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비결
사무엘하 8장
우리는 누군가가 자신의 분야에서 특별한 성공을 거두고 나면 그 사람의 성공 비결을 배우고 싶어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 그토록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는지, 어떻게 그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사람처럼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성공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해마다 대학입시가 끝나면 최고 성적자가 나오는데, 사람들은 그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고 따라합니다. 그러면 자신들도 그렇게 좋은 성적을 얻을 것 같습니다. 시중 서점에 나가보면 자기계발서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 책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 생활의 법칙, 삶의 규칙 등이 빼곡히 쓰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책을 사고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과 생활법칙, 삶의 규칙을 따라합니다. 그러면 그들도 그렇게 성공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해봐도 성공은 쉽게 따라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그 사람들의 겉모습만, 껍데기만 따라하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알아야 하는데, 근본적으로 나와 무엇이 다른지, 어디서 내가 그 사람들과 다른 부분이 있는지를 본질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 근본과 본질을 모르면 아무리 겉모습을 따라해도 성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윗의 놀라운 성공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다윗의 놀라운 성공이 나옵니다. 그의 성공은 지금까지 역사상 이스라엘의 그 어떤 왕도 이루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다윗의 성공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그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이유를 깨닫게 합니다.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삼하 8:1)
이스라엘 역사상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땅과 성을 빼앗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겠습니까?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블레셋과는 숙적이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에 나갔다가 언약궤를 빼앗기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사했던 뼈아픈 기억도 있습니다.
다윗보다 앞선 왕 사울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도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그 자리에서 전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블레셋은 굉장히 강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블레셋을 쳐서 그들에게 항복을 받았습니다. 땅을 빼앗았고 성을 빼앗았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이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그들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들이 다윗의 종들이 되어 조공을 드리니라" (삼하 8:2)
모압을 쳐서 조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모압에게 끌려다니고 조공을 바친 일은 있어도, 모압을 쳐서 조공을 받은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사시대에 모압은 항상 이스라엘의 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우상 숭배하면 하나님께서 이방민족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치셨는데, 그 중 하나가 모압이었습니다. 항상 이스라엘은 모압에게는 열등한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모압을 쳐서 그들에게 조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그를 쳐서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삼하 8:3-4)
다윗은 반란군도 이렇게 제대로 진압해 버렸습니다. 주변 나라들을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하는 자들까지 다윗은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주변 나라들을 복속시키고 힘의 우위를 과시했습니다.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삼하 8:5-6)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이 정도 되면 이제 주변 나라들은 다윗의 이름만 들어도, 이스라엘 군대의 뒷모습만 보아도 벌벌 떨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라는 이름은 아마 신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공의 근본 원인
원래 소문이라는 것은 건너가면 건너갈수록 부풀려지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다윗이 이러했다더라, 다윗이 저렇게 했다더라, 다윗이 가진 말이 명마라고 하더라, 다윗이 가진 칼이 놀라운 칼이라고 하더라." 이런저런 소문들이 아마 덧붙여져서 사람들은 다윗만 보면 이제는 "우리가 그들과 싸우지 말자" 하며 아예 싸울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신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이유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데, 도대체 다윗이 어떤 비결이 있었길래, 본질적으로 다윗이 무엇이 달랐길래 하나님이 그를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을까요?
1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그 후에"라는 말에 실마리가 있습니다. 그 후에, 도대체 어떤 일 이후를 말하는 것일까요?
다윗이 블레셋 사람, 모압 사람, 하닷에셀, 아람 사람들을 쳐서 여호와께서 어디로 가든지 그를 이기게 하신 것은 "그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후란 도대체 언제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 성전을 지어서 드리겠다고 결단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하나님과 깊은 속마음을 나눈 후에, 그 후에 하나님은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승리하게 하셨고 이기게 하셨고, 그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그를 통하여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다윗은 모든 것이 평안해진 이후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성막 안에 거하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에게 하나님께 고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제가 성전을 건축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다윗의 마음만 받겠다고 하셨습니다. "너의 마음 중심을 내가, 아니 너의 마음만 받겠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다윗 입장에서는 거절이었습니다. 성전건축에 대한 그 순전한 마음, 순수한 마음을 하나님이 거절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용감한 다윗, 전쟁하는 다윗, 움직이는 다윗,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공사를 진행하는 다윗보다 하나님과 깊이 앉아서 대화하는 다윗을 더 기뻐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 된 이후의 행보를 살펴보십시오. 그는 왕이 되고 가장 먼저 예루살렘 성을 빼앗아 다윗성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두 번에 걸쳐서 모셔오지 않았습니까? 그 이전의 그의 삶도 살펴보십시오. 골리앗과의 전투 이후부터 시작해서 그는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전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주는 이미지는 항상 움직이고 전투하고 용감하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다윗보다 하나님 품에서 깊이 교제하고 기도하는 다윗을 원하셨습니다. 다윗이 그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한 이후부터 주변 나라들이 다윗에게 감히 근접도 하지 못할 강력한 군주가 된 것입니다. 다윗의 성공 비결은 바로 이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기도하는 자리는 하나님과 접속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기도하고, 우리 속마음을 하나님께 하나하나 다 아뢰고 나가면 오늘 하루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은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어떤 위기와 어떤 위험이 다가와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건져주실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이 실패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일이 잘 안 되고 실패하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접속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성공과 실패를 가릅니다. 기도에서 멀어지고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깊이 있게 교제하는 데서 떨어져 나가면 실패하기 딱 좋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어디에서부터 떨어졌는지 혹은 어디에서부터 멀어졌는지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살아있으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고, 교제가 멀어지고 떨어지면 실패로 가는 지름길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과의 교제부터 이루어 나가시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