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개입
사무엘상 29장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부모들은 자녀들의 삶에 일일이 깊숙이 개입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무언가를 원하고 사달라고 부탁하면 상황이나 형편을 잘 살피고 혹시 형제자매가 있다면 그 형평성을 잘 따져보기도 합니다. 자녀들의 학교생활에도 모든 일에 일일이 다 개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개입하지 않고 때로는 가만히 지켜보고 살펴보는 것이 자녀들의 성장과 발전에 훨씬 더 유익하고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자녀들의 생활에 아주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든지 혹은 학교에서 학교폭력에 노출이 되어 있다든지 이런 상황을 알면 즉시 개입해 주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에서 우리 자녀들은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거나 풀어갈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에 일일이 간섭하거나 개입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냥 지켜보고 계시고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우시고 살펴보십니다. 오히려 그런 편이 우리의 신앙 성장과 영적인 발전에 아주 더 유익하고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생에 절대적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셔야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풀 수 없는 문제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이런 문제는 일단 하나님이 개입해서 우리 자녀들을 살리시고 돌보시고 건져 놓고 보십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다윗이 스스로 풀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다가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망명해버렸습니다. 다윗과 함께한 6백 명과 그들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기 시작하자, 다윗은 이 6백 명과 그의 가족을 함께 돌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은 잘 지내왔는데 문득 기도하지 않고 생각하다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것입니다. 그래서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망명합니다.
사울은 더 이상 그를 추격하지 않았습니다. 성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곳에서 16개월 동안이나 지났습니다. 이제 여기서 내가 밥값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다윗은 아말렉을 비롯한 여러 소수민족들을 약탈합니다. 명분 없는 전쟁을 일삼은 겁니다. 그래서 그 약탈한 노략물을 가지고 아기스에게 가서 진상했습니다.
아기스가 이것이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고 묻자, 다윗은 유다 사람들에게서 뺏어온 것이라고 거짓말했습니다. 아기스는 이제 다윗을 믿게 됩니다. 아기스는 또 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전쟁하는 어느 날이 오면 다윗과 함께한 이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전쟁하는 그때 가드왕 아기스는 다윗과 함께한 600명을 거느리고 전쟁터로 나갑니다. 이제 다윗의 생각이 어땠을까요? 이런 상황에 빼지도 못하고 박지도 못하는 이런 상황, 뒤로 물러설 수도 없고 앞으로 전진해서 자기 동족과 싸울 수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삼상 29:1-2)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따라갈 때 그들의 심정은 아주 복잡했을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해야 하고, 만약에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그곳에서 블레셋을 향하여 칼을 겨누고 자기의 목숨을 걸고 그들과 전쟁하고 도망가야 되는데 그 또한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쉽지 않은 이런 상황에 그들은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진퇴양난의 상황에 머리가 하얘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개입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삼상 29:4-5)
블레셋은 5부족 연합체로 국가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가드왕 아기스가 다윗과 함께한 600명을 데리고 갔다 하더라도 다른 방백들이 극렬하게 반대해서 이런 식으로 받아주지 않으면 아기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다른 방백들은 다윗에게 당한 것이 너무 많아서 다윗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아기스는 다윗과 함께한 1년 4개월, 16개월 동안 다윗이 가지고 온 진상품들, 그가 그곳에서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다윗을 믿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에 다윗을 함께 할 수 없다고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아기스도 이제 다른 방백들이 받아주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아기스가 다윗에게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삼상 29:6-7)
아기스는 이제 후일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서 다른 방백들에게 다윗의 진심을 알게 하리라 생각하고 지금 이 전쟁에서는 다윗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돌려보냅니다.
이것이 과연 우연히 일어난 일일까요? 그저 다윗이 운이 좋아서 이렇게 된 겁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손길과 하나님의 개입이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 하나님은 개입하시고 다윗을 건져주신 겁니다.
훗날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할 다윗이 자기 동족을 향하여 칼을 겨누고 블레셋 편에 서서 전쟁을 했다는 사실은 이건 다윗에게는 치명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들의 마음을 돌려놓으시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개입과 책임
하나님께서 이렇게 개입하신 것, 하나님이 이렇게 다윗의 삶에 들어오신 것, 이건 다윗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의 삶에도 하나님은 개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기근이 닥치자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사라와 롯과 함께 이집트로 내려갑니다.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그가 거짓말한 것은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것입니다.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이 그때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꿈에 나타나시고 아브라함에게 어떤 해도, 사라에게 어떤 해도 해하지 말 것을 명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삶에 개입하시고 사라를 다시 돌려보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는 은금과 패물은 얻어왔을지언정 눈에 보이지 않는 극심한 손해가 있었습니다. 롯의 믿음도 잃어버렸고 그때 딸려온 노비 중에 하갈도 있었고, 그래서 아브라함의 가정에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개입해서 건져주시지만 나중에 계산은 철저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이런 상황에 하나님이 그의 인생에 개입해서 그를 살려 주시고 그를 이 곤란한 상황에서 건져 주셨지만, 그러나 이 일로 인해서 다윗은 그 이후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계획하고 계시고 계산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으시면 곤란합니다. 두 가지를 기억해야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깊숙이 개입하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평소에는 우리가 여러 가지 문제를 스스로 풀어가고 성장하기를 바라고 계시지만 이런 상황에, 아브라함과 같은 상황, 다윗과 같은 상황, 우리 인생이 스스로 풀 수 없는 상황에 하나님은 개입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둘째는 이런 상황이 내 죄로 인해서 자초한 상황이라면 하나님은 건져주기는 하시지만 그 이후에 책임 소재를 분명히 따지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이런 극진하신 사랑을 우리가 방종하는 구실로 삼지 않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절체절명의 위기에 반드시 개입하여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평상시에는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보고 계시고 살펴보시지만, 우리가 도저히 스스로 풀 수 없는 극심한 어려움을 겪으면 직접 개입하시고 우리를 그 문제에서 건져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진퇴양난에 빠져 있을 때 블레셋 방백들의 마음을 돌려놓으셔서 그를 구원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위기에 개입하고 계십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구원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겪은 위기는 그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블레셋으로 망명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시기는 하셨지만 그 이후에 다윗은 더 큰 시련을 겪게 됩니다. 아브라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해서 우리의 죄와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방종의 핑계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위기에 개입해 주시고 건져 주신다고 해서 우리가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은혜를 깊이 깨달아 더욱 신실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개입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증거이지, 죄를 용납하시는 면죄부가 아닙니다.
오늘 하루도 살아가시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 인생에 가득하고 차고 넘치는 복된 하루 보내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