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가치
사사기 15장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교훈을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시간을 귀히 여겨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시간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시간을 무한하다 여기며 소홀히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제한된 시간만이 주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며 게으르고 나태하게 지내다가 갑작스럽게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면, 그때 하나님께 무슨 낯으로 마주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며, 받은 직분이 있다면 그 직분을 소중히 여기며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여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지난 후 철이 들었을 때 그제서야 깊은 후회에 빠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삼손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사명의 실종
삼손은 이스라엘의 사사로 부름받은 자였습니다. 사사는 영적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기고 돌보며 그들의 안녕과 평안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은 여인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이방여인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고 백성들의 현실을 살펴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역할을 해도 모자랄 상황에서, 그의 인생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블레셋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블레셋 땅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수수께끼 사건으로 인해 분노한 삼손은 결혼식을 완전히 망쳐버렸습니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의 행동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인을 다시 찾아 데려오기 위해 그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또 다른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에게로 찾아 가서 이르되 내가 방에 들어가 내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하니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르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노라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를 대신하여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라 하니" (삿 15:1-2)
결혼은 완전히 무산되었고 그의 아내는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고 말았습니다.
무모한 복수
분노에 사로잡힌 삼손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무차별적 보복행위를 감행했습니다.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가지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홰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 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을 사른지라" (삿 15:4-5)
이는 순전히 자신의 격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행위였습니다. 사사로서 도저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극도로 무모하고 무분별한 짓이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 역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이 일이 딤나 여인과 그의 아버지로 인해 벌어진 일임을 알아내고는 그 여인과 아버지를 불에 태워 죽여버렸습니다. 이에 삼손은 다시 한 번 더욱 맹렬한 보복을 감행했습니다.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고야 말리라 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이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머물렀더라" (삿 15:7-8)
원수를 갚고 또 원수를 갚는 악순환이 끝없이 반복됩니다. 사사는 본래 공적인 직분입니다. 만약 그가 진정으로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구원하기를 원했다면, 이런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분노와 감정을 풀어내는 개인적인 해소 수단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살육해서는 결코 안 되는 일입니다. 마땅히 정당한 전쟁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 민족에게 억압당하는 현실을 깊이 안타까워했다면, 그는 사사로서 공의로운 전쟁의 선봉에 서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공적 책임은 방기한 채 오직 자기 개인적 감정을 사사라는 직분을 통해 해결하려고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상황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았을까요?
절망적 현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블레셋이 먼저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와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가득한지라" (삿 15:9)
이제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완전한 전쟁 상태에 돌입하여 삼손부터 제거하고 이스라엘 전체를 칼 아래 두겠다고 결의했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포와 절망감이 어떠했겠습니까? 정작 사사인 삼손은 공적 책임의 최전선에 서지 않고 바위 틈에 숨어버렸습니다. 사사로서의 위엄과 체면이 실종된 상황이었습니다.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하니라" (삿 15:11)
참으로 놀라운 역전 상황입니다. 사사가 오히려 백성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사사 때문에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떨며 생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차분하고 책임감 넘치며 용맹스러워서 백성들이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며 따를 수 있는 지도자여야 할 사사가, 오히려 백성들에게 끊임없는 걱정과 근심을 안겨주는 불안 요소가 되어버렸습니다. 백성들이 찾아와 "너는 블레셋 사람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왜 우리를 이토록 곤경에 빠뜨리느냐?"라고 따져 묻자, 삼손은 "그들이 나에게 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했을 뿐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과연 성인이 할 수 있는 말입니까?
블레셋의 압제 아래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정으로 애틋하게 여기고 불쌍히 여겼다면, 백성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고 블레셋 세력을 완전히 축출해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공적 사명은 전혀 수행하지 않고 오직 개인적 원한과 복수에만 골몰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차라리 삼손이 사라져버리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렇게 되면 이런 무모한 행동으로 인해 고통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낭비된 세월
그런데 이러한 비극적 상황이 단 1년이 아니라 무려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삿 15:20)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사사의 직분을 맡아 지내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사사다운 역할을 제대로 감당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이런 착각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천부적 재능과 초인적 힘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내가 이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있는 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블레셋 정도는 손쉽게 제압할 수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극도로 오만하고 잘못된 착각이었습니다.
20년이라는 소중한 세월 동안 그는 사사로서 백성들을 돌보거나 섬긴 적도 없었고,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적도 단 한 번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 마음대로 여인들을 쫓아다니며 개인적 감정과 욕망만을 채우며 살아왔을 뿐입니다.
현대적 교훈
이러한 삼손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큰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자연스러운 직책과 자리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직분도 맡겨주셨습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들을 돌보고 양육할 수 있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자녀들이 성장하여 독립하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되면, 그 이후에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자녀들을 영적으로 돌보고 먹이고 입히며 키워 세워나가는 과정, 이것이 바로 부모에게 주어진 소중한 직분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날마다 성실하게 감당하지 않으면서 '그냥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잘 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삼손과 똑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에서의 다양한 직분들을 주십니다. 목회자에게는 말씀을 선포하고 백성들을 목양하는 거룩한 직분을 주셨는데, 이 직분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이 직분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다시 거두어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 동안 이 직분을 성실하게 감당하지 않고 날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그 직분의 무게만큼 하나님 앞에서 책망을 받는 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입니다.
중직자든 집사든 교회의 여러 직책을 맡은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시간만큼 온 힘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며 후회 없이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지, 언제 하나님 앞에 서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서 적어도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보고할 말이 있으려면, 맡겨진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삼손과 같은 인생을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삼손은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사사로 지냈지만 사사다운 일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그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해 맡겨진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둘째는 개인적 감정보다 공적 책임을 우선해야 합니다. 삼손은 자신의 개인적 감정과 욕망에 사로잡혀 공적 책임을 완전히 망각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과 사명을 개인적 이익이나 감정보다 우선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는 받은 달란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능력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섬기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삼손을 보며 '이렇게 미련한 사람이 있을까?' 생각하지만, 또 다른 삼손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받은 직분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임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