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7장

성경
사무엘상

생각과 기도

사무엘상 27장

시편 1편은 시편 150편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를 표현하고 있는 시편입니다. 복 있는 사람에 대한 말씀이 시편 1편 1절에 아주 잘 나타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악인, 죄인, 오만한 자라고 서로 바꾸어 가며 표현을 달리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이런 자들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세 가지 동사를 서로 변주하면서 말씀하는데, 처음에는 따르다가 그 다음에는 서 있다가 그 이후에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게 됩니다. 원래 우리가 죄짓는 순서가 그렇지 않습니까? 악인들이 살아가는 삶이 좋아 보여서 처음에는 따라갑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추어 섭니다.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서 더 이상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죄짓는 순서입니다. 그런데 시편 1편 2절을 보면 진짜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우리가 이 1절과 2절 말씀을 곰곰히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묵상하고 말씀 중심으로 살지 않으면 우리는 죄악된 본성 때문에 악인들의 꾀를 따라가고 죄인들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게 되는 그런 필연적인 법칙을 시편의 기자가 설명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다윗이 바로 그런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영적 탈영

참 위대한 다윗이고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다윗인데, 이런 사람도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말씀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 중심으로 살지 않으니 한순간 악인들의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들과 함께 거하는 불순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다윗이 처해 있는 삶의 자리는 버티고 버티다가 이제는 기력이 다 쇠한 것 같아 보입니다.

원래 어떤 일을 하다가 몹시 힘든 일을 만나면 곧 끝나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죽을 힘을 다해서 버팁니다. 금방 지나가겠지, 곧 끝나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 기간이 길어지고 오래되면 버티는 힘이 조금씩 조금씩 약해집니다. 힘이 약해지면서 마음도 약해지고, 마음이 약해지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이러다가 죽을 것 같다, 이러다가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내릴 것 같다, 모든 것이 다 엉망진창이 될 것 같다, 내 미래는 잿빛 미래가 될 것 같다는 등등의 온갖 생각이 다 듭니다. 다윗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삼상 27:1)

이렇게 훌륭했던 다윗이 잘 피해 다니고 견디고 하나님의 훈련을 잘 받던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버렸습니다. 사울에게 쫓겨다니는 것이 신물나고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처해져 있지 않고는 다윗을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다윗의 모습이 아닌 것 같아 사실 실망스럽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생각만 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행에 옮깁니다.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삼상 27:2)

아기스는 블레셋 다섯 방백 중에 한 사람입니다. 블레셋은 5부족 연합체가 함께 국가 형태를 이룬 독특한 정치체계를 가지고 사는 자들인데, 아기스가 있는 그 자리는 결국 블레셋 영토입니다. 블레셋 왕 다섯 명 중에 한 사람이었던 아기스에게로 가서 거기서 피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간 가드라는 지역은 다윗이 역사의 자리에 처음 출현했던 그 자리, 즉 골리앗을 죽인 골리앗의 고향이 바로 가드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다니던 초기에 가드왕 아기스에게 한 번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가 위기를 느끼고 미친 척하며 한 번 그곳에서 위기를 탈출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자기 발로 그 자리로 들어갑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삼상 27:3)

다윗은 이제 4백 명이었던 그의 사람들이 6백 명으로 늘어났고, 광야에서 피해 다니는 세월이 길어지므로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결혼하고, 6백 명의 사람들도 저마다 가족이 생깁니다. 자녀들도 태어납니다. 다윗이 이제는 혼자 몸이 아니고 처음 400명의 몸이 아니고 600명으로 불어났고, 그들에게 가족이 생기므로 이들의 생계, 이들의 목숨까지 함께 책임져야 되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다윗 또한 가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윗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지금까지도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시고 그를 피하게 하시고, 다윗이 사울의 생명도 두 번이나 살려주지 않았습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피난처를 떠나서 이제는 보이는 사람을 찾아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것도 하나님 없는 사람들, 시편 1편 1절의 말씀에 의하면 악인, 죄인, 오만한 자로 표현되는 그들의 자리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잠깐 있다가 빠져나온 것이 아닙니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습니다.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들에게 속하니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거주한 날 수는 일 년 사 개월이었더라" (삼상 27:6-7)

16개월 동안이나 그곳에서 안락하고 평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울도 더 이상 국경을 넘어오지 않습니다. 다윗을 잡으려 들어갔다가 블레셋과 전쟁할 것 같아서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기의 계획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 입장에서 본다면 영적인 탈영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훈련시켜 가기 위해서 이렇게 광야로 내모시고, 훈련 과목과 훈련 과정을 성실하게 이수하는 다윗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돌연 다윗이 600명과 그의 가족들을 거느리고 탈영해버렸습니다.

하나님 훈련의 시간표는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탈영했다가 돌아오면 더 큰 징벌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훈련은 훈련대로 또 받아야 되고 징벌은 징벌대로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것을 영적 탈영이라고 여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훈련의 자리를 주신 것이 있다면, 이 훈련은 마땅히 우리가 몸으로 받아내고 기도로 이겨내야 되는데, 그 자리를 피해가고 그 자리를 벗어나면 우리 인생은 평생 동안 훈련만 받다가 볼일을 다 볼 것입니다.

명분 없는 삶

다윗은 이제 훈련의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 앞을 떠나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1년 4개월 동안 있다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밥값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까지 미치게 됩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구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 (삼상 27:8-9)

다윗이 그곳에서 무위도식하고 있는 것이 가드왕 아기스에게 미안하게 여겨지고, 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먹고 마시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좀도둑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다윗은 명분 없는 전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제는 생계를 위해서 생업을 위해서 명분 없는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고한 생명까지 죽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살려두지 않은 까닭은 이들을 살려뒀다가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에, 또한 다른 말을 들을까 했기 때문에 사람들도 죽이고 약탈해서 가드왕 아기스에게 갖다 줍니다. 그리고 아기스에게 거짓말까지 합니다.

"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 (삼상 27:10)

아기스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오늘은 유다를 침공해서 전리품을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거짓말합니다. 아기스가 얼마나 기뻐하고 안심했겠습니까? 다윗이 유다의 희망인데, 유다 사람들은 사울의 뒤를 이어서 다윗이 왕 될 거라고 다 믿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윗이 이제 유다 사람들을 침공해서 이렇게 전리품까지 가져온다고 하니 아기스는 이제 다윗은 영원히 나의 부하가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서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이 행한 일이 이러하니라 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거주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었다 할까 두려워함이라" (삼상 27:11)

그런데 이 일은 그 다음에 심각한 후폭풍을 가지고 옵니다.

생각의 위험

오늘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고 따라가라고, 기뻐하라고 우리에게 일러주셨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항상 그 말씀 중심으로 살지 않으면 오늘 우리는 이런 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1절과 11절에 나오는 공통적인 단어, 한 단어는 "생각"이라는 단어입니다. 다윗은 원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는데, 기도하지 않고 생각하고, 기도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자 일이 여기까지 와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기도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가 우리 인생에서 떠나가기 시작하면 생각이 자리를 잡고, 그 생각의 틈바구니에 사탄이 틈을 탑니다. 그러면 우리는 악인들의 꾀를 따라가고 죄인들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다윗조차 이랬는데 우리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말씀을 묵상하고 생각이 아닌 기도로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내고 이겨내고, 하나님의 훈련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자리, 그 자리를 잘 지켜서 믿음의 길로 승리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다윗은 원래 기도하는 사람이었지만 기도를 멈추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자 영적 탈영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곧 기도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기도가 우리 인생에서 떠나가면 생각이 자리를 잡고 사탄이 틈을 타게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훈련을 피하면 더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블레셋 땅으로 간 것은 당장은 편해 보였지만, 결국 명분 없는 전쟁을 벌이고 무고한 생명을 죽이며 거짓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훈련의 자리를 피해가면 우리 인생은 평생 훈련만 받다가 끝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악인의 꾀를 따르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시편 1편에서 말씀한 대로 처음에는 따라가다가 그 자리에 서게 되고 마침내는 앉아버리게 됩니다. 다윗조차 이런 실패를 경험했는데 우리는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기도로 이겨내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자리를 굳게 지켜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복잡한 생각들이 넘쳐나고 부정적인 생각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내버려두지 말고 우리의 거룩한 마음과 심령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 잡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부정적인 생각과 사고를 이겨내어 사명의 자리를 굳게 지키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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