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과 믿음
사무엘상 6장
중세 천년이 끝나고 근대가 시작된 결정적 계기는 사람들의 사고 전환이었습니다. 중세 천년 동안 사람들은 신 중심,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사고하고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근대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인간 중심으로 사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 자연현상은 그들의 탐구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비도, 우박도, 바람도, 눈도, 햇볕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근대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자연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는 왜 내리는 것이며, 바람은 어떻게 부는 것이며, 우박은 도대체 하늘에서 어떻게 내리는 것인지 실제적으로 과학적 탐구가 늘기 시작하고 과학적 사고로 모든 것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한 것, 이 실증적인 것만을 진리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하나님을 고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게 여겼고 더 이상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했고 실증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무시했습니다.
오늘 대부분의 불신자들이 그런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만 멈추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이면에 계신 하나님을 살펴보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깨달아야 하는데, 불신자들은 거기서 멈추는 것이 문제입니다.
블레셋의 딜레마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역시 그런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삼상 6:1)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1차 전투에서 4천 명, 2차 전투에서 3만 명이 죽었습니다. 블레셋은 거대한 승리를 거두었고, 그보다 더 기쁜 것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와서 이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일곱 달 동안 이상한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곤의 신전에 두었는데 일어나 보니 다곤의 신이 넘어져서 목이 부러지고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몸뚱이만 남았습니다. 놀라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른 지방으로 옮겼는데, 옮기는 곳마다 그곳 지방 사람들이 독한 종기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보낸 세월이 일곱 달이었습니다.
이제 이들은 이 언약궤를 더 이상 그들이 모시고 있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다시 돌려보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돌려보내는 방법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고 돌려보낼 것인가?
지금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궤 자체에 신통한 마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언약궤는 궤짝일 뿐인데 여호와의 손이 그들을 치는 것인데, 그 이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손길을 그들은 보지도 않았고 볼 생각도 없었습니다.
블레셋의 대응
그래서 이들은 블레셋의 제사장들과 점술가들을 찾아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그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그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이유도 알리라 하니" (삼상 6:2-3)
그저 보내면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채로 보내는 것이니 그렇게 보내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속건제를 드려서 하나님을 달래서 보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인 속건제를 흉내 낸 것입니다. 어쨌든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성의를 다해서 하나님을 달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블레셋 사람들이 궁금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신 것인지, 정말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인지, 다곤의 신전에서 다곤의 신이 넘어지고 목이 부러지고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가는 곳마다 독종이 생긴 것은 혹시 우연에 의한 것인지 이것을 실험해보고 싶었습니다. 너무너무 궁금해서 알고 싶었습니다.
실험의 설계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삼상 6:7-9)
일단 소 두 마리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들은 아직 젖 먹이는 송아지를 둔 암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 두 마리는 한 번도 수레를 매어본 적이 없는 소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수레를 매게 했습니다. 그리고 송아지들을 집으로 억지로 떼서 돌려보냈습니다. 수레를 모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수레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드릴 그들 나름대로의 속건제 제물을 함께 실었습니다. 그리고 목적지를 향하여 출발시켰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대개의 경우라면, 어미소와 떨어진 송아지들은 울고 불고 난리법석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젖 먹이는 송아지를 떼어보낸 소들도 송아지를 찾느라 야단법석이었을 것입니다. 한 번도 수레를 매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수레를 끌고 정확한 길로 걸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그리고 이 수레를 모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대로로 향하여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앙을 내린 것이고, 일반적으로 수레가 가다가 멈추거나 소들이 날뛰거나 송아지가 뛰거나 하면 이건 우연히 일어난 일이다. 이렇게 결론 내리고 출발시켰습니다.
실험의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가니라" (삼상 6:12)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 끝까지 자기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임이 명백해졌습니다.
이제 이쯤 되면 블레셋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이 명확해졌다면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그들의 신 다곤을 친 것이고,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가는 곳마다 독한 종기를 내린 것이 확실해졌지 않습니까? 그러면 무릎을 꿇어야 됩니다. 그리고 살려달라고 부탁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와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겠느냐고, 우리가 지금까지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고 살 길을 모색해야 옳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거기까지였습니다.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놀라고 실험은 했는데 실험 결과를 보고도 인정하는 것 그 이상은 어떤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으려는 마음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장사 지낸 지 나흘 되어서 이제는 썩어서 냄새가 나는 죽은 나사로를 돌문을 굴려놓고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하시니 수족을 베로 동인 나사로가 걸어 나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 적대적인 종교 지도자들도 이 광경을 보았다면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해야 옳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그날부터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기적도 믿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오늘 불신자들의 태도가 바로 이렇습니다.
도마는 정말 믿고 싶어서 예수님의 손을 만져보고 예수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해보라고 했습니다. 손도 만져보라고 하고 옆구리에 넣어보라고 했습니다. 도마는 그때부터 확신했습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한 도마는 인도까지 가서 복음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싶고 믿고 싶어하며 그분의 역사를 확인하고 싶다면, 하나님께서 명확한 증거와 확실한 표징을 보여주실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단순히 놀라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증거를 확인한 후에는 반드시 믿음의 결단과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길을 온전히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처럼 단지 놀라기만 하고 마는 것은 불신자들의 전형적인 반응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수많은 기적과 이적, 놀라운 역사들이 있습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고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삶에 매 순간 일어나고 있습니다.
셋째는 이런 놀라운 경험들을 통해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서 우리에게 역사하고 계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확신한 믿음에 굳게 서서 그 신앙의 길을 오늘도 담대히 걸어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매 순간 기적을 부어주시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 하나하나를 목격하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인정하지 못하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고, 최선을 다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감당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