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5장

성경
사무엘상

능력의 근원

사무엘상 5장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힘센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삼손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인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신 사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손의 힘이 그의 머리카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는 나실인으로서 태어나서부터 머리카락을 한 번도 자르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보이는 것일 뿐, 사실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와 함께할 때 그의 힘이 가장 강했던 것입니다. 들릴라의 꾀임에 빠져 힘의 비밀을 털어놓고 머리가 밀린 후 블레셋에게 붙잡혀 두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던 삼손이 블레셋의 잔치에서 조롱을 당할 때, 그는 두 기둥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한 번만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둥을 밀어 건물을 무너뜨렸을 때, 그가 살아 있을 때 죽인 사람들보다 죽을 때 함께 죽인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머리털이 하나도 없었을 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이 사실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 그의 능력의 근원이지 머리카락이 힘의 근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머리카락은 단지 하나의 상징이었을 뿐, 사실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그의 힘의 유무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의존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능력이 있는 물건을 사랑하고, 조금이라도 신통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신물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약함과 악함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당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조금이라도 힌트를 주셨다면, 사람들은 형상을 만들기에 바빴을 것이고, 말씀 읽는 것보다 형상 만드는 일을 더 좋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는 선민 이스라엘도 이런 우상 숭배의 모습이 그들의 삶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했습니다. 1차 전투에서 4천 명이 죽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고 나간 2차 전투에서 3만 명이 죽었습니다. 전쟁에서 진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긴 것이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 제사장들도 전사했습니다.

반면 블레셋 사람들 입장에서는 전쟁에서 이긴 것보다 더 기분 좋은 것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아 온 것이었습니다. 고대 전쟁은 나라 간의 전쟁 이전에 그들이 섬기던 신들의 전쟁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삼상 5:1-2)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곤의 신전에 두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큰 상징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 다곤이 여호와를 이겼다고 여겼고, 언약궤를 전리품으로 다곤 신전에 진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의 역사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삼상 5:3-4)

이들은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아스돗에 두지 못하고 가드로 옮겨갔습니다. 그런데 가드에서는 더 이상한 일, 무서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삼상 5:8-9)

가드 사람들도 아우성이었습니다. 다시 에그론으로 옮겨가려고 하자 에그론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가져오지 말라고, 이제 블레셋 지경에서 이 궤를 다시 돌려주자고 그들이 전부 야단법석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정말 하나님의 언약궤에 신비한 마력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정말 하나님의 언약궤에 신비한 힘이 있었다면, 그 언약궤를 메고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진 것입니까? 언약궤가 없었을 때는 4천 명이 죽었는데 언약궤를 모시고 나왔을 때는 3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궤 자체에 힘이 있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결국 비밀은 여기에 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삼상 5:6)

여호와의 손에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손이 그들을 친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다곤의 신을 친 것이고, 여호와의 손이 블레셋을 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과 우상 숭배

그런데 여호와의 손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들의 눈에 나타나지 않고, 불신자들인 블레셋 사람들이 보는 것은 그저 여호와의 언약궤라는 눈에 보이는 물건 하나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블레셋 사람들이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언약궤에 신통력이 있다고 믿고 그것을 믿고 전쟁에 나갔다가 패하지 않았습니까? 블레셋 사람들도 하나님의 언약궤라는 물건만 보고 거기에 신통력이 있다고 믿었지 않습니까? 불신자들과 똑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만 다니면, 가방 들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기복적인 믿음은 결단코 될 수 없습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건물에만 들락거리는 것입니다.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과 그저 인간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뿐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 말씀의 능력이 있음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교회는 벽돌로 지은 콘크리트 건물일 뿐이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그저 혈과 육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말씀을 얼마나 믿고 신뢰하고 따르고 있느냐 하는 믿음입니다.

잘못된 믿음의 뿌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한번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여호수아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 그들이 어떻게 건넜습니까?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앞장섰습니다. 그들의 발이 창일하게 흘러내리던 요단강에 닿을 때 요단강이 멈춰 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서 요단강 강바닥을 밟고 건넜습니다.

그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언약궤에 큰 능력이 있다고, 이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닿자 물이 멈춰 서고 우리는 그 뒤를 따랐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그들에게 보여주고자 하신 것은 언약궤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언약궤 안에 있는 십계명의 두 돌판,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에게 이런 위대한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착각했습니다. 언약궤만 메고 나가면, 그 언약궤만 따르면 우리에게는 요단강도 멈춰 서고 승리하고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가방 들고 교회만 다니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우상숭배적인 형식주의가 아니라 참된 믿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며, 그 말씀이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하는 생명력 있는 신앙을 추구해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 행위보다는 내면의 진정성과 말씀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둘째는 눈에 보이는 것에 의존하는 신앙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신뢰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언약궤라는 물질적 상징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적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역사하시며, 그분의 능력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셋째는 피상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에서 탈피하여 말씀의 본질을 추구하고 그 본질을 따라 살아가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외적인 종교 활동이나 물질적 축복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실천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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