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침묵
사무엘상 28장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이나 자기 자녀들에게 말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젊은 시절의 경험을 들려주기도 하고, 젊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것이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가지고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살아가라 하고 훈수를 두기도 합니다. 물론 젊은 사람들은 어르신들이 그렇게 말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간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말 듣는 것 자체를 굉장히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잘 들어보면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자세히 듣고 귀를 기울여 보면, 그 안에 길이 있고 그 안에 지혜가 있으며 우리가 지금 행하고 있는 잘못된 길을 새롭게 다잡아주는 굉장한 힘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과 소통하는 방식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화하고 말 걸기를 좋아하시고 항상 우리와 소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대화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입니다. 자연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다른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성경을 읽을 때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르신들도 그리고 하나님도 갑자기 말씀을 하지 않으실 때가 문제입니다. 갑자기 입을 닫아버리면,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기 좋아하던 분들이 말씀하지 않으면 그때는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 원인을 알면 원인을 즉시 해소해야 되고, 원인을 모르면 그 앞에서 엎드려 원인을 알려 달라고 이유를 알려 달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유를 알려주면 즉시 이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풀어가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고 문제를 풀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관계가 문제가 생기고 막히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 왜 이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답답하게 하십니까?" 하나님께 묻고 계속해서 매달려야 됩니다.
두려움의 결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사울은 바로 그 부분에서 실패했습니다. 블레셋은 5부족 연합체였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쟁할 때 다섯 부족이 함께 나와서 싸울 때는 큰 전쟁입니다. 전면전을 벌일 때는 5부족이 함께 나와서 이스라엘과 싸우고, 그렇지 않을 때는 각 부족이 방백들을 앞세워서 국지전을 벌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다섯 방백들이 함께 힘을 합쳐서 전면전을 벌입니다. 이런 블레셋 군대를 보는 사울의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삼상 28:4-5)
하나님이 떠나고 난 이후에, 순종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난 이후에 사울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두려움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 다윗을 보고도 두려워했고 지금 블레셋 군대를 보고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상황은 똑같아도 두려움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이 없고 손에 쥔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하면 우리는 용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이 악한 세상과 험한 세상을 한번 살아볼 힘을 얻는데,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나면 불순종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두렵습니다. 물질이 있어도 두렵고 손에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두렵고, 그리고 모든 것이 걱정과 염려 투성이입니다. 지금 바로 사울이 그런 상황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다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도 있고 물질도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많은데, 그는 모든 것이 다 두렵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의 불행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두려움은 사울이 느끼기에 이전의 두려움과 좀 다르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그는 평소에는 기도하지 않았는데, 지금 이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습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삼상 28:6)
성경을 읽어보면 사울이 기도했다는 것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데, 지금 이 두려움이 극심한 나머지 그는 하나님 앞에 묻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도 응답하지 않습니다. 꿈으로도 계시하지 않고, 제사장의 에봇에 넣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도구인 우림과 둠밈으로도 응답하지 않고, 선지자를 보내지도 않습니다.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사무엘이라도 살아 있었다면, 그가 와서 책망이라도 해 주는 것도 반가울 텐데 사무엘도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습니다. 지금 이 지점이 사울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지점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 있습니다. 블레셋은 진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마지막 기회
사울이 처음 왕이 되고 처음 하나님께 버림받는 그 시작의 서막이 열렸을 때도 이와 똑같지 않았습니까? 사무엘과 약속했는데 사무엘이 올 기한이 지나자, 그는 자기 마음대로 번제를 드려버리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때 이 실패와 잘못을 지금 만회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말씀하실 때까지 구해야 됩니다.
기도하다 보면 자기의 잘못이 생각나고 회개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엎드리고 구하고 살려달라고 하고, 지금 이 자리가 전쟁에서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의 영이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거듭나느냐 거듭나지 못하느냐, 이 절체절명의 상황이 있습니다. 대답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대답하실 때까지, 그때까지 엎드리고 또 구해야 됩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번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실망시킵니다.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가서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서는 사울이 이르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 올리라 하니" (삼상 28:7-8)
무당을 찾아간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버림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엎드려 구하지 않고 무당을 찾아가는 사울, 마지막 기회까지 정말 마지막 기회까지 그는 완전히 끊어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가끔 기도할 때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너무나 답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에도 아무 말씀하지 않으시고, 문제를 풀어주지 않으시고, 자꾸만 막다른 골목으로 몰릴 때마다 그때마다 원망도 나오고 불평도 생깁니다.
그런데 그럴 때일수록 아버지 앞에 뜻을 구하고 기도하고 엎드려야 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도대체 이런 상황을 왜 나에게 주시는지 끊임없이 묵상하고 기도하고 조합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시간이 지나면 그때 그렇게 인도하신 이유를, 그 섭리를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악한 영의 속임
사울이 이렇게 무당을 찾아가자 무당은 사무엘이라고 하는 분을 불러 올려줍니다.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더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더라" (삼상 28:14-15)
과연 이 무당이 불러올린 영이 사무엘이 맞을까요? 이것을 사무엘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성경을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당은 하나님의 나라에 영향력을 끼칠 수가 없습니다. 사무엘은 지금 천국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왕 노릇하고, 그 땅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는데, 무당 따위가 불러 올린다고 어떻게 천국에서 여기로 오겠습니까?
무당의 영역은 천국에까지 결코 미칠 수 없습니다. 무당은 사탄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일 뿐,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천국백성이 된 하나님의 자녀를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호출한다는 말입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사무엘의 영으로 나타난 영은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 악한 영이 사울을 속이려고 무당을 통해서 사무엘처럼 행세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되어버리면 문제가 있을 때마다 상황이 어려울 때마다 이제 사울은 무당을 찾아가지 않겠습니까?
무당을 찾아가서 사무엘을 불러 올리건, 자기가 원하는 자를 영으로 불러 올리건, 그래서 그 앞에서 돈을 주고 절을 하고 엎드리고 그렇게 영원히 사탄의 종 노릇 하며 살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사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그 문제를 풀어가려고 애쓰고 힘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잘못 곁길로 들어가 버리면 우리는 영원히 사탄의 종 노릇 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
오늘 사울이 우리에게 주는 이 비극과 이 무시무시한 결과를 반드시 기억하시고, 하나님 앞에서만 엎드리고 기도하고 묻는 지혜로운 백성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떠나면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영이 떠난 후 보여준 가장 두드러진 증상은 두려움이었습니다. 다윗을 보고도 두려워했고 블레셋 군대를 보고도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상황은 똑같아도 두려움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면 용기를 얻어 이 악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침묵에도 끝까지 기도로 매달려야 합니다. 사울에게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을 때 엎드려 구하며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답답하다고 해서 다른 길을 찾지 말고, 그럴 때일수록 아버지 앞에 뜻을 구하고 기도하며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인도하신 이유를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실 것입니다.
셋째는 무당을 찾는 것은 완전한 배신입니다. 무당은 하나님의 나라에 영향력을 끼칠 수 없고, 천국 백성을 마음대로 호출할 수도 없습니다. 무당을 통해 나타난 영은 악한 영이 사울을 속이려고 사무엘처럼 행세하는 것입니다. 이런 길로 들어가면 영원히 사탄의 종 노릇 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엎드려 기도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막혔을 때, 원인을 알면 그 원인을 속히 해소하고 이유를 모르면 하나님 앞에 끝까지 엎드려 기도하는 끈기와 지혜와 기도의 능력을 허락받아야 합니다. 사울처럼 두려움에 빠져 살다가 하나님 앞을 떠나서 무당을 찾아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침묵이 더디 온다 하더라도 기도의 자리를 소중히 여기고 이 자리를 떠나지 않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