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9장

성경
여호수아

차별 없는 하나님의 공정

여호수아 19장

인간 사회의 한계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경제 체제부터 개인의 자유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공산주의는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를 원칙으로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반면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시합니다. 100여 년간 지속된 체제 경쟁에서 어느 사회가 더 우월한지는 이미 역사가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어떤 제도와 사회도 공정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완벽한 사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 사회는 출생 시부터 출신 성분이 평생을 좌우하며, 혁명 과업에 대한 충성도와 출신 성분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 역시 진정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부모의 경제력과 권력이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어떤 사회도 완전한 공정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공정하시고 정의로우시며, 그 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야곱의 편애가 남긴 상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두 지파 구성은 그들의 조상 야곱의 복잡한 가정사에서 비롯됩니다. 야곱은 네 명의 부인을 통해 열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라헬이었으나, 외삼촌 라반의 계교로 먼저 레아와 혼인하게 되었습니다.

야곱과 레아 사이에서는 여섯 명의 아들이, 야곱과 라헬 사이에서는 요셉과 베냐민이 태어났습니다. 또한 라헬의 몸종 빌하를 통해서는 단과 납달리가, 레아의 여종 실바를 통해서는 갓과 아셀이 태어나 총 열두 아들이 야곱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중에서도 요셉을 지나치게 편애했습니다. 이러한 편애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형 에서를 만날 때였습니다. 밧단아람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에서가 400명의 장정을 데리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한 야곱은 자신의 가족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가장 앞에는 두 여종과 그들의 네 자녀인 단, 납달리, 갓, 아셀을 배치했습니다. 두 번째에는 레아와 그의 여섯 아들들을, 마지막 후미에는 라헬과 요셉을 두었습니다. 이는 분명히 가장 사랑하는 요셉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 순간 맨 앞에 선 여종의 자녀들이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어머니는 비록 몸종 출신이었지만 나 역시 똑같은 아버지의 자식인데, 왜 나를 총알받이로 내세우는가?" 이러한 상처와 분노가 결국 요셉을 향한 형제들의 미움으로 이어졌고, 그를 이집트에 팔아버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사람은 이처럼 자기가 낳은 자녀까지도 차별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아끼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보이지 않게 차별하고 공정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조상 야곱조차 이러한 인간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공정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가나안 땅을 분배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여종이 낳은 자녀의 지파라고 해서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열두 지파 모두에게 동일하게 기업을 분배해 주셨습니다.

먼저 요단강 동편에서 세 지파가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였습니다. 주목할 점은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장남 르우벤 사이에 여종의 아들 갓이 동일한 대우를 받으며 기업을 분배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요단강 서쪽에서 여종이 낳은 세 지파가 또다시 공정하게 땅을 분배받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섯째로 아셀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수 19:24)

아셀은 실바가 낳은 아들의 후손으로, 차별 없이 기업을 받았습니다.

"여섯째로 납달리 자손을 위하여 납달리 자손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수 19:32)
"일곱째로 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수 19:40)

단과 납달리는 빌하가 낳은 자녀들로, 이들 역시 동일한 원칙에 따라 기업을 분배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완전한 공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제물을 많이 가져오는 자를 더 사랑하셨다면, 예배를 성실히 드리는 자를 더 편애하셨다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보시고 차등을 두셨다면 과연 우리 중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인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사랑하시고 아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시고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그 보혈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기회와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결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유대인 지역에서, 칠병이어의 기적은 이방인 지역에서 베푸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도 "하나님의 의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고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완전한 공정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신과 신분을 가리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사랑하시며 공정하게 대하십니다. 여종의 자녀든 정실부인의 자녀든 차별 없이 기업을 주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공정함을 우리는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둘째, 차별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차별 없는 복음을 받아 구원받은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에서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을 구별하며 차별하여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야곱은 자녀들을 차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지파들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동일하게 기업을 분배해 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차별받지 않은 은혜를 입었으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동일한 사랑을 베풀어 주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믿음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정한 사랑의 능력을 허락받아, 우리 자녀들을 대할 때도,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을 대할 때도,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도 차별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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