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들
사무엘상 31장
사람이 진정 사람다워지는 것은 받은 은혜를 기억할 때입니다. 정말 어려울 때, 인생의 위기 가운데서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그 받은 도움은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나에게 도움을 주고 은혜를 베푼 사람이 또 위험에 처하고 어려움을 겪는다면, 나는 또한 그분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어야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는 은혜를 입었는데 그 받은 은혜는 서서히 옅어져 가고 조금씩 잊어버리게 됩니다. 반면에 내가 베푼 작은 은혜를 누군가가 기억하지 않고 갚아주지 않는다면 서운해하고 또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에 나오는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은 사울에게 오래전에 받은 은혜를 뼛속 깊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울에게 받은 은혜를 갚았고, 그 은혜를 통해서 자기들의 존재를 다시 한번 성경에 기록되게 한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울의 비참한 종말
사울은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나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올라와서 진을 치자 이제는 두려워서 하나님 앞에 설 수도 없고 전쟁하러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용기 내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지만 그 앞에서 더욱 간절히 매달리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과 승부를 보았어야 했는데, 그는 하나님 앞에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당을 찾아갔습니다.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죽은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고 했습니다. 무당이 죽은 사무엘을 불러 올렸는데 그는 진짜 죽은 사무엘이 아니었습니다. 사탄의 눈속임이었고, 하나님께서는 이 일로 인해서 이제는 사울을 더 이상 보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완전히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이후에 전쟁하러 나갔습니다. 그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철저하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려 죽으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삼상 31:1-2)
사울의 세 아들이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사울의 세 아들이 죽을 정도가 되었다면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완벽한 패배였습니다. 그런데 이들만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울도 죽었습니다.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삼상 31:6)
이스라엘의 왕이 죽었습니다. 왕자 세 명도 이 전쟁에서 함께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왕이 죽고 왕자들이 죽으면 백성들은 당연히 흩어지고 도망갔을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누구도 그들을 지켜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골짜기 저쪽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쪽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에서 사니라" (삼상 31:7)
백성들은 성을 버리고 도망했고, 블레셋 사람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무혈입성했습니다. 성도 자기들이 차지했습니다. 이 전쟁의 패배는 과거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가지고 나왔다가 철저하게 패배한 것에 비견될 정도로 완전한 패배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강력하게 짓밟았습니다.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도록 그들을 모욕했습니다.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알리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고 그의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삼상 31:8-10)
보통 국가 간 전쟁에서 왕이 죽으면 왕의 시체에 대한 예우는 해주는 것이 통상 관례입니다. 시신을 잘 수습해서 그 나라에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 고대나 지금이나 당연히 있는 일인데, 블레셋 사람들은 야만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훼손하고 철저하게 유린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제 다시는 이스라엘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이제 다시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겨루지 못하도록 그들의 마음과 영혼까지 짓밟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런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나라가 이렇게 될 때까지 사울이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자기 영토에 있는 백성들을 돌보라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세워주셨지만, 그는 백성을 돌보지 않고 다윗 한 사람을 쫓아다니는 일에 십수 년 동안 골몰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했는데 무당을 찾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울을 벌하셨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왕이 죽자 결국 이런 비참한 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은혜를 기억한 사람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모든 장사들이 일어나 밤새도록 달려가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내려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가서 거기서 불사르고 그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 (삼상 31:11-13)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수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7일 동안 금식했습니다. 사실 이 일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랬습니다.
첫 번째는 블레셋 사람들이 유린한 시체를 그들이 가서 수습하고 화장해주고 묻어주고 7일 동안 국상을 치르는 것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밉보일 일이었습니다.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수도 있었고, 오히려 더 강력한 응징과 보복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은 그것을 감수했습니다. 목숨을 걸었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다윗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다윗이 될 것을, 다윗이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가 되고 이스라엘을 이끌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두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신을 수습해주었습니다. 다윗에게도 잘못 보일 일이었고, 장차 그들의 삶이 굉장히 피곤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은 그들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인간적으로 볼 때 왜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한 것일까요?
이것은 사무엘상 11장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사울이 왕이 되고 난 직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나라도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기름부음은 받았는데 왕의 처소도 없었습니다. 사울은 자기 집에 돌아가서 소를 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암몬 사람 나하스가 군대를 이끌고 길르앗 야베스에 침입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은 암몬 사람 나하스를 당할 길이 없었습니다. 화친을 요청했습니다. "조공을 드릴 테니 우리와 화친합시다." 그런데 나하스가 비웃었습니다. "너희들 오른 눈알 하나씩을 다 가져오면 그때 생각해보자." 화친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은 이스라엘 전역에 전령들을 보냈습니다. "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그런데 힘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목숨을 걸고 길르앗 야베스에 쫓아올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울이 하나님의 영에 충만해서 군대를 이끌고 길르앗 야베스에 와서 그들을 도와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사울과 함께하셨고, 사울은 성령이 충만해서 길르앗 야베스를 돕고 암몬 사람 나하스를 쫓아내 주었습니다.
이 일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는 뼈에 사무치게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이 감사를 그들은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살았습니다.
비록 하나님께까지 버림받은 사울이었고, 백성들 누구도 사울을 좋아하거나 사랑하지 않았고, 비록 아들들까지도 사울과 등을 돌리는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은 그에게 받았던 단 한 번의 사랑과 은혜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있을 때, 그때 우리를 도와준 사울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블레셋의 세력에 침공당할 위기가 와도, 다윗에게 일생 동안 밉보여서 수십 년 동안 피곤한 인생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들은 이런 상황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목숨을 걸고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준 것입니다.
사실 사울이 죽었는데 이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누가 손가락질하겠습니까? 죽어서 매달려 있는 사울의 시체에 가서 돌 하나 던진다 하더라도 누가 그들을 책망하겠습니까? 그런데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은 받은 은혜를 반드시 기억하고 은혜를 갚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제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살고 있습니다. 좁게 보면 올 한 해 동안 우리가 받은 크고 작은 은혜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살아가는데 나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 그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다는 한마디를 전하고 그분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생을 크게 폭넓게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여기까지 올 때까지 나를 도와준 사람,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사람, 그분들을 기억하고 감사를 표현하는 우리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푼 은혜만 생각하지 말고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에 기대어 살아가고 은혜를 갚아주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르앗 야베스 주민 같은 그런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대림의 기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 지시고 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산 제물이 되신 그 놀라운 은혜를 받았건만, 우리는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가 베푼 작은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을 원망하고 책망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일생 동안 갚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일생 살아오면서 여기까지 올 때까지 받은 은혜가 크고 놀랍습니다. 사람에게 받은 크고 작은 은혜들을 기억하도록 도우시고,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처럼 우리도 그 받은 은혜를 갚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지금까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그분들의 은혜를 기억하고 떠올리고 이름을 불러 가며 기도하게 하시고, 우리가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마음껏 은혜를 갚고 감사하다는 한마디로 우리의 일생이 따뜻하고 빛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첫째는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기본이라는 진리입니다. 그들은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고 백성들에게도 외면당하는 상황에서도, 위기의 순간에 자신들을 구원해준 그 한 번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어도 받은 은혜는 변치 않는 감사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은 크고 작은 은혜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은혜를 갚는 것이 때로는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라는 현실입니다.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은 블레셋의 보복과 다윗의 오해라는 두 가지 위험을 모두 감수하면서도 사울의 시신을 수습했습니다. 진정한 은혜 갚음은 자신의 이익이나 안전보다 받은 은혜에 대한 의리를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손해를 보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받은 은혜를 갚는 것이 참된 인품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은혜의 근본이라는 깨달음입니다.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사울에게 받은 은혜를 기억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구원의 은혜를 평생 기억하고 갚으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관계에서 은혜를 기억하고 갚는 삶의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달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은혜도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처럼 받은 은혜를 깊이 기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기회가 될 때마다 은혜를 갚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