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이동
사무엘상 4장
2천년대 초반 한 통신사의 유명한 광고 카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는 당시 젊은이들의 세태를 정확히 반영했습니다. 연인들의 마음이 순식간에 여러 번 바뀔 수 있다는 현실을 담은 명카피였습니다. 그런데 사랑만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을 향한 소비자의 마음도 움직이고, 아주 사소한 실수 하나로 불매운동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나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영광도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께서 개인이나 가정, 교회나 나라에 주신 복과 은혜가 고정불변이고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담아낼 능력이 되지 않거나 받을 자격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은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영적 미혹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1차 전투에서 밀려 약 4천 명의 군인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위기감이 팽배한 가운데 이스라엘 장로들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삼상 4:3-4)
지혜로운 사람들이라면 엘리와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 결정에 반대해야 옳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바로 서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데 언약궤만 모시고 간다고 이길 수 있겠습니까? 4천 명이 죽임을 당하고 전쟁에서 졌다면 죄를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는 것이 순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 십계명의 두 돌판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십계명 두 돌판,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언약궤는 곧 말씀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모시고 나간다고 해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우상 숭배입니다.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성경책을 들고 계약서에 사인하러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평소에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수험생이 시험 칠 때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다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징계의 현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언약궤를 모시고 나간 2차 전투에서는 3만 명이 죽임을 당하고 언약궤는 빼앗기고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치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 중에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삼상 4:10-11)
언약궤가 없었을 때는 4천 명이 죽었는데, 언약궤를 모시고 나갔을 때는 3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블레셋을 향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하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믿음은 회복하지 않고 물건에만 집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직접 심판하신 것입니다.
엘리는 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엘리의 며느리이자 비느하스의 아내는 당시 임신 중이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아이를 낳다가 죽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삼상 4:21-22)
이가봇, 영광이 떠났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마지막 외침은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린 말입니다. 영광이 떠났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영광이 떠났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엘리의 집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이지, 이스라엘에서 영광이 떠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던 어린 사무엘에게 하나님은 역사하셨고,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40년 동안 엘리가 사사로 지내면서 망쳐놓았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고 사무엘에게 촛대를 옮겨주셨습니다. 영광은 이스라엘에서 떠난 것이 아니라 엘리의 집안에서 떠난 것입니다.
영광 상실의 원인
왜 엘리의 집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을까요?
엘리의 문제를 보면, 그는 가장 좋은 영적 환경인 성전에 있으면서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지 않았기에 영적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아픈 여인 한나가 기도하는데 그 기도를 술주정으로 생각했습니다. 제사장이고 사사였지만 기도하지 않아서 영안이 어두워진 사람이었습니다. 동시에 자녀 교육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따끔하게 책망하지 못했고,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제사장의 직무를 빼앗지도 못한 미련한 아버지였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어땠습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성전 제물을 자기 마음대로 먹어버렸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자들이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우상 숭배의 도구로 삼았던,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서 영광을 거두십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직분이나 지위를 보고 은혜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 마음의 진정성을 보시고 응답하시는 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엘리는 제사장이었고 사사였지만, 그의 직분이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현재적 자세와 마음의 상태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와 함께 머물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도의 삶, 말씀에 대한 순종, 그리고 첫사랑의 열정을 잃지 않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종교 행위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진정성 있는 영적 생활만이 하나님의 임재를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셋째는 영적 게으름과 타락으로 인해 촛대가 옮겨지는 비극을 당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는 믿음의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계시록 2장 5절에서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경고하신 것처럼,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거룩히 보존하려는 자들과 함께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거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