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3장

성경
사무엘하

하나님께 기억되는 용사

사무엘하 23장

어려운 시절을 함께 지내온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 같은 큰 전쟁에서 사선을 함께 넘나들며 피를 보고, 죽음의 자리까지 함께 내려갔던 전우들을 죽는 그 순간까지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평생 좋은 일, 기쁜 일, 힘든 일, 어려운 일을 겪어온 사람들, 그 가족 안에는 남들이 알 수 없는 애틋한 그 무엇인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감정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고마운 마음입니다. 부부는 수십 년 동안 함께 살아가며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자녀는 부모에 대해서 어려운 상황에도 우리를 힘껏 양육해 주신 부모님에 대해서 철이 들고 나면 고마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최고의 용사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평생 동안 자신과 함께 전장을 누빈 다윗의 용사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우선 자신이 기억하기에 최고의 용사 세 명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립니다.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지휘관의 두목이라 그가 단번에 팔백 명을 쳐 죽였더라" (삼하 23:8)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한 세 용사 중에 하나이라 블레셋 사람이 싸우려고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삼하 23:9)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이 떼를 지어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되" (삼하 23:11)

세 명의 용사를 우선 언급했습니다.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삼마 이 세 분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언급한 세 명의 용사가 그가 볼 때는 최고의 용사들인데 우리 귀에는, 우리 눈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다윗과 함께한 일생을 함께 살펴봤는데 이 세 분의 이름은 여기서 보는 것이 처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윗은 이 세 사람의 이름을 용사들 중에 최고의 용사로 꼽는 걸까요? 사연이 있습니다.

베들레헴 우물물의 감동

"또 삼십인의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떼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쳤더라" (삼하 23:13)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삼하 23:14)

다윗의 숙적 가운데 한 민족이 블레셋입니다. 이때도 블레셋과 싸울 때였는데 블레셋이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을 점거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베들레헴을 차지하고 있는 블레셋을 쫓아내기 위해서 전쟁할 때 이 세 용사가 활약합니다. 그들의 활약은 이렇습니다.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삼하 23:15-16)

다윗은 자기 고향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 들어간 이후, 그리고 그가 고향을 떠난 지 한참 된 이후로 그는 우물물을 마시고 싶었습니다. 고향 성문 곁에 있는 항상 어린 시절 들어가고 나가며 지나가며 길어 마시던 그 고향의 우물물을 마시고 싶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는 그 말을 내뱉고 말았고, 이 세 분의 용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적진을 뚫고 달려가서 다윗의 소원을 이루어 줍니다.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서 다윗에게 갖다 줍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세 명의 용사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길어온 우물물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부어드리고 맙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삼하 23:17)

그것은 단순한 물이 아니라 세 용사의 피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부어드리고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나도 모르게 이런 말한 나를 하나님께서 용서해 달라고 회개한 겁니다.

기억되지 않는 요압

그리고 그는 그때부터 세 용사의 이름을 가슴속에 각인하고 지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가기 얼마 전, 그가 죽기 전 하나님 앞에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고 돌아보면서 평생 동안 가장 고마웠던 용사 세 분의 이름을 여기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그 어떤 용사들보다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그 작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나아갔던 세 분의 용사가 다윗에게는 누구보다도 고마웠던 겁니다.

신기한 것은, 그리고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세 명의 용사의 이름에도, 또 삼십인의 두목 중에도 요압의 이름이 없다는 겁니다. 다윗의 일생 가운데 그와 함께한 전쟁터에서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사람이 요압입니다.

요압은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밧세바 사건을 행하던 그때도 암몬과의 전쟁에 군사들을 이끌고 나갔던 인물입니다. 그는 항상 다윗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고, 그는 항상 나가면 승리를 가져왔던 인물이고, 압살롬의 반란도 그의 창으로 그의 칼로 제압한 다윗에게는 고마울 수밖에 없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요압의 이름이 없습니다. 요압의 이름을 다윗이 의도적으로 기록하지 않은 건데 왜 그런 것입니까? 그의 동생 두 사람의 이름은 30인의 두목 가운데 있는데, 요압의 이름은 의도적으로 삭제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그렇습니다. 다윗에게 요압은 다윗이 다루기 힘든 인물이었습니다. 다윗의 말에 철저하게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떤 이유로든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다윗의 한 말 한 말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해도 자기중심적이고 사람을 죽여도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다윗이 유다지파의 왕이었을 때 북쪽 모든 이스라엘의 실권을 가지고 있던 아브넬을 요압은 자기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다윗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살해해 버렸습니다. 압살롬의 반란을 제압할 때도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해주라고 했으나 요압은 그런 여유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요압의 창으로 압살롬의 심장을 꿰뚫어버렸습니다. 이런 요압을 다윗은 편하게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다윗의 죄로 인해서 그의 영적 권위가 떨어진 것도 있으나, 평생 동안 함께 전쟁터를 누빈 요압을 다윗은 그의 장수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자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기억해야 될 것, 아주 중요한 것 한 가지.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가? 평생 동안 우리가 신앙생활 했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다윗의 세 용사같이 하나님 앞에 고마운 일을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던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릴 만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성실한 인물이었는가?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돌아보시고 반추해 보시고 살펴보실 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일을 우리는 어떤 일을 한 적이 있던가?

사람들에게는 이름이 없고 무명한 자 같으나 그러나 하나님이 기억하실 때는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삼마 같은 굉장한 인물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시원한 자, 하나님 앞에 기록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유명한 요압 같은 사람인데 하나님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이 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교만한 인물, 자기중심적인 인물...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하나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 손에 쏙 들어오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이 강하고 자기 의지가 강하고 내 생각으로 뻗대기 시작하면 하나님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마치 다윗 손에 들어오지 않는 요압처럼 그러면 하나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고 찾아볼 수가 없을 겁니다.

평생 동안 다윗을 위하여 전쟁터를 누볐는데 그런데 그 결과가 다윗이 회고할 때 그 이름 하나 기록되지 못한다면, 슬픈 인생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평생 동안 신앙생활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기억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나는 너를 모르겠다고 하신다면 우리의 이 수십 년의 신앙생활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요압 같은 자가 되지 않고 다윗의 세 용사 같은 하나님 앞에, 또 하나님 손에 쏙 들어오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다윗의 세 용사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삼마처럼 다윗의 작은 읊조림을 듣고 가슴에 새기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달려가서 베들레헤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온 세 용사를 다윗은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평생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우물물을 길어드리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 손에 들어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평생 동안 전쟁터를 누볐지만 모든 사람에게 요압이라는 이름을 알렸지만 그러나 다윗의 회고에는 그 이름이 사라지고 만 요압 같은 인생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다윗의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자기 중심대로 살아갔던 요압을 다윗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기억되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 손에 들어오는 사람인지 하나님이 다루기 버거운 사람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온전히 반추하고 돌아보실 때 하나님 손에 들어오는 믿음의 백성으로 기억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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