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징계
사무엘하 12장
부모는 자녀를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가 사랑하는 자녀들이 바르고 정직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마음에 두고 있는 소망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자녀가 하나님 앞을 떠나고 죄를 벗삼고 악을 행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을 부모가 누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런 경우가 생기면 부모는 자녀를 책망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정상적인 위치로, 다시 하나님 앞에 서도록 그리고 바른 길을 가도록 돌려놓으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이럴 경우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특별하게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녀를 책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백성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죄를 행하고 악을 행하면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하나님 앞에 돌려놓으려고 책망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인 다윗을 눈물을 머금고 채찍질하십니다. 그가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책망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삼하 12:9)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잘못을 범한 후에 하나님은 다윗을 징계하십니다. 다윗은 간음과 살인을 한꺼번에 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정말 다윗이 이런 짓을 했을까라고 생각할 만큼 이 어마어마한 죄를 범한 것도 작은 게으름, 태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해가 돌아와서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는데 다윗은 예루살렘 성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가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자기가 생각해도 이제 다윗의 위상이 이런저런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었고 자기 정체성을 망각한 것이었습니다.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사탄이 던져주는 시험을 봅니다. 흘려보내야 했지만, 그 시험을 붙잡았습니다. 태만은 안목의 정욕으로, 안목의 정욕은 시험을 붙잡는 것으로, 시험을 붙잡으면서 간음을 범하고 그 간음을 은폐하기 위해서 살인으로 나아갑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고 결국 그는 이 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우리아를 죽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 살인행위가 완벽한 완전범죄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도 알 수 없을 만큼 그가 철저하게 은폐했다고 생각하고 그는 혼자 남은 밧세바를 거둡니다.
아마 백성들이 다윗을 칭송했을 것입니다. 남편이 전쟁에서 사망했는데 남은 미망인을 왕이 거두어서 아내로 삼았다는 사실이 백성들에게 알려진 후에 사람들은 왕을 얼마나 높이 떠받들고 칭송했겠습니까? 선정을 베푼 왕이라고. 그런데 그의 검은 속내는 모르고 사람들은 박수를 쳤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만은 속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 모든 행위의 시작과 과정과 끝 그리고 그의 마음 중심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단선지자를 보냅니다. 그를 책망합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부드럽게 시작했다가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아주 강하게 직설적으로 그의 죄를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나단의 입을 통해서 다윗을 강하게 책망하시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보면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겼다"고 책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주목해서 귀 기울여 들어야 됩니다. 다윗이 저지른 죄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업신여긴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 걸까요? 하나님은 다윗을 그냥 일반적인 왕으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을 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자로 그를 세웠습니다. 목자장은 하나님이시고 목자장의 명령을 받아서 양들을 돌보는 목자로 하나님은 다윗을 세운 겁니다. 그래서 목자는 목자장의 음성을 듣고 백성들인 양들을 잘 돌봐 줘야 될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목자인 다윗이 양들을 어떻게 했습니까? 죽였지 않습니까? 목자가 목자장의 허락을 받지 않고 양을 죽이고 양의 인권을 유린하고 양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 욕심대로 데리고 다닌 이 죄를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업신여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음죄를 범하고 살인죄를 범했다는 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이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 것이니 너의 죄를 내가 가만히 두고 보지 않겠다.
세 가지 징벌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삼하 12:10)
하나님은 그러고 나서 다윗에게 세 가지 징벌을 여기서 철저하게 선포하십니다. 그 첫 번째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 징계는 칼이 내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 징계는 다윗의 인생에서도 이루어졌고 그의 사후에도 계속해서 지속됩니다. 다말, 암논, 압살롬 얽히고 설켜서 서로 죽이고 또 죽이지 않습니까?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이후로부터 반란까지 그의 집에 칼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다윗의 후손들, 그의 자녀들, 그가 죽고 난 이후에 그의 왕국에 얼마나 혼란스러운 일이 지속적으로 계속됩니까? 이것은 다윗의 죄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징계가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삼하 12:11)
두 번째입니다. 이 끔찍한 일이 압살롬의 반란 때 일어났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거슬러 반란을 일으키고 예루살렘 성을 차지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때 압살롬의 모사가 이렇게 조언합니다. "압살롬이시여, 다윗, 당신의 아버지가 남겨 둔 후궁들을 왕궁 옥상에서 범하십시오. 당신이 이 땅을 차지한 진짜 왕으로 백성들이 인정할 것입니다." 그대로 압살롬이 따릅니다. 입에 담기도 어렵고 부끄럽고 참담한 이 일이 그의 생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이 징계와 책망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에게 태어난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고" (삼하 12:14)
세 번째 징계는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낳은 아이를 하나님이 치셔서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십니다. 이 세 가지 징계가 다윗이 저지른 죄에 대한 결과입니다.
용서와 책임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삼하 12:13)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다윗은 나단이 이렇게 책망하는 것을 듣고 하나님 앞에 더 이상 죄를 은폐하거나 숨길 수 없음을 깨닫고 자기 죄를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죄 용서를 구합니다. 나단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다윗에게 죄 용서를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다윗은 용서를 구했고 하나님은 그 죄를 사하셨는데, 그런데 왜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이렇게 무섭게 징계하고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시는 겁니까?
이것은 하나님은 분명히 다윗의 죄는 용서하셨지만, 죄에 대한 결과와 책임은 자기의 몸에 자신의 후손에게 남겨두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잘 읽어야 됩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입술의 용서를 받으시고 죄 자체를 면책하셨다면 그 다음 또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인간은 완악한 존재고 인간은 언제든지 사탄의 시험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이므로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 다시 그런 무서운 죄를 범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기 위해서, 죄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 하나님께서 다윗의 몸에 새겨 주기 위해서 그에게 "죄에 대한 책임은 네가 지고 가야 된다." 하나님 그렇게 책망하고 계신 겁니다.
오늘 이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큰 교훈을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향해서 한 걸음 선을 넘어갈 때 주의하고 또 주의하고 다시 한번 생각하고 또 엎드려 기도해야 됩니다. "내가 잠시잠깐 정신줄을 놓고 잠시잠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죄의 선을 넘어서 그 책임을 내가 어떻게 감당할까?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이 사해 주시지만 그러나 그 책임을 내 몸에 어떻게 짊어지고 갈까?"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까?
그래서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다시는 죄짓지 않도록 하시려고 이렇게 죄에 대한 책임을 징계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다윗을 미워하셔서가 아니라 특별히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책임을 지고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깨닫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믿음의 자리를 잘 지키는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의 죄는 단순한 간음과 살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목자로 세우신 다윗이 양들을 죽이고 유린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과 같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지 않고 항상 경외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는 죄의 책임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지만 죄에 대한 결과와 책임은 그대로 지게 하셨습니다. 죄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였습니다. 우리도 죄를 향해 한 걸음 선을 넘기 전에 주의하고 또 주의하며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미워하셔서가 아니라 특별히 사랑하고 아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시려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자리를 잘 지키며, 게으름과 태만의 자리에 있지 않고 안목의 정욕에도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