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3장

성경
사무엘상

간절한 기도

사무엘상 3장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가지 형태로 은혜를 주시는데 그 은혜의 절정이 바로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데 그 구원은 업적이나 공로로 하지 않고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이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을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업적을 많이 세운 사람, 권세와 세속적 권력을 가진 사람의 순서대로 줄을 세웠다면 천국도 차별받는 곳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힘이 없는 사람, 권세가 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이 어찌 감히 천국을 꿈꿀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이것은 복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로운 분이신지,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이 얼마나 우리에게는 값진 은총인지를 자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혈통도 뛰어넘습니다.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택하셨고 장자인 르우벤이 아니라 넷째 아들 유다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우리에게 극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 드리는 것도 우리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선택이라는 것을 우리 자신을 봐도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뿌린 대로 거두는 것도 있습니다. 기도가 대표적인 것입니다. 오래 하고 깊게 하고 넓게 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은총을 내려주고 싶어도 하나님이 아무리 응답하고 싶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무릎을 꿇지 않으면, 입을 열지 않으면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가 엎드리고 기도하고, 간구하고 오래도록 붙잡고 하나님과 씨름하고 하나님께서 이 기도에 응답해 주실 때까지 뒹굴고 분투하는 자,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 걸까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받기 즐겨하시는 이유는 그 기도가 바로 겸손한 자의 외침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하지 않은 자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업적을 의지하고 자신의 물질과 주먹을 믿는 자는 결단코 엎드리지 않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겸손의 표시이고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환경과 자세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하나님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삼상 3:2)

엘리의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는 그때, 이는 엘리의 나이가 많아서 늙어서 눈이 침침해졌다는 것과 동시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영적인 상태를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안이 어두워졌다는 뜻입니다.

사실 그는 마음이 상한 여인 한나가 성전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그 여인이 술주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로 영안이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께 바칠 제물을 도둑질하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한 영안이 어두운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안목이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자신의 결단력이 점점 사라져 간다는 것을 느꼈다면 그는 제사장이자 사사로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엎드려 기도해야만 옳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는 여전히 자기 처소에 누워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좋은 환경입니까? 제사장이자 사사로서 성막이 바로 자기 눈앞에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생각만 열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기도할 수 있고 그 전에서 기도하는 모든 능력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 백성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자신의 어두워진 영안을 회복시켜 달라고도 기도하고,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처소에 누워 있습니다.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주변의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기도하지 않으면 그뿐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삼상 3:3)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워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전에서 잠들었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어린아이입니까? 젖 뗀 후에 그의 어머니가 실로에 있는 제사장 엘리에게 데려다 놓았고 거기서 매년 어머니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올라올 때마다 에봇을 지어다가 입혀준 그 아들, 어머니가 지어준 에봇을 입고 하나님의 전 안에 누워서 기도하다가 잠든 이 아이를 보면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답습니까?

그도 어린아이가 잠이 참 많을 텐데 자기 처소에 누워서 잠자고 싶었겠지만, 하나님의 등불을 지킨다고 하나님의 전 안에서 누워 자고 있는, 기도하다가 잠든 이 아이를 하나님이 보실 때 누가 더 귀하겠습니까? 직분으로는 엘리가 사사요 제사장이지만 그러나 기도하는 아이는 바로 사무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삼상 3:4)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나타나시고 하나님이 누구에게 응답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엘리가 아닌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자기 처소에서 누워서 잠들어 있는 엘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 하나님의 궤가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누워서 잠든 사무엘을 하나님은 부르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사사라서 부르는 것이 아니고 제사장이라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자를 부르시고 기도하는 자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어른이라서 말이 통하기 때문에 대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어린아이라도 기도하는 자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오늘 우리가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장로이기 때문에 중직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하나님이 그와만 대답하고 응답하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런 착각에서 이런 교만에서 깨어나야 됩니다. 하나님은 나와만 말씀하시고 하나님은 나에게만 응답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결단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순간 하나님을 가장 간절히 찾는 자, 자신 앞에 가장 겸손히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자,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오는 자, 그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마음이 상한 여인 한나에게 하나님이 응답하셨고 가장 어리고 연약하지만 성전에서 엎드려 기도하는 아이에게 응답하신 하나님, 그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 환경을 사용하지 못하면 무엇합니까? 목사는 항상 교회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출근도 교회로 하고 교회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바로 자신의 삶의 영역 안에 있는데, 1분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목사에게 응답하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항상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고 엎드려 구하고 기도하는 자, 아무리 어린 자에게도 하나님은 반드시 나타나시고 응답하십니다.

"사무엘이 자람에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삼상 3:19)

하나님은 그렇게 기도하는 사무엘을 이렇게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로 이런 기도를 자주 드립니다. "하나님 제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마시고 다 들어주십시오." 그런데 사무엘처럼 기도해야 하나님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들어주실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고 엎드려 기도하고, 간구하는 그런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그 기도를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다 들어주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이방인 고넬료가 나옵니다. 이방인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경외해서 온 식구들과 함께 예배드렸고 기도했고 구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너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방인이었지만 한 번도 하나님을 경험한 적이 없었지만 그러나 열심히 기도하고, 간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베드로를 감동시키시고 그의 집에 찾아가게 하셨고 그 집에서 세례를 베풀어 주셨고 이방인 최초로 성령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이라고 차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어린아이라고 차별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간절한 자를 찾아오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 오늘 이 순간 가장 간절하게 엎드려 구해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환경보다 기도하는 자세가 더 중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엘리는 제사장이자 사사로서 성막이 바로 자기 눈앞에 있는 최고의 환경이었지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전에서 기도하다가 잠들 정도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기도하지 않으면 그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간절한 자를 찾아오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직분이나 나이를 보고 부르시는 분이 아니시고 지금 이 순간 가장 간절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겸손하지 않은 자는 기도하지 않지만, 기도한다는 것은 겸손의 표시이고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셋째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고 엎드려 기도하고 간구하는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그 기도를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다 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매 순간 하나님 앞에 깨어 간절하게 기도하여 우리의 상한 심령이 하나님께 상달되고 우리가 자녀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이 나라 민족과 세계 열방을 위하여 올려드리는 모든 기도에 응답받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엎드려 기도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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