맺어 가정을 이루고 후손을 낳았습니다. 어느덧 다윗은 수백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지도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이 선택한 생존 방식은 광야의 수호자 역할이었습니다. 목축업자들이 양떼를 이끌고 오아시스를 찾아 광야를 횡단할 때, 약탈자들의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무법천지인 광야에서 양떼를 훔치고 목자들을 살해하는 도적들로부터 평화로운 목축업자들을 지켜주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의 정예 부대는 이러한 보호 서비스의 대가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나발 역시 다윗의 보호를 받는 고객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양털 깎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다윗은 당연히 기대했습니다. 광야에서 양털 깎는 날은 수확의 축제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모여들어 풍성한 잔치를 벌이며, 양털 판매로 얻은 수익을 나누는 기쁨의 날이었습니다. 다윗이 사절을 보내 먹거리를 요청한 것은 지극히 정당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술기운에 취한 나발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삼상 25:10-11)

사울을 떠나서 방랑자가 되어서 이곳저곳 다니고 있는 다윗의 처지를 비웃는 말이었습니다. 다윗을 알지 못한다고 시치미를 잡아떼고 있습니다. 이 말이 다윗의 자존심을 아주 심각하게 자극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 말에 발끈합니다. 사백 명을 거느리고 나발을 치기 위해서 길을 나섭니다.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 (삼상 25:13)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이 육백 명이었는데 삼분의 이나 칼을 차고 길을 나섭니다. 다윗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지금껏 다윗이 이렇게 흥분한 적이 없었는데 다윗이 왜 이렇게 흥분하는 걸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무엘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사실 다윗을 기름 부어서 왕으로 삼았던 사람 아닙니까? 사무엘만이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이미 마음에 두셨다는 것을 보증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무엘이 죽었습니다. 이제는 다윗이 왕궁으로 돌아가도 다윗을 왕으로 세우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보장해 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여기에 깊은 절망감을 느낍니다.

사무엘이 죽고 난 이후에 이제 다윗은 광야에서 나 스스로 홀로 살아남아야 된다는 위기의식이 강하게 찾아왔습니다. 마침 그때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크게 마음에 상처를 입은 다윗이 이제는 여기서 밀리면 광야 생활이 끝장이라는 위기감이 발동합니다. 그래서 칼을 차고 나선 것입니다.

지혜로운 여인

이대로 가면 다윗은 나발과 그와 함께한 사람들을 살해하는 살인자, 명분 없는 전쟁의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그때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길을 나섭니다. 그리고 급하게 먹을거리를 가지고 나서서 다윗 앞에 목숨을 걸고 막아섭니다. 분노하고 화가 난 다윗 앞에 아비가일이 길을 막아선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건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종이 내 주께 가져온 이 예물을 내 주를 따르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시며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삼상 25:27-28)

무슨 말입니까? 다윗은 일생 동안 여호와의 싸움을 대신 싸운 사람 아닙니까? 일생 동안 악한 일을 한 적이 없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칼을 차고 나서는 것이 하나님의 싸움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명해서 이 칼을 차고 나선 것입니까? 아주 부드럽게 말했지만, 아비가일의 말은 다윗의 이 칼 차고 나선 이 싸움이 명분 없는 싸움임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랬지 않습니까? 지금껏 다윗이 명분 없는 전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다윗은 전혀 명분 없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존심 때문에, 자기가 왕이 될 거라고 보증해 줄 사무엘이 죽고 난 이후에 이제는 홀로서기를 해야 된다는 강박과 불안감 때문에 지금 이 싸움을 하러 나서는 겁니다. 아비가일이 정곡을 찔렀습니다.

계속 이어서 말합니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다" (삼상 25:29)

생명싸개라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생명싸개 속에 싸고 계십니다. 그러니 저 미련한 자, 나발이 한 말 따위 신경도 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호하고 계시는데 왜 어리석은 말에 상처를 받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물매로 던지듯이 하나님이 그들을 처리하실 것인데 왜 당신이 직접 나서서 이 명분 없는 일을 행하려 하십니까? 이 말입니다.

이어서 계속 얘기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 (삼상 25:31)

당신은 장차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분이 아니십니까? 나중에 왕이 되실 때 오점을 남길까 두렵습니다. 하찮은 사람, 당신의 마음에 조그마한 자존심을 상하게 한 사람, 이 사람을 죽인 일이 당신이 왕이 될 때 걸림돌이 될까 두렵습니다. 장차 큰일 하실 분이 이런 오점을 남기지 마십시오. 얼마나 지혜로운 말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말입니까?

이 말을 듣고 난 다윗의 마음이 한순간에 풀립니다. 정말 내가 명분 없는 길을 칼을 차고 걸어가고 있었구나. 다윗이 이 말을 듣고 곧장 아비가일에게 아비가일의 지혜를 칭찬하고 돌이킵니다.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삼상 25:32-33)

말의 힘

사람들 중에는 말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있고 말로 사람을 회복시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말이 사람에게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할 수도 있고, 아비가일의 말처럼 원수 갚는 일, 친히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려고 칼을 차고 사백 명을 데리고 나선 다윗 같은 분노한 사람들을 다시 돌이키게 하는 그런 따뜻하고 아름다운 말도 있습니다.

나발의 말은 다윗의 자존심을 짓밟고 그를 분노하게 만들어 복수의 길로 나서게 했습니다. 반면에 아비가일의 말은 다윗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그를 하나님의 뜻으로 돌이키게 했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그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당신은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는 사람이며, 장차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분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아비가일의 지혜는 단순히 말솜씨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하나님의 관점에서 다윗을 바라보고 그를 바른 길로 인도했습니다. 그녀의 말은 다윗으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인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보시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오늘 우리 입에서는 어떤 말이 나오고 있습니까? 사람을 죽이는 말을 합니까? 사람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살리는 말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형상인 사람을 세우는 지혜로운 인생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아비가일처럼 그런 훌륭하고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말의 힘을 깨닫고 지혜롭게 말해야 합니다. 나발의 말은 다윗을 분노하게 만들어 복수의 길로 나서게 했지만, 아비가일의 말은 분노한 다윗을 돌이켜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우리의 말이 사람을 살리는 말인지 죽이는 말인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그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사람들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셋째는 용기 있는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아비가일은 목숨을 걸고 분노한 다윗 앞에 나서서 평화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갈등과 분쟁이 있는 곳에서 용기 있게 나서서 화해와 평화를 만드는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지혜로운 말로 사람들을 세우고 평화를 만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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