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0장

성경
사사기

가치중립

사사기 20장

칼이 요리사의 손에 들려지면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는 훌륭한 도구가 됩니다. 하지만 도둑의 손에 들려지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고 재산을 빼앗는 무서운 흉기가 됩니다. 칼은 그 자체로는 죄가 없으나 어떤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훌륭한 도구가 되기도 하고 무서운 흉기가 되기도 합니다.

탁월한 지식을 예수님을 잘 믿는 훌륭한 크리스천이 소유하면 세상을 구원하는 좋은 도구가 되지만, 사탄의 권세 아래 사로잡힌 악한 사람에게 그 탁월한 지식이 들어가게 되면 법을 어기고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는 무서운 도구가 됩니다.

이렇듯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가치중립적입니다. 물건이나 장소가 그 자체로는 죄가 없습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하고 정말 무서운 도구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그 교훈을 우리에게 잘 들려줍니다.

미스바의 집회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삿 20:1)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라는 장소에 나와서 모였습니다. 이들이 이 자리에 모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지파, 베냐민 지파를 대상으로 전쟁하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 자기들끼리 내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어떤 레위인 때문입니다. 어떤 레위 사람이 첩을 두었습니다. 첩을 데리고 길을 가다가 베냐민 지파 지경에서 불량배들에게 자기 첩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 첩의 시체를 12조각으로 토막을 내고 그 토막 낸 시체를 각 지파들에게 보냅니다. "내가 베냐민 지파 지경에서 이런 일을 당했으니 베냐민 지파를 심판해 달라"고 청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각난 시체를 보고 미스바에 모여서 베냐민 지파를 심판하겠다고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 당혹스럽습니다. 레위인은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습니다. 영적 지도자인데 자기가 첩을 두었다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 이런 일을 당했는데" 하며 하나님 앞에 가서 엎드려 회개하지도 않습니다. 부끄러움이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 당당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자기 잘못, 자기 죄는 회개하지 않고 자기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쏙 빼놓고 베냐민 지파를 심판해 달라고 목청을 높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빠져나가고 여인을 불량배들에게 내어준 자기의 죄도 모른 척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인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레위 지파 사람으로 우리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할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합심하여 그 성을 치려고 모였더라" (삿 20:11)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합심했다면 기도해야 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이런 일에 휘말려서 이런 지경까지 왔는가?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영적 지도자는 타락했고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이 일에 분기탱천해서 모이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런데 이들은 모여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한 지파를 대상으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왕이 없음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장소와 도구

이들이 하는 일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그때 왕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 아니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모인 미스바는 지금 죄를 짓는 장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미스바는 그 자체로 나쁜 곳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7장을 보면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모아두고 회개를 선포하는 자리가 미스바였습니다. 그곳에서 엘리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의 악행을 청산하고 "이제 우리 이스라엘이 새롭게 다시 출발하기를" 결단하는 눈물로 회개하는 자리가 바로 미스바였습니다. 미스바 대각성 운동, 미스바의 영적 부흥 운동이 사무엘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어떤 레위인이 중심이 되었던 시절에는 미스바는 죄를 짓는 장소였지만, 사무엘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은 후로는 미스바가 회개의 자리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미스바라는 장소는 가치중립적입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그 자리는 회개의 자리가 되기도 하고, 그 자리는 이스라엘 공동체 모든 백성들이 죄를 짓는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인에게 있어서 예배는 살인을 촉발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예배드린 후에 아벨을 향한 불붙는 질투심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내가 드리는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 이것 때문에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가 가인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자리가 되고 말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고넬료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로마 군대 이방인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방인이면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잘 드렸습니다. 그는 예배드리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자기 집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이방인 중에 최초로 세례받은 사람, 최초로 성령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배도 가치중립적입니다. 그 자체로 예배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인데,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방식으로 드리냐에 따라서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또 어떻습니까? 우리 가정이 누군가에게는 미래를 꿈꾸고 사랑을 꽃피우며 사랑을 세워나가는 아름다운 장소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가정은 지옥 같은 곳입니다. 들어가기도 싫고 상상하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은 자리가 바로 가정이 됩니다. 누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까? 그 가정의 구성원들이 가정을 세워가는 것 아닙니까?

무너지는 과정

순서를 가만히 살펴보면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무너진 순서가 가정이 먼저 무너집니다. 미가의 가정처럼 도둑질을 해도 어머니가 책망하지 않습니다. 가정에 신당을 두고 신상을 세웁니다.

왕이 없으므로 영적 지도자 레위인들이 무너집니다. 왕이 없으므로 그 다음은 한 지파, 단지파가 무너집니다. 하나님께 부여받은 그 땅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습니까? 왕이 없으므로 이제는 민족 전체가 무너집니다.

가정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기준이 없으면 서서히 무너져서 이스라엘 전체가 파멸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가정을 잘 세워 나가면 가정은 에덴 같은 천국이 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반대로 행하면 가정은 죽기보다 들어가기 싫은 정말 지옥 같은 장소가 되고 마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만들어 가는 자리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장소를 탓할 이유도 없고 공간을 탓할 이유도 없고 일터를 탓해서도 안 됩니다. 바로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둘째는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왕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내 인생의 왕을 세운다면,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왕의 그 기준을 세워간다면 내가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건 누군가와 함께 있건 간에 그 자리가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셋째는 나부터 하나님 말씀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 나라를 걱정한다면 나부터 우리 가정부터 하나님 말씀의 기준을 세워 가야 됩니다. 그것이 애국하는 길이고 그것이 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바로 서 있었던 사무엘이 살아갔던 시절의 미스바는 영적 각성과 회개의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어떤 레위인의 시대의 미스바는 같은 동족을 대상으로 전쟁을 선포하는 죄를 짓는 악행의 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 스스로가 먼저 하나님 말씀의 기준부터 굳건하게 세워가시는 믿음의 자녀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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