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8장

성경
사무엘상

영적 책임

사무엘상 8장

어린아이들은 천진난만한 마음과 맑은 영혼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선사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상황이나 사람을 볼 때 전체를 조망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면만 바라본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복잡한 상황의 전체적 맥락을 파악하고 사람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한 면만 보고 성급하게 결론 내리는 경향으로 인해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이러한 습관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된다면 건전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성숙한 어른은 상황을 단면적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사람이나 상황을 판단할 때 충분한 시간을 두고 관찰하며 신중하게 숙고하여 판단의 오류를 최소화하려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난 사람이 과도하게 친절하게 접근한다면, 그 친절함의 진정성을 분별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성경을 읽는 우리의 자세 또한 이와 같아야 합니다. 한 절이나 한 장만을 독립적으로 해석한다면 성경 전체의 의도를 오해할 위험이 있습니다. 반드시 전후 문맥을 면밀히 살피고 성경 전체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오늘 본문이 전하는 진정한 메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을 입체적이고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올바른 태도입니다.

왕을 요구한 백성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을 세우도록 허락하시는 역사적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사무엘에게 끈질기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시겠다고 허락하셨습니다.

사무엘이 고령에 이르러 자신의 아들들을 사사로 임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심각한 도덕적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삼상 8:3)

자녀 교육이 부모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고금을 통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현실이지만,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의 자녀들마저 이런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조성되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마치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이 사무엘을 찾아가서 왕을 세워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삼상 8:4-5)

당시 이스라엘을 제외한 근동의 모든 민족들은 이미 왕정체제를 확립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만이 왕 없는 신정국가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전쟁 상황에서 강력한 왕권 하에 모든 백성이 단결하여 대응해야 할 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늘 불편함과 열등감으로 작용했습니다.

왕의 제도를 경고한 사무엘

사무엘 역시 자신의 아들들이 부족하고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왕정체제만은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집하여 왕이 세워질 경우 일어날 수 있는 폐해들을 구체적으로 경고했습니다.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삼상 8:11-13)

사무엘은 왕정체제가 도입되면 자녀들이 왕의 사병처럼 부려질 것이며, 나아가 백성들의 재산까지 왕이 자의적으로 수탈할 수 있고, 재산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왕의 제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것이라며 백성들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강했습니다.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삼상 8:19)

그들은 이처럼 더욱 강력하게 왕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사무엘은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삼상 8:21-22)

영적 지도자들의 실패

이 사건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중요한 진실을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당신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왕정체제를 허락하셨을까요?

사람들에게는 각자 원하는 바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자유의지를 존중하여 방임하시다가 결국 사울이라는 악한 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당하게 하셨다고만 이해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보다 깊이 있게 살펴봐야 합니다. 사무엘이 왜 백성들의 왕정 요구를 더욱 강력하게 거부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파악해야 합니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고 열두 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하신 후, 왕을 세우시는 대신 레위 지파를 48개 성읍에 분산 배치하셨습니다. 레위 자손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교육과 재판업무,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원래 계획은 왕정체제가 아니라 말씀 중심의 신정체제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레위지파의 타락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읍을 이탈하여 자신들의 직분을 버렸습니다. 무단히 거처를 옮겨 다녔고, 첩을 두는 등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심각하게 타락했습니다.

레위 자손들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사사제도를 도입하셨습니다. 초기 사사들은 정직하고 성실하며 진실하게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후기 사사들마저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기드온은 초기에는 훌륭한 지도자였으나 후기에는 타락하여 많은 아내를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거룩한 결혼제도를 저버린 것입니다. 입산과 압돈 등도 여러 아내를 두고 수십 명의 자녀를 둠으로써 백성들에게 나쁜 본을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이 이런 상태라면 백성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사사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그때에 왕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였던 엘리는 40년간 통치했지만, 자신의 처소에서 누워만 있으면서 기도하지 않는 영적으로 무력한 지도자였습니다. 그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는 불경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이었던 사무엘조차도 자녀 교육에는 실패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이 왕을 요구했을 때, 더 이상 거절할 명분이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였던 레위인들이 자신들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했더라면,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 직분을 충실히 수행했더라면 왕정체제를 요구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로 인한 고민도 없었을 것입니다.

레위지파가 무너졌더라도 사사들이 영적으로 건전하게 살았더라면, 엘리가 제대로 기도하는 사람이었더라면, 사무엘이 자녀들을 영적으로 잘 지도했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잘못으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교훈을 주는 사건입니다. 자녀들이 방종하게 살고 신앙공동체 밖에서 방황하는 것을 어찌 그들만의 탓으로 돌릴 수 있겠습니까? 결국 우리를 포함한 이 시대 어른들의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돌이켜보면 우리 자신이 잘못한 것이 더 많을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방종하고 타락하는 현상도 사실은 우리 교회의 잘못이며,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결과가 상당 부분일 것입니다. 냉정히 성찰해보면 그들의 문제를 탓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문제를 먼저 인정해야 할 상황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깊은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은 백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레위인들과 사사들, 그리고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영적 지도자들의 연속된 실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각자도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에서 영적 지도자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다음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둘째는 다음 세대를 위한 견고한 영적 유산을 남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조차 자녀 교육에서 실패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경종을 울립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과 후세대에게 단순한 지식이나 재산이 아닌 살아있는 신앙의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올바르게 양육하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셋째는 겸손한 회개와 영적 갱신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 시대의 영적 혼란과 도덕적 타락을 젊은 세대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 기성세대가 먼저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믿음의 본을 보이며, 말씀 중심의 거룩한 삶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겸손히 회개하고, 우리 자신을 철저히 점검하여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온전히 살아가기로 결단하고 고백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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