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책망
사무엘하 16장
타인의 비판을 기분 좋게 행복하게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3살짜리 아이도 부모의 비판을 즐겁게 듣지 않습니다. 모른 척하거나 딴청을 피우거나 그리고 계속해서 자기 할 일을 계속합니다. 하물며 어른들은 말해서 더 무엇 하겠습니까? 성인들치고 누군가가 나에게 비판하고 쓴소리 하는 걸 달갑고 기분 좋게 받을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힘이 없어서 들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등한 위치에 있거나 힘이 있어서 듣지 않아도 될 사람 같은 경우는 더욱더 타인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다윗은 타인의 비판과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몰락의 길
다윗은 왕이 된 이후에 한 번도 꺾인 적이 없었습니다. 승승장구했습니다. 소위 말해서 잘 나가는 왕이었고 주변 여러 나라를 그의 힘과 권능과 군사력으로 하나하나 복속시켜 나갔습니다. 그런데 밧세바 사건 이후로 급격히 내리막길을 치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건 이후에 나단 선지자를 보내시고 그에게 몇 가지 징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중 하나가 "칼이 네 집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였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칼이 그의 집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암논을 잔인하게 살해했고, 그 압살롬이 왕위를 찬탈했습니다. 이제 다윗은 아들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나라를 잃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길을 나섭니다. 광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다윗에게 광야는 낯선 곳이 아니었습니다. 젊은 시절 사울을 피해 떠나다닐 때도 광야길에서 오랫동안 훈련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젊은 시절의 광야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자리였습니다. 훈련받는 자리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오늘 혹은 내일 언제 잡힐지 몰라도 그러나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 충만한 은혜로 시편을 지어서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그랬던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광야는 그에게 훈련도 은혜의 자리도 아닙니다. 그저 고생하는 자리입니다. 자기 죄 때문에 고생하는 자리, 그 자리로 그는 징계의 자리로 한 걸음 한 걸음 나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그의 마음이 서글프고 힘겹고 후회가 막심했겠습니까?
시바의 모함
그런데 광야로 내려가는 길에 그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특히 그들이 그의 아픔을 더 자극하고 힘겹게 합니다. 첫 번째 만나는 인물은 바로 므비보셋의 종 시바였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었는데 종이 나타났고 주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바라는 종이 먹을 것을 잔뜩 싣고 나타나서 다윗에게 진상하며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이르되 내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하는지라" (삼하 16:3)
정말 므비보셋이 이런 말을 했을까요? 아마 다윗도 의구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의 진위를 따지기에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시간도 없었습니다. 언제 압살롬의 칼날이 다윗의 목을 겨눌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고 빨리 길을 내려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 기분 나쁜 마음, 찝찝한 마음까지는 다 씻을 수 없었습니다. 그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그는 길을 내려갔습니다.
시므이의 저주
그런데 더 힘든 상황을 만났습니다. 사울과 먼 친척 되었던 시므이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가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그를 저주했습니다.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삼하 16:7-8)
아무리 몰락한 왕이지만 이 정도로 심한 저주를 하며 돌을 던지는 자를 어찌 가만히 두고 보겠습니까? 다윗 곁에서 그를 호위하던 아비새가 다윗에게 간청했습니다. 더 이상 듣고 두고 볼 수가 없으니 건너가서 그의 목을 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말렸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삼하 16:10-11)
다윗은 지금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의 책망으로 듣고 있습니다.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것이니 가만히 두라. 내가 듣겠노라." 이걸로 봐서 다윗은 지금 그가 걸어가는 길이 하나님의 징계라고 분명히 기억하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겸허한 회개
사실 따지고 보면 그는 자기 잘못으로 이 길을 나선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양떼, 그는 목자로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런데 밧세바를 자기 마음대로 유린했습니다. 그의 남편을 살해했습니다. 더 올라가 보면 그는 태만의 죄를 범했습니다. 왕으로서 마땅히 있어야 될 자리, 백성들을 돌보는 자리, 섬기는 자리, 전쟁하는 자리에 앞장서서 나가지 않고 그가 있어야 될 자리에 있지 않았을 때 이 큰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사악한 자 시므이를 통해서 그에게 온갖 독설을 내뱉고 저주하는 것을 하나님의 강한 책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더 올라가 보면 그가 므비보셋을 원망할 일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요나단과의 관계 때문에 두 다리를 절고 숨어 사는 그를 불러다가 할아버지 사울에게 줬던 것을 다 회복시켜주고 다윗과 한 식탁에서 먹고 마시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가 므비보셋에게 베푼 은혜보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베푼 은혜가 더 크지 않습니까? 다윗은 아버지 이새도 인정하지 않는 막내아들이었습니다. 보잘것없는 먼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불러다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목자로 그를 불렀습니다. 양들을 잘 봐달라는, 잘 돌보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맡긴 양을 자기 마음대로 유린하고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그저 두고 보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내 말을 업신여겼다"고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를 베풀었는데 배은망덕하게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함부로 사용했던 다윗. 그런데 그가 므비보셋을 감히 징계할 수 있겠습니까? 도망가는 길에 므비보셋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에게 함부로 징계할 수 없는 처지가 다윗이었습니다.
회복의 기초
오늘 다윗은 므비보셋도 시므이도 징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지금 큰 징계를 받고 길을 가는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 이런 겸허한 죄인됨의 마음이 다윗을 다시 회복시킨 큰 기초가 됩니다. 회개하며 길을 가고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고 저주해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있는 다윗은 결국은 회복해서 다시 왕권을 되찾아오지 않습니까?
회개와 눈물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이렇게 큰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목회자의 설교를 통해서, 개인적인 성경 통독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자연 만물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데, 타인의 입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도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군가의 독설이 나에게는 하나님의 책망으로 들릴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싫은 소리, 듣기 싫어하고 책망하는 것, 귀 닫고 마음 닫고 그렇게 살아가면 내 주변에는 나에게 좋은 이야기 하는 사람들만 넘쳐날 것입니다. 나를 망치는 길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타인의 비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와 독설을 하나님의 책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도 주변에 나에게 싫은 소리도 하고 책망도 하고 때로는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려고 도우는 여러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 회복의 시작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범한 죄로 인해 징계받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배은망덕하게 사용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겸허히 회개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런 회개가 그를 다시 회복시키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과 설교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자연 만물과 타인의 입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여러 인간관계에서 하나님이 타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에 귀 기울이고 마음 열고 듣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결국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관계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