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기준
사사기 19장
인도는 지금까지 1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입니다. 한 명도 배출하기 힘든데 12명이나 배출했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인도를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인구가 많고 자원이 풍부해서 잠재력이 있는 나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선진국이라고 하려면 기본적인 수준이 어느 정도 이상이 되어야 하고 기초학력이 높아야 하며, 여러모로 다른 나라들과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어야 합니다. 소수의 엘리트들만 교육하고 국가 경쟁력을 위해 그들에게만 투자한다고 해서 좋은 나라, 선진국이라고는 부르지 않습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두 명의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이 있다고 해서 그 시대를 영적으로 뛰어난 시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살았던 시대가 얼마나 암담했습니까? 엘리야와 엘리사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선지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최악의 시대였습니다. 사사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사시대의 영적 수준은 평균 이하였고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타락한 지도자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삿 19:1)
오늘 본문은 사사시대의 암울했던 영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아무런 감흥 없이 읽어서는 곤란합니다. 레위인이 첩을 맞이했다는 것은 요즘으로 말하자면 목회자가 첩을 두었다는 것인데, 이는 놀랄 만한 일이며 놀라야 하는 일입니다.
레위인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 거점 도시에 흩으시고 그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각 지파들의 영적 교육, 신앙 훈련, 제사, 재판을 도맡아 하도록 그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미가의 집에 들어간 레위인은 자기가 살고 있는 땅, 사명받은 땅이 싫어서 그 땅을 떠나 한 개인 가정의 제사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 레위인은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지역에서 첩을 두고 첩을 택한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보통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실 일이고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인지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 지도자가 이런 식으로 행하는데 백성들이 어떻게 이 지도자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레위인을 어느 특별한 레위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어떤 레위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레위인들의 평균 수준이 이런 수준이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보통의 레위인들이 이런 식으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백성들의 삶을 상상해 보십시오. 암울하지 않겠습니까? 사사시대 말기로 가면서 백성들이 의지할 만한 사사도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기드온, 입다, 압돈 이런 사람들은 여러 명의 아내를 두었고 수십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사사인데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영적 지도자인데 전혀 영적 지도자의 품격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도덕적으로도 타락했습니다.
레위인도 타락했고 사사들도 타락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백성들도 레위인과 사사들을 따라서 그들의 수준과 함께 타락해 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끔찍한 결과
레위인이 첩을 맞이한 것도 문제였지만 그 뒤에 일어나는 일이 더욱 심각합니다.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 (삿 19:2)
첩이 오히려 행음하고 자기 친정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레위인은 이 첩을 데려오려고 그 여인의 친정집에 가서 간청하고 여인의 마음을 돌려 데려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여인을 데려오는 중에 사고가 납니다. 베냐민 지파 지경에서 밤을 보내다가 그들이 유숙하는 집에 불량배들이 찾아옵니다. 불량배들에게 화를 면하고자 해서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내줘 버립니다.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여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삿 19:25)
이럴 거면 레위인은 왜 이 여자를 그토록 간절히 데려온 것입니까? 레위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비겁한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이 사람을 영적 지도자라고 말하기에는 입이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불량배들이 이 여인을 밤새도록 능욕하다가 놓았는데 여인은 그만 목숨을 잃고 맙니다.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을 때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삿 19:26-27)
살인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비통한 마음을 가지고 레위인은 이 여인의 시체를 싣고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다음 일이 더 엽기적입니다.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삿 19:29)
레위인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거나 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베냐민 지파의 지경에서 당한 일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알리고자 여인의 시신을 열두 조각으로 나눈 것입니다. 시신을 토막 낸 것입니다. 그래서 열두 지파 대표 지도자들에게 보냈습니다. 오늘날 신문 지상에서 언론 지상에서 오르내리는 일보다 훨씬 더 추악하고 엽기적인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왕의 부재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당시에 왕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것이 근본 원인입니다. 여기서 왕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 정치적 지도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기준, 즉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사라지면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를 사사기 끝부분에서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진 가정 미가의 집에는 아들이 도둑질을 해도 어머니가 책망하지 않습니다. 십계명을 어겼는데도 어머니는 아들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니 그 가정에 신당이 들어옵니다. 제단에 우상이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니 십계명의 1계명과 2계명과 8계명을 어기는 일이 그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고 나니 단지파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의 땅을 떠나서 다른 땅을 찾고 있습니다. 누구도 제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기준으로 삼고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니 레위인이 자기가 받은 땅을 떠나서 한 가정의 제사장이 되고, 레위인이 첩을 맞이하고, 레위인이 시신을 토막 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니 베냐민 지파 불량배들이 여인을 능욕하고 살해하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사라진 세상은 온통 지옥 같은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죽어서만 가는 것이 지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면 그 당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지옥을 방불케 하는 일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말씀을 절대 기준으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내 마음에서부터 절대 기준의 말씀을 세우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살아있는 가정은 천국 같은 가정이고 하나님 말씀의 기준이 살아있는 교회가 천국 같은 교회가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 말씀의 기준이 사라지면 지옥 같은 삶이 됩니다. 하나님 말씀의 기준이 사라지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숨이 붙어 있으나 지옥 같은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서 우리가 천국 같은 가정, 천국 같은 교회, 진실로 천국 같은 우리 인생을 누리게 됩니다. 말씀은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영적 지도자들이 먼저 말씀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사사시대 말기에 영적 지도자들이 타락하고 지도자들부터 무너져 내리는 이 시기를 우리가 엄중히 살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가정의 부모로서 영적 지도자로서 우리 가정을 잘 세우고, 신앙생활 오래 한 믿음의 선배로서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하루를 살아가고 그 말씀의 절대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서 이런 어이없는 일, 안타까운 일, 불행한 일이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