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의 중요성
사무엘하 10장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사람들마다 아주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일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단순하고 쉽게 만들어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하거나 복잡한 일을 단순하게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들의 본질적인 차이는 그 중심과 본질을 볼 수 있느냐 볼 수 없느냐 하는 차이입니다. 그 중심과 문제의 본질, 핵심을 꿰뚫지 못하면 주변만 계속 찌르게 됩니다. 주변을 찔러가면서 여기저기 변죽을 울리니까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일이 어렵게 풀리며 힘들어지고, 주변 사람들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사람, 핵심을 제대로 살피고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아무리 일이 복잡하다 하더라도 일에 맥을 짚고 일을 쉽게 만들어 갑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암몬 자손들은 아주 단순한 일, 아주 간단한 일을 어렵게 만들어서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다윗의 호의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다윗이 이르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 같이 하리라 하고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보내 그의 아버지를 조상하라 하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매" (삼하 10:1-2)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사울을 피해 다니면서 광야를 십수 년 동안 피해 다니며 전전했습니다. 그러던 과정에서 그는 여러 사람들과 사귀고 만남을 가지며 은혜를 베풀기도 하고 은혜를 입기도 했습니다. 암몬 자손의 왕에게도 그는 은혜를 입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왕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왕이 됩니다.
이제 다윗은 자기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었던 암몬 왕을 조문하려고 했습니다. 신하들을 보내서 그에게 선물을 보내고 그 가족을 위로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암몬 자손은 다윗의 호의와 다윗의 마음을 귀하고 아름답게 받기만 하면 됩니다. 이게 본질이고 이것이 핵심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문상을 가고 그 조문객을 맞이하는 것,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암몬의 신하들이 왕에게 이상한 말을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암몬 자손의 관리들이 그들의 주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객을 당신에게 보낸 것이 왕의 아버지를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당신에게 보내 이 성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니" (삼하 10:3)
이제 막 왕이 된 하눈은 신하들의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까지 마음에 걸립니다. 걱정이 되고 아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불편해지고, 그래서 결국 하눈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외교적 결례
4절을 보십시오.
"이에 하눈이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삼하 10:4)
이런 일은 그냥 장난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외교적으로 큰 결례가 되고 이것은 국가 대 국가로서 전쟁을 선포하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다윗이 이 일을 듣고 굉장히 화를 냅니다. 이것은 암몬이 이스라엘과 전쟁하자는 말과 다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암몬도 이렇게 하고 나서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을 알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큰 잘못을 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암몬은 아람을 원군으로 청합니다. 다윗이 전쟁을 준비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가만히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외교 사절단이 이런 일을 당하고 왔기 때문에 다윗도 요압 장군을 보내서 그들을 징벌하려고 합니다.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과 암몬, 아람의 연합군이 전쟁을 벌입니다. 그런데 싱겁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13절, 14절을 보십시오.
"요압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아람 사람을 대항하여 싸우려고 나아가니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고 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이 도망함을 보고 그들도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간지라 요압이 암몬 자손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삼하 10:13-14)
정작 싸움을 일으킨 암몬 자손은 포기하고 항복하고 도망가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돕기 위해서 온 아람은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이스라엘과 일대 전투를 벌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함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기니 그러므로 아람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니라" (삼하 10:19)
결국 아람도 이스라엘 앞에서 항복하고 그들도 다시는 암몬을 돕지 않았습니다.
열등감과 불안감
도대체 암몬은 무슨 자신감으로 왜 이런 일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까?
첫 번째로, 암몬 사람들은 열등감과 불안 때문에, 특히 이제 막 왕이 된 하눈에게는 불안도 있었고 열등감도 있었기 때문에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막 떠오르는 신흥 강대국이었습니다. 사울이 왕이었을 때는 별 볼일 없는 나라였는데, 다윗이 왕이 되자마자 주변 나라들을 복속시키고 무섭게 치고 올라가서 주변 여러 나라들에게는 아주 위협스러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이 조문객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불안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열등감이 찾아옵니다. 다윗이 객으로 다닐 때는 사울에게 쫓겨서 광야 이곳저곳을 다닐 때는 우리 아버지에게 와서 허리도 굽히고 은혜도 입었던 저 사람이 이제 왕이 되어서 조문객을 보내는 것이 마음이 불편합니다. 이것이 하눈에게 있는 열등감입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열등감이 있으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됩니다. 작은 일도 크게 만들고 별것 아닌 일도 어렵게 만들어 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나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나를 붙들고 계시는데,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열등감이 없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고 나와 또 다른 사람을 비교하면 우리는 끝없는 열등감에 시달리고 말 것입니다.
길고 긴 인생을 살아가면서 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며 살아야 되겠습니까? 하눈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도 한 나라의 왕이고 다윗도 한 나라의 왕인데, 자기 자신과 다윗을 비교하면서 말이 안 되는 일을 벌이고 그 나라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이 열등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 마음속에 있는 혹시라도 자리하고 있는 크고 작은 열등감과 불안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 한 존재를 위해서 그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다는 그 놀라운 사랑을 영접하기만 하면 우리는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서 당당한 하루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상대방에 대한 무지
두 번째로, 암몬이 이런 일을 벌인 것은 다윗을 몰라도 너무 몰랐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명분 없는 전쟁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다윗이 암몬을 삼키려고 했다면, 이런 식으로 전쟁하지 않습니다. 조문객을 위장한 사람들을 보내서 그 나라를 탐지하게 하고 그 나라의 강함과 약함을 살피게 하는 이런 비겁한 식으로 전쟁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전쟁을 하려고 하면 다윗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이 전쟁을 해야 되는 겁니까? 하지 말아야 되는 겁니까?" 하나님께 먼저 묻고 정정당당하게 선전포고하고 그리고 전쟁하는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런데 암몬 자손들은 다윗을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상대방을 모르면 작은 일도 큰일로 만들어 갑니다. 본질을 제대로 풀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이 누군지, 오늘 하루 만나야 되는 사람이 누군지를 분명히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인지 믿지 않는 사람인지, 세상에 권세 잡은 사탄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인지, 그렇다면 우리는 더 기도 많이 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는 영적 무장을 하고 나가야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지, 우리 스스로 내가 함께 하는 사람들, 상대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잘 알면 실수하지 않습니다. 암몬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오늘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혜로운 대응
요압의 지혜로운 대응도 주목할 만합니다. 11절과 12절에서 요압은 아우 아비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르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가서 너를 도우리라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삼하 10:11-12)
요압은 상황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결과를 맡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질을 보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일의 본질과 핵심을 꿰뚫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암몬 자손들은 단순한 조문을 복잡하게 만들어 전쟁까지 일으켰습니다. 반면에 요압은 상황의 본질을 파악하고 지혜롭게 대처했습니다. 우리도 일의 중심과 본질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열등감과 불안감을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하눈의 열등감이 나라 전체를 위기에 빠뜨렸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주신 그 놀라운 사랑을 기억할 때, 우리는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함께 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알고 지혜롭게 대해야 합니다. 암몬 자손들은 다윗의 성품을 몰라서 실수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지 분별하고, 그에 맞게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며 모든 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