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순종과 끝까지 충성
여호수아 13장
진정한 공정의 가치
오늘날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 중 하나가 바로 공정입니다. 그런데 공정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는 적극적 의미의 공정은 사회 공동체의 발전에 크게 기여합니다. 이런 공정은 개인에게도 진취적 기상을 불어넣어 전진하게 만드는 유익한 가치입니다.
반면 내가 기회를 받지 못하니 당신들도 기회를 받을 수 없다는 식의 부정적 공정은 모든 공동체를 하향 평준화로 이끌어 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기회가 누구에게나 원칙적으로 열려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한 발 더 움직이며 열심을 다하는 사람이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됩니다. 따라서 궁극적 차원에서 진정한 공정은 열심히 하는 사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전체적 관점에서 보는 참된 공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십니다. 조금 더 움직이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앞에 열린 기회를 붙잡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입니다.
가나안 정복의 미완성 상태
오늘 본문의 시대적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정복 작전을 마친 직후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크게 세 단계에 걸쳐 가나안 정복을 수행했습니다.
먼저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중심으로 한 가나안 중부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이어서 아모리 다섯 왕 연합체를 격파하여 가나안 남부 지역을 장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솔왕 야빈이 주도하는 북부 연합군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가나안 북부까지 정복했습니다.
이렇게 가나안 중부, 남부, 북부를 차례로 정복함으로써 전반적인 차원에서 가나안 정복을 완료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습니다. 여전히 정복하지 못한 지역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직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일곱 족속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크고 작은 성들에 숨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100% 완전한 의미에서의 가나안 정복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수 13:1)
여호수아도 이제 고령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남은 모든 땅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어중간하게 정복하고 그만두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모든 가나안 일곱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고 100% 완벽한 정복을 성취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땅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지역들이 이렇게 소개됩니다:
"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모든 지역과 그술 족속의 모든 지역 곧 이집트 앞 시홀 강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쪽 에그론 경계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통치자들의 땅 곧 가사 족속과 아스돗 족속과 아스글론 족속과 가드 족속과 에그론 족속과 또 남쪽 아위 족속의 땅과" (수 13:2-3)
실제로는 정복해야 할 땅이 상당히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블레셋인들이 거주하는 다섯 지역이 대표적인 미정복지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블레셋 정복을 회피한 이스라엘의 계산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블레셋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을까요? 블레셋 지역은 가나안 전체에서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중해 연안을 따라 형성된 이 지역은 다섯 부족이 연합한 강력한 도시국가 연맹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가나안의 다른 족속들은 모두 쫓아내면서도 유독 블레셋인들에게만 손을 대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매우 호전적이고 강력한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마음은 아마 이러했을 것입니다:
"굳이 블레셋인들을 건드리지 않아도 큰 그림에는 지장이 없지 않은가? 이미 우리가 가나안의 핵심 지역을 모두 장악했고, 이제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 되었는데 굳이 그들과 다시 전쟁을 벌일 이유가 있겠는가? 그들과 싸우려면 우리에게도 상당한 피해가 예상되는데, 지금 우리 지도자 여호수아는 고령이 아닌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과 맞설 필요가 있겠는가?"
이러한 현실적 계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원주민들은 적극적으로 추격하여 쫓아내거나 한 곳으로 몰아넣었지만, 블레셋인들만큼은 아예 건드리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과 도전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내고 도전하라고 격려하시며, 당신이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 산지의 모든 주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을 내가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내가 명령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수 13:6)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낼 것이다"—이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선언이었습니다. 여기서 '내가'는 바로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직접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쫓아내겠다"고 말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하고 담대히 도전에 나서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가나안을 정복해 온 과정을 되돌아보면, 그들의 승리 요인이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의 무기가 뛰어나서도, 병력이 압도적이어서도, 전술이 탁월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도전했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승리를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신뢰하고 나아갔을 때 지금까지 모든 승리를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블레셋 족속을 비롯하여 아직 정복하지 못한 모든 땅을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하나님의 이 소중한 말씀을 외면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분명하게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블레셋인들과 전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판단 근거는 단순했습니다. 큰 그림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순종이 낳은 비극적 결과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내린 그들의 판단이 앞으로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는 고통의 근원이 되고 맙니다. 블레셋인들이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었는지 역사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도 결국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그의 아들 요나단 역시 같은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블레셋 다섯 족속 연합체가 이스라엘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괴롭혔는지는 구약 역사 전반에 걸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할 때 그들을 쫓아내라"고 명령하셨을 그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일어나 그들과 전쟁을 벌였다면 어떠했을까요? 분명히 하나님의 뜻대로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고,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영원한 평화를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귀찮고 불편하며 하기 싫다는 이유로 그들을 쫓아내지 않은 이 문제가 대대손손 그들에게 치명적인 올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완전한 순종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중간에 그만두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경고하지 않습니까?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죄와 싸워 승리하려면, 죄를 완전히 몰아내려면, 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내야 합니다.
대충 해놓고 "이제 좀 쉬자"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죄는 다시 우리를 강력하게 공격해올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전했듯이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중간에 그만두는 것 같은 일이라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더 나습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직분을 받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봉사와 섬김의 자리를 맡겨 주셨다면,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그 일을 완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충성을 원하시되, 특히 끝까지 완전한 충성을 기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전쟁이 끝나고 승기가 자신들에게 왔다고 판단하여 그 자리에서 멈춘 것, 그로 인해 블레셋 다섯 족속 연합체를 그대로 남겨두고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 것, 이것이 그 후손들에게 끊임없는 고통을 안겨준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나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충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아직도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투쟁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은 어디입니까? 우리 스스로를 깊이 성찰하여 충성하되 끝까지 완전한 충성을 다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을 어중간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모든 가나안 일곱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는 100% 완벽한 정복을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완전함을 향해 있습니다.
둘째, 불완전한 순종은 결국 올무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것이 수백 년 동안 그들을 괴롭히는 고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죄와 싸울 때도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내야 합니다. 중간에 멈추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완전한 충성을 기뻐하십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 하나님께서는 중간에 포기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고, 끝까지 완전한 충성을 다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시작했다면 반드시 완주해야 합니다.
충성하되 끝까지 완전한 충성을 다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