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한 열심
사무엘하 21장
공동체를 가장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은 무지하면서도 열심히 있는 사람입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잘 모르고 무지하면 망설이게 됩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은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소상하게 살펴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간혹 잘 모르고 무지하면서도 과감하고 열심을 내고 또 잘못된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면 굉장히 위험해집니다. 그 공동체의 과거 역사를 모르고, 현재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바를 모르고 행동하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열심이 오히려 공동체를 삼킬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공동체는 큰 위험에 빠집니다.
모름지기 지도자라고 하면 교양이 있고 지식이 있고 공동체에 대한 이해가 확실하고 분명하고, 거기에 더한 열정이 있으면 백성들은 안심하고 자기 생업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공동체를 아주 위험에 빠뜨린 과거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삼 년 기근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 삼 년 동안 연이어서 기근이 있었습니다. 보통 이스라엘 나라에 기근이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물으실 때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방법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도자인 자신의 죄가 없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크게 잘못한 일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삼 년 이어서 기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삼하 21:1)
다윗 시대에 삼 년 기근이 찾아온 것은 사울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울이 기브온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이 그래도 왕이었는데,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 이유도 설명하십니다.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 (삼하 21:2)
이스라엘 백성들과 기브온 사람들 사이에는 맹세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맹세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 보면 여호수아 9장에까지 이릅니다.
여호수아 시대의 언약
이스라엘 백성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을 파죽지세로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있는 일곱 족속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내어쫓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명령을 받들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는 곳마다 가나안 족속을 이기고 그들을 다 몰아냅니다.
그런데 기브온 족속들이 멀리서 온 것처럼 꾸미고 거짓 화친 조약을 맺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온 것을 위장하기 위해서 남루한 옷을 입었습니다.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왔습니다. 곰팡이가 핀 떡을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는 멀리서 당신들의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하나님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우리는 당신 앞에 반항하거나 저항할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주십시오."
그때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묻지 않았습니다. 기도했더라면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은 가까이 있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을 텐데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덜컥 조약을 맺고 말았습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기브온 족속들이 그들 가까이에 있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두라"고 하십니다. "계약을 파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미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조약을 맺은 자들이니 그 언약을 성실하게 지켜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이어진 조약이 사울왕 시절까지 오랜 세월 그대로 이어져 온 것입니다.
사울의 잘못된 열심
하지만 사울은 그딴 것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사울이 그런 것 기억도 하지 않습니다. 알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기브온 거민들을 그냥 닥치는 대로 죽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삼하 21:2)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이 열심이 문제입니다. 사울이 가진 열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지식이 없는 열심이 사울의 문제입니다.
사울은 역사를 몰랐습니다. 알았다고 해도 무시합니다. 그들은 역사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을 왕으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역사에 대해서도 무시했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브온과 이스라엘이 맺은 조약도 무시하고, 하나님의 언약도 무시합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무시한 행동이었습니다.
열심이 있으되 지식이 없는 열심이 이렇게 위험한 것입니다. 결국 사울의 이 열심이 훗날 시간이 한참 지나서 자기 후손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삼 년 기근을 초래합니다. 삼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았겠습니까? 그 기근에 가난한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그 기근에 사람들이 고통받고 힘겨워했을 것입니다.
결국 다윗이 묻습니다. 남아있는 기브온 족속들을 불러서 "내가 어떻게 해주어야 너희들의 한이 풀리겠느냐?" 그들은 요청합니다. "사울의 자손 중에 일곱 명을 주시면 우리가 알아서 처형하겠습니다." 결국 다윗이 사울의 자손 중에 일곱 명을 내주지 않습니까? 사울의 무지한 열심 때문에 기근이 찾아오고 그의 후손 일곱 명이 억울한 죽음을 당합니다. 결국 이것이 사울의 무지한 열심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무지한 열심의 위험
우리는 이 사건을 보면서 무엇을 느껴야 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교회 목회자요, 중직이요, 직분자로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열심을 내면 우리도 사울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모르는 무지한 열심은 오히려 나와 공동체, 후손까지도 파괴하고 그들에게 큰 짐을 지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않고, 깨닫지 않고, 그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열심은 나를, 그리고 공동체, 가족, 후손까지도 큰 어려움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그 다음 열심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한 민족주의적인 사울의 열심이 가져온 이 결과 얼마나 위험합니까? 가정을 이끄는 부모가 되고, 가장이 되고, 어머니가 되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겠습니까?
열심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키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제대로 알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길러가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도하고, 양육하고 열심을 내어야 죄를 짓지 않습니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오히려 그 열심이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열심이 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말씀 읽고, 오히려 기도하고, 그 다음 그 열정을 가지고 바른 방향을 가지고 주의 일에 힘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지식이 없는 열심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역사를 모르고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한 채 민족주의적 열심을 내어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한 결과, 후손들이 삼 년 기근과 일곱 명의 죽음이라는 댓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고 기도하며 바른 지식 위에 열심을 세워야 합니다.
둘째는 과거의 죄가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잘못된 행동이 다윗 시대까지 이어져 삼 년 기근을 초래했고, 결국 사울의 후손들이 그 댓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우리의 행동과 결정이 단지 현재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언약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시대에 맺어진 언약을 사울이 파기한 것을 심각하게 여기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맺은 언약, 사람과 맺은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성실하게 지켜나가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 근거하고 기도의 뿌리를 내린 참된 열심으로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믿음의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