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1장

성경
사무엘하

죄의 시작

사무엘하 11장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세상의 모든 일은 단번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과정이 있고 단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좋은 일도 한 단계 한 단계 과정을 거치며, 나쁜 일 역시 반드시 전조가 있습니다. 어떤 학생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면, 그 학생은 그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약점을 메워가며 열심히 땀 흘려 공부한 결과입니다. 최선을 다해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공부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세상 언론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들은 단번에 그런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런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자신도 알고 주변 사람들도 알 만한 범죄의 조짐들을 하나하나 오랜 세월 동안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도 그냥 알아채지 못하고 흘려버리고, 자기도 이 문제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생각하고 건너간 나머지 스스로도 자기를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문제를 저지르고 맙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다윗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 사람이 과연 다윗이 맞나 할 정도로 그는 큰 죄를 짓습니다. 간음과 살인, 이것은 십계명에 명시된 심각한 범죄행위입니다. 그런데 그는 한순간에 간음과 살인을 동시에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태만으로부터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삼하 11:1)

이런 죄를 저지른 다윗에게는 그 이전의 전조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누구나 이런 단계를 거칠 만큼, 우리에게도 예외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심각한 죄의 고리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영적으로 깨어서 자기 자신을 매순간 돌아보고 각성했다면, 이런 심각한 범죄까지 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그는 죄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뭔가 어색하지 않습니까?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는데, 다윗이 나간 것이 아니라 다윗이 요압과 그의 온 군대를 보냅니다. 그리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다윗이 그 당시 얼마나 대단한 왕이었는지 그의 위상을 나타내는 장면입니다. 사실 왕국이 안정을 찾고 왕국이 주변 나라를 복속시키고 영토가 확장되고 세금이 잘 걷히고 부국강병해지면, 크고 작은 전투에 왕들이 나가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런 왕들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입니다. 요압을 비롯한 다른 신하들이 아마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 정도는 우리가 가서 해결할 테니 왕은 그냥 여기에 계십시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정체성을 가진 왕이 아닙니다. 다윗의 왕위는 아주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름받을 때 목자로서 부름받습니다. 목자는 목자장과 양들 사이에 있는 존재입니다. 양대를 목자로서 잘 이끌고 인도해야 되는 존재가 목자이며, 동시에 목자는 목자장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받아 수행하는 존재입니다. 자신이 마치 하나님처럼, 자신이 마치 그 위에 누구도 없는 것처럼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왕이 마치 신적 권위를 가진 것처럼 행할지라도, 하나님이 다윗을 세우신 이유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목자로서 양들과 항상 함께 있으라고 그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있어야 할 자리는 양들과 함께 있는 곳입니다. 양들이 전쟁하러 가면 그가 양들을 이끌고 가서 양들을 돌봐주고 책임져 주고, 그 양들이 위험을 겪지 않는지, 위기 상황에 서 있지 않은지 항상 눈동자같이 살피는 하나님의 대리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옳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자기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태만, 게으름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게으름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는 것, 그것이 게으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그 사명의 자리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몸은 열심히 움직이고 마음은 분주하고 생각도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리가 아닌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것, 이것이 영적인 태만이고 게으름입니다.

시험을 잡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삼하 11:2)

자기 자리에 있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데,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음으로 인해서 죄의 고리에 말려 들어갑니다. 이제 저녁 때 늦게까지 오침하다가 일어나서 왕궁 옥상을 거닙니다. 다윗은 지금 거닐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의 신하들, 그의 부하들은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말을 날리고 창을 던지고 싸우고 있는데, 그는 한가로이 거닐고 있습니다. 안목의 정욕에 사로잡힙니다.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시험거리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생으로서 시각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 시각과 청각과 촉각, 또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이런 것들, 감각적인 것들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합니다. 그런데 시험할 때 시험거리들이 지나가도록 내버려 둬야 됩니다. 붙잡으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여러 수십 가지, 수백 가지 시험거리들이 우리 눈앞을 지나가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지금 다윗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으니 영적인 시험, 안목의 정욕이 자기 눈앞을 지나갑니다. 이것을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둬야 옳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시험을 붙잡아 버립니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삼하 11:3)

사람을 보내 이 여인이 누군지 알아보게 시켰습니다. 시험을 붙잡은 것입니다. 그런데 참 다행스러운 것은 안전장치가 있었습니다. 이 여인에게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 남편 우리아는 충성된 종이었고, 지금 다윗의 부하들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 있는 군인이었습니다. 이 정도 되면 다윗이 여기서 깨달아야 했습니다. "내가 지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지금 내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 건가?" 거기서 회개하고 돌이키고 말을 달려서 전쟁터로 나가야만 옳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죄가 성장하다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삼하 11:4)

간음의 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간음까지 오는 과정을 보십시오. 태만, 게으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는 것. 누구나 지을 수 있는, 우리도 항상 이런 죄에 노출되어 있는 별것 아닌 것부터 시작하지 않습니까? 사탄이 던져주는 시험이라는 미끼가 하루에도 수십 개, 수백 개가 눈앞에서 지나가는데 그중 한 가지를 붙잡았습니다. 붙잡았는데 거기서 잠시 갈등이 생기지만 한 걸음 더 나갑니다. 거기서 간음의 죄를 짓습니다.

여인이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려옵니다.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전쟁터에 나가 있는 우리아를 칙령을 써서 불러들여, 그를 죽입니다. 살인까지 한달음에 달려가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것이 죄의 단계고 죄의 고리입니다. 다윗같이 훌륭한 사람이, 다윗같이 탁월하고 특별한 사람도 간음과 살인을 예사롭게 짓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처음 시작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디에 있어야 됩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명의 자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서 있으라고 한 자리, 그 자리가 가장 복된 자리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하시고 이 자리에 나와서 엎드리시는데, 기도하는 자리가 우리에게 가장 복된 자리가 될 줄로 믿습니다. 맡겨주신 사명, 섬김의 자리, 그 자리에서 최선 다해서 섬기고 사명을 잘 감당하시고, 그 자리에서 주시는 영적 기쁨과 은혜가 항상 우리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으라 한 자리가 아닌 또 다른 자리에 가 있으면 여러 가지 시험거리가 우리에게 물밀듯이 밀려옵니다. 그중 한 가지라도 붙잡으면 다윗 같은 죄를 짓지 말라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이 하루 우리가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하루를 시작하시고, 복된 은혜의 자리에 머무르는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자리, 그 자리가 가장 안전하고 복된 자리입니다. 다윗이 전쟁터에 있었다면 이런 시험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 섬김의 자리, 맡겨주신 일터의 자리에 성실히 있을 때 영적 시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시험거리를 붙잡지 말아야 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가지 시험거리가 우리 눈앞을 지나갑니다. 이것을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둬야 합니다. 붙잡는 순간 죄의 고리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다윗처럼 탁월한 사람도 작은 시험을 붙잡아서 큰 죄까지 이르렀습니다.

셋째는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승리해야 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시험거리를 던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시험을 이기며 온전히 승리하는 주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그 자리를 경홀히 여기지 않고 기쁨으로 섬기며, 오늘도 성령의 능력으로 가득 채워져 복된 은혜의 자리에 머무르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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