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털사커
사사기 8장
요한 크로이프는 네덜란드 축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선수로도 감독으로도 거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 축구계의 혁신가였습니다. 그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털 축구 개념이었습니다.
크로이프 이전의 축구는 수비수는 수비만, 공격수는 공격만 하는 고정된 역할 분담의 축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토털 축구를 통해 수비수도 공격에 가담하고 공격수도 수비에 참여하는 혁신적인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체력이 부족하거나 게으른 선수는 살아남기 어려웠습니다. 전후반 90분 내내 치열하게 뛰어다니며 경기를 주도할 수 있는 선수들만이 요구되었습니다.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축구선수들입니다. 승리를 위해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토털 축구의 선수들과 같습니다. 동료들이 공격할 때는 함께 공격에 가담해야 하고, 수비할 때는 함께 수비해야만 승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만약 동료들이 공격하는데 뒤에서 방관하거나, 수비가 필요한 순간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승리 확률은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동참하지 않는 자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위한 거룩한 전진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걸림돌이 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징벌하시는지가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의 압제에 7년 동안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3만 2천 명이 모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많다고 하시며, 두려워하는 자들을 돌려보내시고 경계심이 부족한 자들도 제외시키시며 우상숭배 경험이 있는 자들까지 걸러내신 후, 결국 300명만으로 대승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이제 미디안의 주력 부대는 무너뜨렸고, 남은 잔당들을 소탕하는 과정입니다.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들이 잔당들을 추격하는 여정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기드온과 그와 함께한 자 300명이 요단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는 백성이 피곤하니 청하건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를 뒤쫓고 있노라 하니" (삿 8:4-5)
장기간의 전투로 300명의 용사들이 지쳐있었습니다. 기드온은 숙곳에 도착하여 동족인 숙곳 사람들에게 양식을 요청했습니다. 당연히 제공되어야 할 지원이었습니다. 숙곳은 이방 나라가 아니라 이스라엘 영토 내의 한 지역이었고, 같은 민족으로서 이 거룩한 전쟁에 함께 참여해야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숙곳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숙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 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는지라" (삿 8:6)
두려움인가, 계산인가?
그들이 이렇게 반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 미디안의 주력 부대가 기드온의 300명에게 패배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을 가능성입니다.
둘째, 설령 승리 소식을 들었다 해도 과연 이 300명으로 세바와 살문나의 잔당들까지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습니다. 7년 동안 그들을 지배했던 미디안의 위력은 너무도 강력하고 두려운 것이었기에, 만약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 정벌에 실패한다면 숙곳 사람들이 받게 될 보복이 두려워 망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숙곳 사람들은 기드온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기드온은 다음 장소로 향했습니다.
"기드온이 이르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거기서 브뉴엘로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그같이 구한즉 브뉴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은지라" (삿 8:7-8)
브누엘 사람들도 숙곳 사람들과 동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기드온은 그들에게도 엄중한 경고를 했습니다.
"기드온이 또 브누엘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하니라" (삿 8:9)
300명이라는 숫자는 그들의 눈에 너무도 초라해 보였습니다. 이런 소수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수만 명을 동원해도 승리가 어려운데, 7년간 그들을 짓누른 미디안의 위력을 생각할 때 잔당이라 할지라도 세바와 살문나를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느냐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의 결정적인 오판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300명에 불과했지만, 그들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디안의 주력 부대를 무너뜨리게 하셨고, 이제 남은 잔당들까지 소탕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역사적 순간에 동참할 귀중한 기회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기회는 누구에게나 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부담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기회를 제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 나라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 순간에 우리의 전존재를 걸고 나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주변을 살피며 손익을 계산합니다. 참여하는 것이 유리한지, 한 발 빼고 기다리는 것이 나은지를 따져봅니다. 계산하기 시작하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기울게 됩니다. 숙곳과 브뉴엘 사람들이 바로 이런 실패를 범한 것입니다.
심판의 결과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너희가 전에 나를 희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 거냐 어찌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들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삿 8:15-17)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군대에게 완전한 승리를 주셨고, 승리의 여정에 동참하지 않았던 자들은 결국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실 때, 끝까지 그 위대한 사명에 동참한 사람들은 결국 제자들뿐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따라 행동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나 치유의 역사가 일어날 때는 수만 명이 따랐지만, 예수님의 기적이 멈추고 말씀만 선포하실 때는 모두 떠나갔습니다. 결국 제자들만이 남았습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끝까지 방해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지한 자들이 아니라 많이 배우고 많이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율법학자, 사두개인들이 오히려 주님의 사역에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었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에 동참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해 예수님을 대적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 무서운 심판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깊이 살펴봐야 합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 이 세상 사탄의 세력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회 공동체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 할 때, 교회가 하나님의 의와 뜻을 성취하려 할 때, 그때 함께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역사 동참 기드온의 300명이 사람의 눈에는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그들 뒤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어리석은 숙곳과 브뉴엘 사람들은 300명 뒤에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해 결국 심판을 당했습니다.
둘째, 순수한 헌신 어떤 일을 할 때 손익을 따지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참으로 영적으로 깨어있고 지혜로운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계산하고 따지기 시작하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셋째, 기회의 지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에 함께 동참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사역에 동참할 기회는 누구에게나 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 위에 함께 서 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어리석은 숙곳과 브뉴엘 사람들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참하는 믿음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 칭찬받고 거룩한 승리를 경험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