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0장

성경
사무엘하

영적 권위

사무엘하 20장

가정경제나 국가경제는 한순간에 일어설 수 있고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금리와 물가가 연동되어 있지 않습니까? 어느 하나가 문제가 생기면 또 다른 하나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과 가계와 정부가 마치 하나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가 잘 되면 또 다른 하나는 좋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하나가 붕괴되고 무너지면 마치 도미노처럼 연쇄 반응이 생겨서 함께 무너져 내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경제지표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고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사람의 건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발바닥에 문제가 있어서 보행이 어려우면 그것은 발바닥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무릎, 허리, 심지어는 척추까지 휘어서 사람의 균형이 무너지는 아주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지 않겠습니까? 기도가 무너지면 말씀도 무너지고, 영적 기본생활이 붕괴되면 신앙생활 전체가 함께 무너져 내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영적 권위가 붕괴되고 무너진 이후에 부하들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통제 불능의 상황에 직면합니다. 다윗이 왕으로 존재하고 있으나 그의 영적 권위가 이전 같지 않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제압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숨 돌릴 새도 없이 잠깐 쉴 틈도 없이 또 다른 반란에 직면합니다.

세바의 반란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 (삼하 20:1-2)

이제는 세바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키는데 유다지파를 제외한 다른 지파들이 세바의 반란에 동참하기 시작합니다. 다윗의 영적 권위가 이전 같지 않다는 반증입니다. 그의 통치의 힘이, 그의 통치의 영향력이 과거 같았다면 이런 반란은 아예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의 반란 이후에 이곳저곳에서 우후죽순으로 다윗을 대적하는 반란이 일어나고, 세바의 반란은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과 힘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반란을 어떻게 제압하느냐, 일어난 상황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일 내로 유다 사람을 큰 소리로 불러 모으고 너도 여기 있으라 하니라" (삼하 20:4)

왕은 아마사를 군사령관으로 임명해서 세바의 반란을 제압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마사는 압살롬의 반란 때 압살롬 편에 섰던 인물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죽고 반란은 제압되고 아마사가 다시 돌아옵니다. 아마 다윗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통합을 위해서 이제 저까지도, 나를 향하여 반기를 들었던 사람까지도 함께 포용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통합을 내가 추구해야 되겠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백성들, 특히 군사들의 사기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란군에 섰던 사람을 한순간에 군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하나의 문제였고, 두 번째 문제는 이전 사령관이었던 요압을 정당한 절차 없이 해임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자리에는 요압이 서 있어야 되는 자리인데, 요압을 해임할 것이었으면 그를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내보내야 옳았는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요압을 이유 없이, 어떤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그 자리에서 빼 버리고 그냥 그 자리에 아마사를 세웁니다. 요압이라는 인물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다윗이 아마사에게 삼일 내로 유다지파에서 전쟁할 자를 모집해서 전쟁에 나가 세바의 반란을 제압하라 했는데, 아마사가 삼일 내로 사람을 모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압살롬의 반란에 섰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유다 백성들의 민심이 아마사를 따르지 않습니다.

권위의 붕괴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모으러 가더니 왕이 정한 기일에 지체된지라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부하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쫓아가라 그가 견고한 성읍에 들어가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삼하 20:5-6)

이제 다윗은 불안해졌습니다. 아마사가 삼일 안에 군대를 모으지 못하자, 이제 다윗은 다시 요압의 동생 아비새를 사령관으로 임명합니다. "네가 가서 사람들을 모아서 세바의 반란을 제압하라." 지금 전쟁이 일어나고 반란이 일어났는데 사령관 바꾸는 것을 다윗이 식은 죽 먹듯이 해버립니다. 요압에서 아마사로, 아마사에서 아비새로. 이러니 권위가 설 수 있겠습니까?

요압이 이런다고 해서 물러날 사람입니까? 요압은 결코 그렇게 쉽게 물러날 인물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욕심을 취하는 인물입니다. 결국 요압이 사고를 칩니다.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은 평안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와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의 배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지니 그를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을새" (삼하 20:9-10)

결국 요압은 아마사를 살해해버렸습니다. 아마사가 뒤늦게라도 군대를 모아서 공을 세우는 것을 요압은 눈뜨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한 번 배신한 사람, 그 사람을 자기 대신에 군사령관으로 세운 다윗에 대한 본보기입니다. 요압은 이런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아마사도 지키지 못했고 자기 영적 권위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요압이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그저 눈뜨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압은 자기 동생과 함께 나가서 전쟁에 큰 공을 세웁니다. 결국 세바의 반란은 요압이 제압하고 돌아옵니다.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지휘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지휘관이 되고" (삼하 20:23)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요압을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관으로 삼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얻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요압을 해임한 결과도 제대로 얻지 못했고, 아마사를 세웠지만 아마사는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고, 아마사가 결국 요압의 칼에 죽고 나서도 다윗은 요압을 철저하게 군기에 의해서 징계하지도 못했고, 결국 요압은 다시 이스라엘의 군사령관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영적 권위의 근본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입니까?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다윗과 요압, 그 사이에서 다윗은 마음에 빚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영적 권위를 내세울 자격이 없는 사람 아닙니까? 밧세바 사건 이후에 우리아를 죽이라고 밀서를 보낸 사람이 다윗입니다. 우리아를 전장의 제일 앞에 내세워서 그가 죽게 하라고 편지를 써서 보낸 사람이 다윗 아닙니까? 요압이 이상했지만, 왕의 명령이니까 그대로 행했고 우리아가 죽습니다. 돌아와 보니 죽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다윗의 왕비가 되어 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영적 비행을 다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니 그 앞에서 그의 말이 통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때부터 요압은 다윗에게는 통제 불능의 인물이 됩니다. 다스리고 싶어도, 징계하고 싶어도, 그를 해임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해달라고 했지만, 요압은 왕의 명령도 듣지 않습니다. 달려가서 압살롬의 심장을 창으로 찔러 죽여버렸습니다. 그런 인물이 요압입니다.

결국 영적 권위라는 것이 한 가지가 무너지니 모든 것이 다 무너집니다.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 그들과 수많은 관계로 얽히고설키고 살아가는데 한 가지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신앙인이고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내가 믿음 위에 굳게 서 있으면 영적 권위는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것 한 가지가 무너지면 어떤 말도 통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다윗은 말년에 이런 비참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윗을 보고 반면교사로 삼고,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말씀대로 잘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으로 우리의 영적 권위를 스스로 지켜가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 권위는 한 번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으로 영적 권위가 무너지자 요압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아마사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작은 죄나 실수라고 해서 가볍게 여기지 말고, 처음부터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영적 권위를 지켜야 합니다.

둘째는 리더십의 일관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요압에서 아마사로, 아마사에서 아비새로 사령관을 바꾸는 것을 보며 일관성 없는 리더십의 문제점을 봅니다. 우리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일관된 원칙과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셋째는 과거의 죄가 현재의 권위를 무너지게 합니다. 다윗이 요압 앞에서 권위를 잃은 것은 과거 우리아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과거의 잘못된 일들이 현재의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부모로서 자녀에게, 믿음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믿는 사람으로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영적 권위를 지킬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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