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기준
사사기 17장
현대 철학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규정합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거대 담론의 소멸입니다. 거대 담론이란 한 사회 전체를 좌우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결집시킬 수 있는 중요한 이슈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에는 남북 분단 문제, 한일 관계의 복잡한 역학, 좌우 이념의 첨예한 대립 등이 그러한 거대 담론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거시적 문제들보다 개인의 생존과 직결된 현실적 과제들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주식과 부동산 투자, 암호화폐 거래, 국민연금 개혁과 같은 경제적 생존 전략이 그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거대 담론이 사라진 시대는 필연적으로 각자도생의 시대이며, 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공통분모보다는 개인의 방식과 선택이 우선시되는 극도의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상실된 통합력
이러한 현상은 결코 오늘 우리 시대만의 특별한 문제가 아닙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사사시대 역시 동일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사사시대 이전에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하나로 결속시킬 수 있는 명확한 거대 담론들이 존재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시절에는 출애굽이라는 절대적 소망이 모든 백성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4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들이 한결같이 품어온 꿈은 이 지긋지긋한 종살이를 끝내고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 염원은 혈통과 지역, 계층을 초월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의 민족으로 결집시키는 강력한 구심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을 성취한 후 광야에서 방랑할 때는 가나안 입성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목표가 그들을 통합했습니다. 40년이라는 긴 광야 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소망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발을 들여놓은 여호수아와 그를 따르는 백성들에게는 이 약속의 땅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 모든 노력과 희생을 정당화하는 최고의 명분이었습니다.
이처럼 각 시대마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하나로 결속시키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강력한 거대 담론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정착이 완료된 이후에는 이러한 통합적 비전이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간결하면서도 예리하게 진단합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17:6)
여기서 '왕이 없었다'는 표현은 단순히 정치적 통치자의 부재를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당시 이스라엘에는 왕정제도가 확립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지적하시고자 하는 것은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왕의 왕이시며 참된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영적 무정부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모든 판단과 행동의 준거로 삼는 사람들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주관적 판단과 개인적 소견에 따라 옳고 그름을 결정하며 살아가는 상대주의적 혼란 상태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무너진 도덕
사사기 17장부터 21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상태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삿 17:1-2)
에브라임 산지에 거주하는 미가라는 인물의 가정에서 벌어진 사건이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전반적인 도덕적 타락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의 어머니가 소중히 여기던 은 1,100개가 사라졌는데, 그 범인은 다름 아닌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계속해서 잃어버린 돈에 대해 걱정하며 언급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결국 자신의 도둑질을 자백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보여지는 어머니의 반응이 실로 놀랍습니다. 십계명의 제8계명인 '도둑질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아들을 향해 마땅히 해야 할 책망이나 훈계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며 축복의 말을 건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기준에 비추어 아들의 죄를 정확히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해야 할 순간에, 그녀는 도리어 종교적 언어로 포장된 관용을 베풀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미가의 가정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이 한 가정의 모습을 통해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 전반에 만연한 도덕적 무감각과 영적 타락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적 혼합주의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삿 17:4-5)
미가의 가정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단순한 도덕적 타락을 넘어서 심각한 종교적 혼합주의로 발전합니다. 십계명의 핵심인 첫 번째 계명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지니라"와 두 번째 계명 "형상을 만들지 말라"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가 당연한 것처럼 자행되고 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우상 제작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는 왜곡된 신앙적 명분으로 포장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은으로 신상을 만들면서 이것이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는" 행위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혐오하시는 우상 숭배를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라고 믿는 심각한 영적 무지와 혼란이 당시 이스라엘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집에 신당까지 건립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에봇과 드라빔을 제작하여 배치하고, 급기야 자신의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파행을 저지릅니다. 이는 오직 아론의 후손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하나님의 명확한 규정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미가 한 가정에만 국한된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전체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이었다는 점이 더욱 심각합니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졌습니까? 그 근본 원인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기준이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사명감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헤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삿 17:7-8)
이제 성경은 당시 영적 지도층까지 어떻게 타락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착 시 레위 지파에게만은 일반적인 영토를 분배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이스라엘 12지파의 영토 전반에 걸쳐 총 48개의 성읍을 거점으로 분산 배치하셨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배치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레위 후손들에게는 일반 백성들과는 다른 숭고한 사명이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 간의 분쟁을 공의롭게 재판하고, 복잡한 갈등을 지혜롭게 조정하며,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교육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모든 예배와 제사를 거룩하게 인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레위인들은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그 거룩한 성읍들에 머물면서 자신들에게 맡겨진 영적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이 젊은 레위인은 하나님의 섭리적 배치를 완전히 무시한 채 자의적으로 거주지를 떠나버렸습니다.
그가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는 냉혹한 현실이 있었습니다. 원래 레위인들의 생계는 다른 지파 백성들의 십일조와 헌물로 유지되어야 했는데, 전반적인 영적 타락으로 인해 이러한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포기하고 각자 자신의 소견에 따라 살아가게 되었고, 그 결과 이스라엘의 전체적인 영적 질서가 붕괴되었습니다.
레위인들 역시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사명에 대한 소명 의식을 상실했고, 일반 백성들도 영적 지도자들의 삶을 돌보는 의무를 등한시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종들조차 각자의 생존을 위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처지가 되고 만 것입니다.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삿 17:10)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영적으로 인도해야 할 거룩한 사명을 받은 레위인이 단 한 가정의 사사(私私) 제사장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연봉과 처우를 협상하며 미가의 집에 정착한 것입니다. 오직 생계를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숭고한 부르심을 완전히 포기하고, 경제적 안정만을 추구하며 한 개인 가정의 종교적 시중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는 현대적 비유로 표현하자면, 정식으로 안수받은 목회자가 교회의 사명을 완전히 등지고 특정 가문의 전속 종교 지도자로 전락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충격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절대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개인의 삶이든 가정이든 사회든 교회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불변의 절대 기준이 제거되는 순간 모든 영역에서 상대주의적 혼란과 도덕적 타락이 불가피하게 찾아옵니다. 각자가 자신의 주관적 소견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되면, 결국 그 사회는 무정부적 혼돈 상태로 치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도 동일한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 건물은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선포되지 않는 시대, 신앙인이라 자처하는 부모들이 있지만 가정에서 절대적인 말씀의 기준이 세워지지 않아 자녀 양육과 교육을 세상의 기준과 자신들의 소견에 따라 행하는 시대, 목회자의 직분을 가진 이들은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절대적 기준을 담대하게 선포하는 참된 영적 지도자가 부족하여 교회가 혼란과 갈등에 빠지는 시대를 우리가 경험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기준으로 삼아 모든 영역을 재건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변함없는 절대 기준으로 확고하게 세우고, 그 말씀에 기초하여 건강한 가정을 세우며, 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구축하고, 거룩하고 순수한 교회를 건립해 나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고한 기준 없이는 시대의 풍조에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불변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이 험하고 혼란한 세상에서 흔들림 없이 한 길을 걸어가는 신실한 믿음의 순례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