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6장

성경
사무엘상

좋은 영향력

사무엘상 26장

어머니의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오래갑니다. 어머니가 평생에 걸쳐 자녀들에게 차려준 음식은 그들의 평생 입맛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고, 어머니가 일상 속에서 건넨 말씀들, 심지어 사소한 잔소리조차도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나침반이 되어 금과옥조로 자리잡습니다. 어머니가 중요한 갈래길에서 내린 선택들은 자녀들이 훗날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 어머니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내적 기준이 되어 그들의 결정을 이끕니다.

한 사람의 생애는 결코 개인적 차원에서만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의 흔적을 남기며 살아갑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친구는 친구에게, 가족은 가족에게, 지도자는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필연적으로 영향력을 전달하는 존재입니다. 문제는 그 영향력의 방향성입니다.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 선한 영향력인지, 아니면 파괴적이고 악한 영향력인지가 관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이전에 아비가일로부터 받았던 생명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숭고한 영향력을 깊이 간직한 채,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귀한 열매로 승화시켜 자신뿐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영화롭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의 영향

나발이라는 인물이 술에 취한 채 내뱉은 경멸의 말로 인해 다윗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그 모독적인 언사에 격분한 다윗은 나발을 처단하기 위해 사백 명의 정예 군사들을 무장시켜 길을 나섰습니다. 복수의 불길이 그의 온몸을 달구었습니다. 바로 그때 다윗의 길목에 아비가일이 나타나 용감하게 그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아비가일은 분노에 사로잡힌 다윗 앞에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세 가지 예리한 통찰을 던졌습니다.

첫째, 이 전쟁에는 명분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정당한 명분을 품고 싸워왔거늘, 이번 싸움에는 그런 거룩한 명분이 있습니까?

둘째, 하나님께서 당신을 생명싸개로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 누가 악한 말로 당신을 해하려 해도 그 보호막을 뚫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물매 던지듯 멀리 내치시는 분인데, 굳이 당신이 직접 나서서 악인을 심판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셋째, 당신은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운명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미래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지 마십시오.

이 세 마디는 다윗에게 천둥같은 충격이자 감사한 은혜였습니다. 그는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간언을 듣고 즉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용기와 지혜를 진심으로 칭찬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감동적인 사건 이후에 펼쳐진 후속 상황입니다.

두 번째 기회

사울은 여전히 다윗을 찾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다윗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고, 사울은 군대를 거느리고 다윗을 쫓기 위해서 길을 나섭니다.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삼상 26:1-2)

하길라 산 앞에 삼천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집결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워낙 자주 반복되다 보니 다윗도 이제 광야에서 지리에 능하고 잔뼈가 굵어지다 보니 이런 일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탐군을 보내고 첩보를 입수하고 사울의 군대가 어디에 진을 치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야영하는지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이에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삼상 26:3-5)

이것을 보면 다윗은 성장하고 있고 사울과 그의 군대는 성장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다윗이 얼마나 당황했습니까? 광야로 처음 쫓겨났을 때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몰랐는데, 이제 다윗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과 함께한 백성들을 돌볼 수 있고 그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이렇게 성장합니다.

하지만 사울의 군대는 그대로입니다. 다윗이 그의 군사령관으로 있을 때나 지금이나 전술이 똑같고, 하는 일이 똑같으니까 다윗은 사울의 군대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야영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손바닥 보듯이 훤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다윗은 그들의 약점을 알고 진영으로 내려갑니다.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삼상 26:7)

다윗이 또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합니다. 그런데 함께 간 아비새는 다윗이 당연히 사울을 죽이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비새가 이렇게 다윗에게 말합니다.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한 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다 하니" (삼상 26:8)

이제는 다윗에게 하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허락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한 칼에, 창 한 번에 그를 찔러서 목숨을 끊어 놓겠습니다. 허락만 하십시오.

그런데 다윗은 그럴 생각이 아예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삼상 26:11-12)

창과 물병만 가지고 떠납니다. 흔적만 남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죽일 수 있었으나 창과 물병만 가져갑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살리신 줄로 알고 이제 더 이상 나를 쫓지 마십시오. 이 사인만 남기고 길을 떠난 것입니다.

아비가일의 지속되는 영향

다윗은 사울을 두 번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 두 번 다 자기의 손으로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24장에도 그랬고 오늘 26장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24장과 26장은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25장에서 사무엘이 죽었습니다. 24장의 다윗이 사울을 살려줄 때는 사무엘이 죽기 전이고, 지금은 사무엘이 죽은 후입니다.

사무엘의 죽음은 다윗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왜냐하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사람이 바로 사무엘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가족 외에는 사무엘밖에 없습니다. 훗날 다윗이 복권되어서 왕궁으로 돌아갔을 때 사무엘이 살아있어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우셨다고 보장해 줄 것 아닙니까? 이런 사무엘이 죽어버렸습니다.

이제 다윗이 누구를 의지해야 됩니까? 사무엘이 죽었기 때문에 더더욱 사울을 죽여야 할 명분이 다윗에게는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가 왕이 될 것을 보장해 줄 사람도 이제는 이 땅에 없는데, 이제 지금이야말로 사울을 죽이고 그가 가서 왕 자리를 차지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가 이런 결정적인 선택을 내린 이유는 아비가일 때문입니다.

아비가일이 그에게 남긴 말: 과연 이것이 명분 있는 전쟁인가? 과연 내가 창을 들고 칼을 들고 사울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명분이 있는 일입니까? 그렇게 따져보면 이건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같은 상황에서 사람이 똑같이 행동해야 되는데, 사무엘이 죽기 전에는 사울을 살려두었다가 사무엘이 죽은 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울을 죽여버리면 그것이야말로 명분 없는 싸움 아닙니까?

또 두 번째 아비가일이 남긴 말: 하나님께서 원수를 물매로 던지듯이 멀리 던질 것인데 왜 당신이 굳이 악인을 죽이려고 하십니까? 그 말에 비추어 봐도 하나님이 악을 알아서 갚아주실 것인데 내가 왜 내 칼에 피를 묻혀야 되느냐? 그렇게 따져봐도 이건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세 번째,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 인생에 오점을 남길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비추어 보면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셔야 진짜 왕이 되는데, 자기 스스로 사울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다면 백성들 가운데에는 다윗을 불편해하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쿠데타와 반란이라고 몰아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에 큰 은혜를 받았고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울을 그냥 살려 보내고 다시 자기 길을 떠납니다. 아비가일의 이 말이 다윗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고, 그가 하나님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세워주었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어떤 영향력을 주는 사람들입니까? 악을 부추기는 사람들도 있고 분노를 부채질하는 사람들도 있고 사람들을 불구덩이 가운데로 밀어 넣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비가일의 말이 다윗을 이렇게 훌륭한 사람으로 세운 것처럼 우리도 자녀들에게 이렇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부모가 되고, 오늘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비가일의 세 가지 지혜로운 말이 다윗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쳐 그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이키게 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좋은 영향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조언을 겸손히 받아들여 자신의 삶에 적용했습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때 열린 마음과 열린 귀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셋째는 받은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에게 받은 은혜를 일회적으로 끝내지 않고 비슷한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실천했습니다. 우리도 한 번 받은 좋은 영향력을 평생의 삶의 원칙으로 삼아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고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는 믿음의 자녀로 온전히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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