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택
사무엘하 18장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편을 나누어 말다툼을 하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선생님 앞에 갑니다. 선생님 앞에 서서 서로 자기 주장을 다 이야기하고 선생님이 누구 편을 들어줄지를 초조하게 기다립니다. 분명히 내 생각에는 선생님이 우리 편을 들어주고 또 손을 들어줄 것 같았는데 선생님의 선택이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라면 그러면 억울하고 분하고 화가 나서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잠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그만큼 초등학교 어린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이 누구 편이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는 성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들에게는 여론이 누구 편인지, 국민이 누구 편에 서 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정치적인 사안마다 여론조사를 합니다. 대선후보, 총선후보에 대한 여론조사, 국민의 지지도에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여론이 누구 편이냐에 따라 그의 정치력이 인정받을 수도 있고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이 누구 편이신가에 민감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누구 편에 서 계시는가? 하나님은 이럴 경우에 누구의 손을 들어주시는가? 그 해답과 과정은 성경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꼼꼼히 읽어보면 하나님이 이런 경우에 누구의 편을 들어주시는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징계하시는지가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는 분이기 때문에 그 원리가 역시 그대로 이어집니다.
회개 없는 반역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이 누구 편이신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압살롬은 아히도벨과 후세의 조언 중에 아히도벨의 조언을 버리고 후세의 조언을 택합니다. 온 이스라엘 군대를 다 일으키고 그 군대를 모아서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을 에워싸고 전면전을 벌여서 철저하게 섬멸하고 소탕하자는 것이 후세가 세운 조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결정적인 패착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 시간을 벌어준 것입니다.
결국 아히도벨의 조언처럼 다윗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따라가서 그만 정리하면 되었을 것을, 다윗의 목숨만 빼앗으면 되었을 것을 압살롬은 허세를 가진 사람이라 후세의 조언을 따릅니다. 결국 다윗에게는 시간을 벌어준 꼴이 되었고 다윗은 요단강을 건너가고 그의 군대를 모으고 전열을 다시 가다듬습니다. 이제는 압살롬의 온 이스라엘 군대와 다윗을 따르는 군대가 전쟁하게 됩니다.
"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패하매 그 날 그 곳에서 전사자가 많아 이만 명에 이르렀고 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으므로 그 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 (삼하 18:6-8)
결국은 압살롬은 다윗을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다윗이 어떤 인물입니까? 골리앗과의 싸움부터 어린 시절부터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 아닙니까? 크고 작은 전투, 나라의 명운을 건 전투까지, 그가 지금까지 전투한 것은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장군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어떻습니까? 태어나보니 왕의 아들입니다. 그가 정말 다윗처럼 사울을 피해 다니던 게릴라전이나 국가의 명운을 건 전면적인 전쟁을 해본 적이 있겠습니까? 결국 압살롬과 다윗은 전쟁에서 싸움이 되지 못합니다. 압살롬은 처절한 패배를 당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압살롭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삼하 18:9)
결국 압살롬이 이렇게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상수리나무에 그의 머리가 걸리고 거기에서 공중에 발이 뜬 상태로 죽음을 기다리게 됩니다. 하지만 병사들이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기를 두려워합니다. 다윗이 부탁한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해 달라." 그러나 요압에게는 자비가 없습니다. 요압은 무자비한 사람입니다.
"요압이 이르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요압의 무기를 든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 (삼하 18:14-15)
결국 압살롬은 이렇게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압살롬이 일으킨 반란이 나라 전체를 손에 잠시 넣었지만 그러나 결국 압살롬은 죽고 반란은 평정되고 다윗은 다시 왕위를 되찾습니다.
젊은 압살롬 아들이 아버지를 향하여 일으킨 반란이었고 아들에게 쫓겨서 왕위를 잃고 나간 다윗, 부자지간의 관계를 논하기 전에 이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은 누구 편이신가 하는 질문을 우리는 이 상황에서 던져봐야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압살롬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압살롬은 회개한 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암논은 물론 나쁜 사람입니다. 암논은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동생을 겁탈합니다. 그 정도로 악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그런 암논을 살해합니다. 나라에 법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 앞에서 그를 징계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징계하시기를 기다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은 암논을 자기 욕심에 자기를 위하여 살해합니다. 그리고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육체와 영혼의 죽음으로 자기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 아닙니까? 회개하지 않으면 큰 죄를 짓고도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자기 죄를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은 자기 스스로 그 문제를 갚아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정하신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결국 압살롬은 하나님께서 그의 죄값을 물으신 겁니다.
회개의 은혜
회개했더라면 상황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회개하지 않은 압살롬, 하나님은 그의 편에 서지 않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살아가고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 꿇지 않고 교만한 자, 하나님은 그의 편이 되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압살롬을 비교해보면 다윗은 더한 인물 아닙니까? 압살롬도 살인자요, 다윗도 살인자입니다. 다윗은 거기에 더해서 간음의 죄까지 더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 편에 서 계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윗은 철저하게 회개한 인물입니다. 눈물로 자기 침상을 띄울 만큼 자기 죄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아뢰고 눈물로 기도하고 회개했습니다. 죄값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세 가지 징계, 그는 죽을 때까지 이 세상 다할 때까지 그 징계를 받아야 되는 인물이고 그 후손까지 그 징계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하나님 앞에 큰 책망을 받은 인물입니다. 하나님은 그걸로 그의 죄에 대한 계산을 끝내셨습니다.
비록 아무것도 없는 인물처럼 보이나 회개한 인물을 하나님은 손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느 편에 서 계십니까? 하나님이 내 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회개가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다윗처럼 기도하고, 눈물로 하나님께 아뢰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압살롬처럼 회개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살아가는 자, 결국 하나님은 그 죄값을 철저하게 묻는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앞으로 우리 인생도 우릴 돌아보고 말씀 앞에 서서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매 순간 회개하고 주께 사랑받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압살롬은 암논을 살해하고도 회개하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죄값을 물으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살아가며 교만한 자의 편이 되어주지 않으십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고 도우십니다. 다윗은 더 큰 죄를 지었지만 철저하게 회개했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편에 서셨습니다. 눈물로 자기 침상을 띄울 만큼 하나님 앞에 아뢰고 회개한 자를 하나님은 손들어 주셨습니다.
셋째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해서는 회개가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매 순간 회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다윗처럼 기도하고 눈물로 하나님께 아뢰며, 말씀 앞에 서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주께 사랑받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