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방패
사무엘상 2장
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 환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어린이집을 지나 유치원을 거쳐 학교에 진학할 때가 되면 가장 좋은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그들의 지상 과제가 되고, 좋은 학교를 위해서라면 직장에서 멀더라도 이사를 불사할 만큼 교육환경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신앙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일반 학교에 들어가면 빨리 세속화될까 걱정해서 기독교 대안학교에 보내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제로 그렇게 결정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그런 교육환경이나 신앙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한나를 통해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악의 환경
한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였습니다. 자녀가 없었고 그 때문에 공격받고 항상 마음이 힘든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사람을 향해서 표현하지 않았고 사람을 공격함으로 일시적인 감정 해소를 하지 않았습니다.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렸고 하나님을 향하였으므로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방향을 당신에게 돌려서 엎드려 기도하는 한나에게 아들을 선물로 주셨고, 한나는 그 아들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지었습니다.
이제 사무엘이 자라서 젖을 떼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나이가 많아봐야 4세에서 5세 정도 되는 그때 한나는 하나님 앞에 서원한 대로 이 아이를 멀리 떨어져 있는 실로의 제사장 엘리에게로 떠나보냅니다.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서원했다 하더라도 정말 사랑스러운 어린 아들을 어떻게 낳았는데 이 아들을 하나님 앞에 보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삼상 2:11)
여호와를 섬기는 아이가 되었는데 평생 동안 나실인이 되어서 여호와를 섬기는 사무엘로 자랐는데, 문제는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겼다는 데 있습니다. 엘리가 어떤 인물입니까? 나이가 많아 늙었고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제사장이었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슬퍼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간절하게 눈물로 기도하는데 한나가 술에 취해서 술주정한다고 생각했을 만큼 분별력이 어두운 인물이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였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알 만큼 그들은 내놓은 망나니들이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삼상 2:12)
제사장의 두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 이들이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 제사장의 두 아들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몰랐겠습니까? 어린 시절부터 태어나자마자부터 아버지가 제사장이고 성전에서 자랐는데 어떻게 이들이 여호와를 모를 수 있습니까? 이 말은 이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드리기 위해서 제물을 가지고 오면 그 제물을 삶는 중에 세 살 갈고리로 고기를 끓여내어 먼저 먹습니다. 삶은 고기가 이제는 지겨운 그들이 생고기 날고기를 달라고 합니다. 구워 먹겠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못하겠다고 거부하면 억지로 그들이 가지고 온 제물을 빼앗아 먹을 정도로 이들은 막돼먹은 아들들이었습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삼상 2:17)
이들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를 멸시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성전에서 올라오는 자들에게 매번 이런 식으로 행동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몰랐겠습니까? 한나가 몰랐겠습니까? 자기 아들 사무엘을 여기에다가 보내면 제사장 엘리는 영적 분별력이 어두운 자고 그중에 활개치며 돌아다니는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당연히 사무엘에게 영향을 미칠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 어떻게 아이 사무엘을, 가장 귀한 아들을 보낼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리 하나님 앞에 서원이기도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 저는 이 서원 무르겠습니다. 못하겠습니다. 내 아들을 어떻게 이런 환경에 보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만약 하나님께 "제가 서원을 지키려고 하면 엘리를 먼저 데려가시든지 홉니와 비느하스를 먼 곳, 다른 곳으로 보내시든지 하나님 그렇게 하셔야 제가 아들을 보낼 것 아닙니까?" 아마 우리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기도의 방패
그런데 결과적으로 사무엘이 잘못되었습니까?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서 사무엘이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타락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오히려 사무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어떤 사사들보다 가장 탁월하고 위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사가 되지 않았습니까? 비결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삼상 2:18-19)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조끼 같은 옷입니다. 이제 자라서 이스라엘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가 되기를 기도했던 어머니 한나는 매년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러 올라갈 때마다 아이가 커 감에 따라서 에봇을 자기 손으로 지어다가 입혀 주었습니다.
단순히 에봇 자체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나가 이 에봇을 지으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겠습니까? 이런 환경에 아들을 보내 놓고 한나가 세마포 에봇을 짓고 만들면서 얼마나 많이 기도했겠습니까? 한나가 아들에게 지어 입힌 옷은 단순한 에봇이 아니라 기도의 방패였습니다.
영적인 환경, 삶의 환경, 교육환경 이런 것보다 더 선행하는 것은 기도의 방패입니다. 어머니 한나가 아들을 위해서 탁월한 기도의 방패를 쌓아두었기 때문에 그 기도의 방패를 엘리의 둔감한 영적 분별력이 뚫어낼 수 없었고, 홉니와 비느하스의 그 망나니 짓이 그 기도의 방패를 결코 뚫어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환경에 예민합니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 두면 좋은 학교 보내고 기독교 대안학교를 보내고 좋은 집에 살고 소문이 좋은 동네에 살면 우리 아이들 교육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도 비전센터를 짓고 있습니다. 좋은 비전센터를 지어서 우리 교회학교 아이들이 그곳에서 뛰어놀고 신앙훈련을 받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착각입니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부모들이, 어른들이 만들어 두는 기도의 방패입니다. 그 기도의 방패를 세워 두면 이 아이들이 어디에 가 있든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든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돌보실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악한 무리인 홉니와 비느하스에게서도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지키신 것처럼,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우리 다음 세대들,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그 기도의 방패를 보시고 돌보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삼상 2:21)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던 사무엘이 이제는 엘리는 빠지고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이 여호와 앞에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길은 우리의 기도밖에 없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환경보다 기도의 방패가 더 중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위해 탁월한 기도의 방패를 쌓아두었기 때문에 엘리의 둔감한 영적 분별력과 홉니와 비느하스의 망나니 짓이 그 기도의 방패를 뚫어낼 수 없었습니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 두는 것보다 우리 부모들이, 어른들이 만들어 두는 기도의 방패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둘째는 간절하고 지속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한나가 매년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러 올라갈 때마다 세마포 에봇을 지으면서 얼마나 많이 울고 기도했겠습니까? 간절하게 기도하고, 오래 기도하고, 눈물 흘려 기도하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 우리 손자들, 우리 손녀들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성장하도록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의 능력을 더해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기도의 방패를 통해 자녀들을 지키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무엘이 최악의 환경에서도 여호와 앞에서 자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우리 다음 세대들,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그 기도의 방패를 보시고 돌보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고, 간구하고 엎드려 기도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를 위한 기도의 방패를 온전히 세워가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엎드려 기도해서 오늘 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 자녀들을 보내야 하는 부모의 걱정이 기도의 방패로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든든함으로 바뀔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