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균형
사무엘하 7장
인생에는 절대적인 선이 없습니다. 한 가지 일을 잘하거나 좋아한다고 해서 그 일만 지속적으로 계속하면 반드시 균형이 깨지게 마련입니다. 공부를 아무리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면 건강과 사회성에 문제가 생깁니다. 몸을 움직이고 운동하며 자신을 관리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교제하며 소통해야 건전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음식 섭취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고기만 계속 먹으면 건강에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을 가리지 말고, 건강에 필요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진정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또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 믿음과 행함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말씀 읽기만을 좋아하는 사람이 평생 말씀 읽기와 설교 듣기, 성경 공부에만 치중하고 실천과 기도를 소홀히 한다면 신앙이 변질되고 기형적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도하기만을 좋아하는 사람이 기도에만 매달린다면 자기중심적인 기도의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비로소 균형 잡힌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편안한 상황
하나님 말씀에서 다윗은 이러한 신앙의 균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매우 편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그는 과거 지방 수도에서 지내던 때와 달리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다윗성이라 명명하고 이곳을 새로운 수도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적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도 성공적으로 모셔왔습니다. 비록 첫 번째 시도에서는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두 번째 시도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안정되자 다윗의 마음에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견고하고 아름다운 백향목궁에 거주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여전히 임시 성막 안에 계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삼하 7:1-2)
다윗은 이런 상황이 마음에 걸려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나단 선지자를 불러 하나님께 이 뜻을 여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단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전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기꺼이 허락하실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삼하 7:3)
나단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왕과 함께 계십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기뻐하실 일이라고 왕께 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기뻐하는 다윗의 순수한 마음과 선한 중심만큼은 귀하게 받아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삼하 7:9)
"성전을 건축하려는 네 마음을 내가 받았으니, 땅의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처럼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주겠다. 네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
하나님의 이 말씀이 다윗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아마도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깊은 감사함이었고, 두 번째는 의아함이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내가 성전을 건축하려는 것을 막으실까? 왜 나의 이 순수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지 않으실까? 그런 의문이 강하게 들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감사한 마음도 가득했을 것입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만으로도 이렇게 귀하게 여기시는가? 아직 설계도 한 장 나오지 않았고, 첫 삽도 뜨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내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주신다고 하시는가?
하나님과 교제
그래서 다윗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아서 기도합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삼하 7:18)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다윗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위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다윗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그는 역사의 전면에 골리앗과의 전투로 등장한 이후, 사울 왕의 군대 장관이 되어서는 한 순간도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는 전쟁과 정복이 그의 일상이었습니다. 사울에게 쫓기는 도피 생활에서도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 생명이 위험했기에 끊임없는 이동이 생존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는 생각하는 순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으면 즉각 실행에 나섰습니다. 그것이 생존의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도 이전, 예루살렘 정복과 다윗성 건설, 블레셋 복속, 언약궤 모셔오기 등 쉼 없는 행보가 계속되었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이 다윗의 본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진정으로 원하신 것은 거대하고 화려한 성전을 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너는 내 앞에 들어와 앉아서 함께 기도하고, 교제하며 깊은 대화를 나누자"—이것이 하나님의 진심이었습니다.
지금 다윗이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아 있는 이 모습이야말로 가장 귀한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에게는 낯선 다윗의 모습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바쁘게 일하는 다윗보다 이 조용한 교제의 모습을 훨씬 더 아름답게 여기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허락하셨다면, 다윗은 분명히 팔을 걷어붙이고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바쁘게 건축 작업에 매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주한 모습보다 "너무 바쁘게 살지 말고 나와 함께 앉아서 깊은 대화를 나누자"고 초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라를 다스리는 다윗이 일에만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깨닫고 영적 중심을 잡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결론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도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첫째는 신앙의 중심을 잡고 균형을 이루라고 하십니다. 말씀에 치우친 분은 기도로 중심을 잡고, 행함에 치우친 분은 믿음으로 중심을 잡으며, 기도에 치우친 분은 말씀으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치우친 모든 영역이 당신 앞에서 온전하게 회복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항상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언제나 주님의 길을 곧게 걸어가는 믿음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바쁜 행위보다 깊은 교제를 더욱 기뻐하십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아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 새벽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진정한 교제를 나누며, 마음 깊은 곳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아뢰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는 종이 되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