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장

성경
사사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사사기 1장

변하지 않는 패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에는 반드시 일정한 패턴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 패턴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에 따라 문제 해결의 명쾌함이 결정됩니다. 수학의 달인은 단순한 계산 능력이 아니라 문제 속에 숨겨진 일정한 법칙과 구조를 통찰하여 해답에 이르는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인간관계 역시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관계의 기술을 터득한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의 패턴을 민감하게 포착합니다. 상대가 기뻐하는 것은 함께하고 불편해하는 것은 피해준다면, 관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로서 주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민첩하게 분별하고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과 슬프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성경 말씀에 명료하고 확실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앙생활의 실패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역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적용되는 영적 생활의 핵심 원리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의 부재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삿 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라는 구절로 사사기가 시작됩니다. 이는 여호수아서 1장 1절의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와 동일한 서두입니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라는 표현은 한 시대의 마감과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죽음과 여호수아의 죽음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430년간 이집트의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해방시킨 영웅입니다. 홍해를 가르고 40년 광야 여정을 이끌었으며, 하나님과 직접 만나 십계명을 받아 내려온 율법의 아버지였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백성들의 불안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셨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 못지않은 신실함으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게 하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완수하며,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는 일까지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수아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세 사후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같은 차원의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걸출한 지도자를 잃은 백성들의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사후에 동등한 영적 지도자를 세우지 않으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 깊은 섭리적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가나안 정착을 완료한 후, 하나님께서는 열두 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하시면서도 레위지파만큼은 특별하게 처우하셨습니다. 다른 지파들처럼 집중된 영토를 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각 지파의 거점 도시 48곳에 분산하여 배치하셨습니다.

이러한 배치의 의도는 명확했습니다. 레위지파가 이스라엘 전체를 대상으로 제사, 신앙교육, 재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같은 카리스마적 지도자 시대에서 이제는 개별 지파와 각 개인이 정착한 삶의 터전에서 성실한 신앙생활을 영위하되, 레위지파의 영적 지도를 받도록 하신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흩어져서 레위지파의 지도 아래 예배를 드리고 신앙 교육을 받으며 분쟁이 생기면 재판을 받기는 하지만, 여호수아나 모세 같은 든든한 정신적 지주가 없다는 현실이 그들을 위축시켰을 것입니다.

합심 기도의 위력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삿 1:1)

여호수아가 생존해 있었다면 그가 하나님께 대표로 기도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족속과 싸워야 하겠습니까?" 지도자가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걸출한 지도자가 부재한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합심해서 간구합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까? 여호수아의 기도, 모세의 기도에는 응답하셨지만, 우리가 아무리 함께 기도한다 해도 특별한 방법이 있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힘을 합쳐 기도하는 데 응답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 하시니라" (삿 1:2)

하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 여호수아의 기도에만 응답하는 분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이름 모를 평신도들이 함께 힘을 합쳐서 기도하는 그 기도에도 하나님은 친히 응답하셨습니다.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내가 그 땅을 넘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응답대로 되었는지 그들은 올라갔지만 정말 불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이루어집니다.

"유다가 올라갈 때에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시니 그들이 배색에서 만 명을 죽이고" (삿 1:4)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영원한 원리

이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 시공을 초월하여 동일하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탁월한 지도자의 기도에만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라, 평범한 성도들의 기도에도 똑같이 응답하시며, 수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의 기도에도 변함없이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경 말씀을 진리로 믿고 따르는 이유입니다. 만약 성경이 모세와 여호수아의 기도에는 응답하신다고 기록하면서도 일반 백성들의 기도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말씀을 현재의 살아있는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과거 여호수아의 기도에 응답하셨던 그 하나님, 이름 없는 평신도들의 간구에도 귀 기울이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가 답답한 마음으로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르짖을 때에도 분명히 응답해주십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세월은 물같이 흘러가며 모든 것이 요동치는 듯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원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불변의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오늘도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십니다.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걸출한 영적 지도자만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의 간구에도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작은 기도라고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 합심 기도에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즉시 응답해주셨습니다. 개인적인 기도도 귀하지만,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간구할 때 더욱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진리입니다. 세상은 변하고 시대는 흘러가지만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법칙은 변함이 없습니다.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바꾸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이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오늘 하루도 승리하는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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