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애도
사무엘하 1장
한 사람의 죽음은 하나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이 진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료진들이 임종을 지키며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는 유족들의 모습, 그리고 평소 원수지간이었던 사람들도 죽음 앞에서는 조의를 표하며 애도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는 잘잘못이 분명히 있게 마련입니다. 그 사람의 일생을 돌아보면 한 사람의 공도 있고 과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그 사람의 잘못도 또 그 사람이 잘한 것도 그렇게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남은 사람은 그분의 죽음 자체를 애통해하고 애도할 뿐입니다.
어떤 흉악한 악한 죄인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그 사람의 죽음 자체를 애도하고, 남은 자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그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으로만 대신하지 죽음 앞에서 함부로 우리의 입술을 놀리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그의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고 또 죽음을 대하는 우리가 지금까지 문화적으로 배우고 학습해온 방법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도 사울의 죽음에 대해서 그도 애통해하고 애가를 불러서 슬픈 노래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부르고 있습니다.
거짓 증언의 비극
다윗은 자기 성읍 시글락에 돌아와서 전쟁이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아말렉 청년이 다윗에게 와서 전쟁 소식을 알려줍니다. 이스라엘이 패전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소식보다도 사울과 요나단의 안부가 걱정되었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에 대해서 질문하자, 그 아말렉 청년은 자기가 사울을 죽였다고 말합니다.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삼하 1:10)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거짓말이었습니다. 사울은 할례받지 않은 자에게 죽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나머지 자기 창에 스스로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다윗에게 와서 이렇게 말한 까닭은 상을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울이 죽었으니 대세가 다윗에게로 넘어갔고 다윗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고, 그날이 되면 나에게 큰 상을 내릴 거라 생각하고 쫓아와서 다윗에게 이런 말로 자기 공을 거짓으로 부풀려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이 사람이 있는 그대로 본 것 그대로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말했더라면 그는 아마 큰 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윗에게는 용서받지 못할 큰 죄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삼하 1:14-16)
사울을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다윗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을 스스로 침해하지 않으려고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 사울을 스스로 자기가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주권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심각한 위반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자기의 원수를 갚아주실 것이라는 걸 확신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사울에게 칼을 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사울을 죽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는 하나님 주권에 대한 심각한 반역행위라고 간주하고 청년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 청년은 거짓말했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청년은 누군가의 죽음을 자신의 상 받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의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기 때문에 이런 비극을 당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자신의 영광이 되고 자신의 기쁨이 되고 자신의 출세에 디딤돌이 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이고 그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 주권 가운데 있는 사람인데 살고 죽는 것 그 또한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누군가의 죽음을 내가 이용하는 것은 하나님이 굉장히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그 교훈을 남기고 죽임당합니다.
진심어린 애도
이제 다윗은 어찌 되었건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큰 슬픔 가운데 슬픔의 노래를 지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부릅니다.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삼하 1:17-18)
다윗은 사실 사울과 요나단에 대해서는 진심이었습니다. 정말 요나단을 사랑했고 사울도 그를 등용해준 사람으로서 인간적으로는 사랑하고 좋아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그 죽음을 애통해하며 노래 부릅니다.
두 용사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삼하 1:19)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삼하 1:23)
두 용사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하고 그는 사실 사울보다는 요나단의 죽음에 대해서 더 가슴 아파하지 않았겠습니까? 요나단을 이렇게 애도합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삼하 1:26)
사실 이렇게 그가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서 노래하는 것을 보고 백성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백성들은 지도자들이 싸우는 것 보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가 기뻐하겠습니까? 정치 지도자들이 윗선에 있는 지도자들이 서로 다투고 갈등하고 서로 죽일 듯이 어르렁거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서로 한 사람이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품어주고 안아주는 걸 누구나 다 기대하고 원합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십수 년 동안 광야를 전전하고 국정을 다 팽개치고 따라다녔으나, 그러나 사울의 죽음 앞에서 다윗이 이렇게 큰 모습을 보이고 통 큰 모습을 보이면 백성들이 다윗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정말 진심으로 두 사람을 애도하는 것인데 이 모습을 지켜보는 백성들의 마음은 다윗이야말로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진심은 이렇게 그를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인간적으로도 그들을 애도했지만, 그러나 이 모습은 하나님 보시기에도 귀한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창조하셨고 하나님께서 요나단을 창조하셨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 이 세상에서 떠나갔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들의 죽음 앞에 서서 인간적인 애도를 하는 것은 그들의 죽은 자에 대한 예의와 도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창조주권에 대한 순종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더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군가 한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고 그분의 죽음까지 그 세상이 사라지는 것까지 함께 이어진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수 갚는 방식
또 한 가지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될 사실은 하나님께서 원수 갚아주시는 방식입니다. 시편 23편 5절에서 다윗이 고백했지 않습니까?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시는 방식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다리가 부러지게 잔칫상을 차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원수 갚는 것을 내가 칼을 들어 원수를 찌르는 것을 상상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원수보다 나를 더 선대하는 것이 원수 갚아주는 방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원수는 직접 갚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원수 사울 앞에서 다윗을 높이 들어 인정해주셨습니다. 백성들이 노래 부르기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그래서 다윗을 더 높이 칭송해주셨습니다. 그걸 견디지 못해서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끝까지 따라왔지만 그러나 다윗은 오히려 통 큰 마음으로 사울을 껴안아주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원수 갚아주시고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다윗은 지금 이렇게 당당하게 애도의 노래, 애가 슬픔의 노래를 지어 부를 수 있고 백성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를 힘들게 하고 힘겹게 하는 사람들 직접 대면해서 그들과 상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히려 그들 앞에서 우리에게 상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히려 우리를 높여주실 것이고, 정말 그 사람이 뉘우치지 않고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징벌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이 원수 갚는 방식을, 하나님이 사울을 대하는 모습을 통해서 똑똑히 보았으니 우리는 우리의 할 일, 내가 걸어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죽음을 올바르게 대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상반된 두 사람을 보았습니다. 아말렉 청년은 사울의 죽음을 자기 출세의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심판받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슬퍼하며 애통해하며 하나님의 창조주권을 인정하고 결국 백성들에게 존경도 받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자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원칙을 다윗은 철저히 지켰습니다. 비록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존중하여 직접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결국 다윗을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셋째는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어떻게 갚아주시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똑똑히 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까지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들, 나를 힘겹게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애통해하고 힘겨워했던 주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바랍니다.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저 우리는 내가 해야 될 일을 오늘도 묵묵히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