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7장

성경
여호수아

스스로 개척하라

여호수아 17장

믿는 구석

믿는 구석이 있으면 사람들은 배짱을 부리기 쉽습니다. 예전에는 경찰이나 검찰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교통법규 정도는 가볍게 어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믿는 구석이 공동체 질서를 파괴하고 사회 부정부패와 온갖 부조리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중요한 것은 성장 단계에 따라 아이가 자기 일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부모가 믿는 구석이 되어 주는 것이 당연하지만,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조금씩 자립하게 하고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하며, 잘한 일은 잘한 것대로 못한 일은 못한 것대로 책임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셉 자손들인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는 여호수아를 믿는 구석으로 여기고 해서는 안 될 부탁을 합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이들에게 단호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그들을 질책하고 교육했습니다.

스스로 개척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했지만, 그 정복은 완전한 정복이 아니라 미완의 정복이었습니다. 땅을 분배받은 각 지파는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을 스스로 올라가서 차지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세가 이미 이스라엘 편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이들은 굳이 모험을 감행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을 쫓아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85세 노인 갈렙이 일어나 헤브론을 차지하면서 유다족속을 비롯한 모든 열두 지파에게 모범을 보였습니다. 갈렙은 자신뿐만 아니라 유다지파 젊은 사람들과 함께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에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갈렙의 모범을 따르는 지파는 없었습니다. 특히 요셉 자손들은 쫓아낼 능력과 힘이 있었음에도 일부러 쫓아내지 않고, 오히려 가나안 족속을 종으로 삼고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여호수아를 찾아가 부당한 요구를 합니다.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심으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수 17:14)

이는 명백한 원망과 불평의 소리였습니다. 요셉 자손인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는 각각 분배받은 땅이 두 지파가 살기에는 너무 좁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다른 지파들은 불만이 있어도 조용히 있었는데, 유독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를 찾아온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호수아를 최후의 보루, 믿는 구석으로 여겼습니다. 같은 핏줄이니 원망하고 떼를 쓰면 더 좋은 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착각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 (수 17:15)

여호수아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이미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을 쫓아낼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올라가기만 하면 갈렙에게 은혜를 주신 것처럼 요셉 자손에게도 분명히 은혜를 주실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이쯤에서 요셉 자손이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가야 마땅했지만, 그들은 또 다른 핑계를 들고 나왔습니다.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베드산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수 17:16)

이제는 적들이 철 병거를 가지고 있다며 핑계를 댔습니다. 마치 미리 준비해 온 시나리오처럼, 이런 핑계거리로 같은 집안 사람인 여호수아의 동정을 얻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의 답변은 단호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여야 할 것이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수 17:17-18)

가나안 족속의 철 병거는 새로운 위협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중부, 남부, 북부를 차례로 정복할 때도 그들은 철 병거로 대항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와서 그것을 핑계로 삼는 것은 변명에 불과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스스로 개척하라. 올라가서 너희의 문제를 해결하라."

요셉 자손의 진짜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보다 여호수아를 더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13장 6절에서 "내가 그들을 쫓아내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도, 그 약속은 붙잡지 않고 같은 혈족인 여호수아를 최후의 보루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려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보다 더 신뢰할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붙잡아야지 사람을 붙잡으면 함께 넘어지고 함께 실패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시선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나를 믿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요셉 자손의 또 다른 문제는 은혜를 은혜 되게 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말했듯이 그들에게는 이미 "큰 권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자체가 큰 권능이요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 은혜를 믿고 일어나면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를 주십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다 옥에 넘기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 사람은 이방인을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지만 은혜를 더욱 은혜 되게 만든 것은 바울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열심을 다해 안디옥 교회에서 가르치고, 1차 2차 3차 선교여행을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고린도에서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다짐하고, 연보를 예루살렘에 전달한 후 감옥에 갇혔지만 다시 로마로 향했습니다. 옥중서신을 쓰면서도 스페인 선교를 꿈꾸었습니다.

항상 최선을 다해 "이방인을 위하여 택한 하나님의 그릇"이라는 말씀을 붙잡고 경주했습니다. 만약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에 안주하며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은혜받은 자들입니다.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열심입니다. 최선을 다해 경주하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과 직분을 어떻게 하면 더 성실하게 감당할 수 있을지 기도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오늘도 그 산지를 향해 올라가면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 자손들은 하나님의 약속보다 여호수아라는 인간적 관계를 더 신뢰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우리의 궁극적 의지처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피난처요 힘이 되십니다.

둘째, 받은 은혜를 은혜 되게 하려면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큰 권능"을 실제로 경험하려면 믿음의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바울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최선을 다해 응답할 때 은혜가 더욱 큰 은혜로 나타납니다.

셋째, 스스로 개척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스스로 개척하라"는 명령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담대히 전진해야 합니다. 핑계와 변명 대신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며, 받은 은혜를 가지고 맡은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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