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한 믿음의 사람 기드온
사사기 6장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과 매사에 신중한 사람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닫힌 사고를 지니고 있어, 한번 정해진 자신의 생각을 절대로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좋은 충고를 하고 상황이 긍정적으로 흘러가도, 한번 굳어진 생각을 결코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중한 사람은 다릅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심정으로 길을 걸으며,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접근합니다. 여러 방법을 시도해보고 다각도로 접근하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볼 때는 더딜 수 있지만, 차근차근 성장하며 착실히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두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정적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놀라운 이적과 기사와 표징을 보여주셔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믿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왕 바로가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례 없는 기적과 표징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중한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믿고 싶어하지만 아직 믿음이 어리고 연약하여, 하나님께서 분명히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면 그 깨달음대로 조금씩 실천하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믿음에 있어 진정 신중한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범죄와 구원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기드온은 바로 후자에 해당하는 신중한 사람입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그 심판을 견디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며 구원을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사사를 보내주시는 순환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우상숭배에 빠졌다가 후회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을 행하자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을 통해 그들을 7년 동안 징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삿 6:6)
하나님 앞에 이렇게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패턴으로 이스라엘의 사사를 세우셨습니다. 이번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가 바로 기드온이었습니다.
소심하지만 책임감 있는 기드온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삿 6:12)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실 때 "큰 용사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볼 때 기드온은 큰 용사의 자질을 갖춘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매우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넓은 타작마당에서 밀을 타작하다가 미디안 사람들에게 곡식을 빼앗길까 두려워하여, 포도주 틀에 밀을 조금씩 넣어 발로 밟아 타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라도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생각해도 큰 용사가 될 수 없는데,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큰 용사라고 부르시며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고 하시는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표징을 구하는 기드온
그래서 기드온은 하나님께 표징을 구하게 됩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삿 6:17)
기드온이 표징을 구한 것은 믿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신중한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진심으로 믿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이렇게 간구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그의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 하니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삿 6:20-21)
고기와 무교병에 국물이 부어져 젖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불이 나와 모든 것을 태워버렸습니다. 이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표징임을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그를 부르셨음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증명해주신 것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지만, 기드온은 더욱 신중하게 또 다른 표징을 구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신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삿 6:36-37)
이번에는 양털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고 주변 땅은 마른 채로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자연법칙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기적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대로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가지를 더 요청했습니다.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삿 6:39-40)
이번에는 반대로 주변 땅에는 이슬이 있고 양털만 마른 채로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요청도 들어주셨습니다.
진심을 아시는 하나님
우리는 이런 본문을 읽으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해집니다. 첫 번째 표징으로 충분했을 텐데, 두 번째, 세 번째까지 하나님을 시험하듯 요구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세 가지 표징 요구를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기드온의 진심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믿고 싶지 않아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한 성품 때문에 일어난 일임을 하나님께서는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만약 바로와 같은 인물이었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지도 않으셨을 것이고,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기드온은 사도 도마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도마 역시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그러나 도마의 이 말은 믿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어서 예수님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서 한 말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결론
우리 하나님, 우리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믿고 싶어하고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며 더 깊이 경험하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보여주시고 들려주시고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부정적 태도와 신중한 태도를 분별해야 합니다. 기드온은 부정적인 인물이 아니라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소심한 면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알고 싶어했고 믿고 싶어했으며, 진심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알고 싶고 깊이 경험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진심을 정확히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진심을 아셨기에 세 가지 표징을 보여주시고 함께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알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깨달을 때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마음에 받아들이고,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신실하고 신중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싶다는 우리의 전심을 보여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전능하신 분, 그리고 친구와 같은 분으로 함께해주실 줄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가 그런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