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근심
사사기 10장
요즘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공지능(AI)이 놀랍도록 발전했습니다. 과거에는 무언가를 검색하려면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어를 입력해야 했지만, 이제는 음성 인식 기술이 발달하여 몇 마디 말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즉시 찾아줍니다. 날씨 정보나 교통 정보 등을 매우 정확하게 제공하는 AI 인공지능의 능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는 AI 로봇에 대해 어딘지 낯설고 정이 가지 않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리 똑똑한 인공지능이라 해도 인격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뛰어난 인공지능을 곁에 두고도 진정한 정을 나누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사람은 감정을 지니고 있어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오래 교제할수록 더욱 깊은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더 깊어지고 진정한 정을 나누게 됩니다. 사람이 이렇게 감정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도 기쁨을 드러내실 때가 있고, 분노를 나타내시기도 하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소멸하는 불이 되시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몹시 근심하시는 모습, 마음에 깊이 근심하시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반복되는 타락
사사기는 끊임없는 반복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을 행하고 타락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백성들이 부르짖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할 사사를 보내주시는 반복적 패턴입니다. 이러한 반복 구조는 하나님을 지치게 하고 피곤하게 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근심하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악을 행하고 타락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셨더니" (삿 10:6-7)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을 행했다는 것은 곧 우상을 숭배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근본 원인은 확고한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절대적 기준이 그들 안에 확실히 세워져 있다면 우상을 섬길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하나님 말씀의 기준이 아니라 우상이고 풍요의 신이라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달려가 엎드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상숭배하며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보호의 손길을 거두셨습니다. 성경은 이를 "하나님께서 그들을 파셨다"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울타리를 거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면 불행이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든든하게 붙들고 계셨던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과 눈길이 사라지면, 그때부터 그들은 멸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블레셋과 암몬 자손에게 압제를 당하며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18년의 침묵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해에 그들이 요단강 저편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열여덟 해 동안 학대하였더라" (삿 10:8)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려 18년 동안이나 압제를 당했습니다. 18년이 얼마나 긴 세월입니까?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2004년에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시나요? 까마득히 먼 옛날 같지 않습니까?
놀랍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18년 동안 하나님의 보호를 잃어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단 한 번도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지독하게도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법을 완전히 잊어버린 백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사기의 패턴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기만 하면 즉시 응답해주셨습니다. "우리가 괴로워 죽을 것 같습니다. 살려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즉시 그들을 향해 얼굴을 돌리시고 회복시켜주시며 사사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18년간의 징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그들의 마음이 완악해졌고 돌처럼 굳어졌으며, "기도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방법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고통과 어려움은 더욱 깊어져만 갔습니다.
드디어 18년이 지나서야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삿 10:10)
실로 어리석게도 18년 동안 침묵하던 자들이 마침내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심이 아닌 말씀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심이 아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삿 10:13)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진심일까요?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진심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는 것은 오랫동안 벌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잘못한 자녀에게 "30분 동안 손들고 서 있어라"라고 할 때, 정말 30분을 다 채우라는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녀가 손을 들자마자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회개하면, 대부분의 부모는 "이제 손 내려라"라고 하며, 데리고 앉아서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진심을 나누며 이해하고 오해를 풀어가며 징계를 거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18년 동안 어떤 기도도 하지 않다가 이제서야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한 것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도 계속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 내옵소서 하고" (삿 10:15)
그들은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8년 동안 기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근심
이제 하나님께서 근심하셨습니다.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거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삿 10:16)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근심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 때문에 근심하신 것입니다. "18년 동안 그들이 부르짖지도 기도하지도 않아서 내가 그들을 내버려둔 것인데, 그것이 결국 이스라엘이 18년 동안 고통당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그들을 방치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나아가 이런 근심도 하고 계셨습니다. "지금 내가 사사를 보내어 이들을 건져내면, 앞으로 다시는 악을 행하지 않을까? 다시는 우상 숭배하지 않을까? 다시는 똑같은 죄악과 범죄에 빠지지 않을까?"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확신할 수 없어서 근심하고 계셨습니다. 18년 동안 기도하지 않았던 백성들에 대한 근심을 하나님께서 안고 계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6장 6절을 보면 노아 홍수 이전에 "하나님이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사 마음에 심히 근심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근심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근심하시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하시면, 노아 홍수처럼 그들을 쓸어버리기도 하십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보시며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즉시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수많은 소나 많은 재물을 드리는 것으로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라고 하시며,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 때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아무리 많은 헌금을 하고 오랜 시간 봉사해도,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심령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고 살며, 하나님을 향해 방향이 맞춰져 있을 때 그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기도의 중요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18년 동안 기도하지 않은 것이 하나님을 가장 근심하게 만든 일이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즉시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인격성 하나님께서는 기쁨과 분노, 근심 등의 감정을 가지신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게도 하고 근심하게도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며 하나님을 향해 삶의 방향을 맞출 때, 그것이 하나님의 참된 기쁨이 됩니다. 물질적 헌신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고,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 모든 날들에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