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중심성의 위험
사무엘하 15장
공무원으로서 공직에 종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국민들의 충복으로 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지자체들이 점심시간 전면 휴무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여론의 시선이 매우 부정적입니다. 과거에는 시간을 나누어서 몇 명은 남고 몇 명은 식사를 하며 민원인들을 응대했지만, 이제는 점심시간에 사무실을 완전히 비우겠다고 한 이후 여론의 시선이 싸늘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공무원들도 정당한 점심시간을 보장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 시간 외에는 업무를 볼 수 없는 민원인들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한 단면만 보아도 공직에서 국민의 충복으로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공적 존재로서의 성도
하나님 교회의 성도들은 공직에 종사하는 자들보다 훨씬 더 공적인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중심성과 신앙생활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중심이어야 하고, 교회 중심이어야 하고, 나보다 믿음이 어린 성도 중심이어야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자라고 성장하고 성숙한다는 것은 자기중심성을 지속적으로 깎아내고 덜어내고 부정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극단적 자기중심성의 표본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본문에서 압살롬은 극단적인 자기중심성을 보여줍니다. 그로 인해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큰 위기를 겪게 됩니다.
압살롬은 자기 형 암논을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아람땅 그술로 가서 3년 동안 숨어 살았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죽은 암논을 잊고 압살롬을 향하는 줄 알고 요압이 계략을 꾸며서 압살롬을 데려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의가 상실되었습니다. 아들을 징계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 앞에서 정의가 무엇인지, 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본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동시에 아버지로서도 다윗은 낙제였습니다. 불러놓고 2년 동안 한 번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압살롬은 괴물이 되어갑니다. 아버지를 향한 분노를 키워갑니다. 극단적인 인물로 자라갑니다.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찬탈하겠다는 욕심, 아버지를 미워하는 그 마음으로 아버지의 왕위를 가져가겠다는 야심을 키워갑니다.
압살롬의 계획적 행동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삼하 15:1)
"자기를 위하여"라는 이 표현이 앞으로 압살롬의 모든 행위를 증명하고 설명하는 아주 중요한 키워드가 됩니다. 압살롬은 어떤 일을 하든지 자기를 위해서 했습니다. 압살롬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을 위한 것도, 이스라엘을 위한 것도, 백성을 위한 것도, 아버지를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에게로 수렴됩니다.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성읍 사람이냐 하니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삼하 15:2)
압살롬이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성문 앞에 서서 송사를 위해서 오는 사람을 맞이합니다. 누구에게도 기댈 데 없는 사람,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그 억울한 일을 해소해 줄 사람이 없는 자들,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 왕에게 이 억울한 일을 토로하고자 하는 자들을 왕자가 직접 만나 줍니다. 백성 입장에서는 얼마나 감사하고 고맙겠습니까?
왕을 만나려면 절차도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왕자가 성문 앞에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런 송사를 하기 위해서 올라오는 사람을 기다려줍니다.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삼하 15:4)
이렇게 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백성을 위한 것입니까? 아버지 다윗의 격무를 줄여주기 위한 것입니까? 정말 압살롬의 말대로 이 땅에서 정의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까?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철저히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4년간의 지속적인 계략
압살롬이 아침에 일찍 일어난 것도, 억울한 일을 당해서 오는 백성들의 송사를 들어주는 일도 겉보기에는 "이 왕자가 이제는 회심했구나, 이런 일을 통해서 자신의 지난날의 과오를 씻고 아버지의 격무를 줄여주고 그리고 백성들에게 자기 죄를 참회하는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압살롬은 그렇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사 년 만에 압살롬이 왕께 아뢰되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내가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 (삼하 15:6-7)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훔쳐냅니다. 4년 동안이나! 4개월도 이렇게 하는 일이 어려울 텐데 4년 동안이나 지속적으로 이 일을 365일 하는 일이 과연 쉬운 일입니까? 웬만한 자기중심성으로도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철저하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 자기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서 이 일을 지속적으로, 의도적으로, 오랫동안 꾸몄습니다.
완성된 반역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삼하 15:13-14)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압살롬의 자기중심성 앞에 철저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압살롬이 그렇게 일을 꾸미고 지속적으로 백성을 위하는 척, 왕을 위하는 척 한 것은 왕위를 찬탈하고 이스라엘을 가져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압살롬의 본 모습
과거에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한 것도 누이동생 다말을 사랑한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암논은 첫째 아들입니다. 압살롬은 셋째 아들입니다. 셋째 아들 압살롬이 왕이 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큰아들, 큰형 암논이 아니겠습니까?
그 암논이 자기 여동생을 겁탈했습니다. 압살롬이 보기에 좋은 구실이었습니다. 그가 분노를 구실 삼아서 내가 왕이 되는데 걸림돌이 되는 큰 형을 한 가지 이유를 삼아서 살해해버린 것입니다. 그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적이었고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었고, 결국 그 자기를 위하는 것이 이런 심각한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정말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사람, 우리가 사람을 살펴보고 정말 무서워해야 되고 두려워해야 될 사람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고, 자기중심성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사람은 사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고, 타인에 대해서 "미안합니다. 제 잘못입니다"라고 한 번도 자기 입 밖으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참으로 무서운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자기를 항상 돌아보고 말씀 중심으로 그 말씀의 거울에 나를 비추어 보면 하나님께 회개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나를 가장 잘 아는데, 하루를 살아서 저녁이 되어서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런데 회개하지 않고 고개 높게 들고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을 우리는 경계해야 됩니다.
평생을 살아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인물입니다. 압살롬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하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을 가까이 하고 어떤 사람을 경계해야 할지가 명확해집니다.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자기 잘못을 매순간 돌이켜보고 살피는 유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잘못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사과할 수 있어야 되고, 고개를 숙일 수 있어야 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이 없이 철저하게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폐를 끼칠 수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결론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중심성의 위험을 깨닫는 것입니다. 압살롬의 모든 행위는 "자기를 위하여"라는 표현으로 요약됩니다. 신앙생활과 자기중심성은 결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며, 결국 주변 사람들과 공동체에 해를 끼치게 됩니다. 평생 사과하지 않는 사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위험한 존재입니다.
셋째는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자기 잘못을 돌이켜보고 살피는 유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히 회개하고, 사람 앞에서는 겸손하게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는 정의로운 과정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압살롬의 반역은 다윗이 정의로운 징계 과정을 생략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서든 정당한 과정과 절차를 존중해야 합니다.
오늘 이 하루,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존재로 살아가고, 주변 사람들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넉넉히 사과하며 먼저 손 내미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