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위한 희생
여호수아 20장
현대 사회의 이기주의
가끔 뉴스를 통해 자기 지역에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시위를 목격하게 됩니다. 그런데 혐오시설이라고 불리지만 사실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는 반드시 필요한 시설들입니다. 화장터나 장애인 교육시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세워지면 언젠가 나도 이용하게 될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 동네만은 안 된다는 논리가 지배적입니다.
이러한 사회 현상을 님비(NIMBY)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낫 인 마이 백야드(Not In My Backyard)', 즉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이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 현상을 비판하지만, 정작 이런 상황이 내 문제가 된다면 사람들은 결코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얼마 전 장애인 교육시설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하는 안타까운 장면을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내 문제가 아니면 모두 나 몰라라 하며 반대부터 하는 이런 사회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언젠가 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공동체 의식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나도 언젠가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우리 자녀도 그런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죽어서 화장하게 될 때 가족들이 편리하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이런 문제들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도피성의 의미
오늘 우리는 바로 이런 관점으로 본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고 지파별로 기업을 분배한 후, 하나님께서는 과거 모세에게 명하셨던 도피성 제정을 여호수아에게 다시 한 번 상기시키십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하여 정하라" (수 20:1-2)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은 "너희를 위하여 정하라"는 말씀입니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백성 중 특정한 몇 사람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위한 제도라는 뜻입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 말씀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살인자를 보호하는 도피성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위한 것일까요? 오히려 그런 곳은 혐오시설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십니다.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수 20:3)
사람들은 이런 일이 자신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인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전제를 제시하십니다.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살인이 아닌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가 전혀 계획하지 않은 예상치 못한 일들을 수없이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부지중에 사람을 죽이는 사고가 평생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구들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당장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복수심에 불타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족을 죽인 자를 내 손으로 직접 처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 피의 보복자가 언젠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지중에 살인한 자를 보호하는 것은 2차 피해를 방지하고, 또 다른 피의 보복자가 생기는 것을 미리 차단하는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도피성을 만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도피성은 특정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안전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섯 도피성과 공동체의 순종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명령을 여호수아를 통해 다시 강조하셨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와 함께 전 지역에 걸쳐 여섯 개의 성을 도피성으로 지정했습니다.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과 여리고 동쪽 요단 저편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수 20:7-8)
주목할 점은 도피성이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나 외딴곳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도시들을 도피성으로 지정했으며, 부지중에 살인한 자는 누구든지 가장 가까운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그런데 입장을 바꾸어 당시 그 성에 살고 있던 주민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비록 부지중에 저지른 일이라 하더라도 살인자는 살인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성으로 피해 옵니다. 그들과 함께 같은 동네에서 생활하며 밥을 먹고 일상을 공유해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하필 우리 성이 도피성으로 지정되어야 하는가? 왜 이스라엘 공동체는 내가 사는 곳을 도피성으로 만들었는가?" 충분히 시위를 하고 불만을 제기할 만한 상황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는 이 상황을 기꺼이 수용했습니다. 재판을 받기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했습니다.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수 20:6)
재판이 끝나거나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살인자와 함께 생활해야 하는 여섯 성읍의 주민들,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고 희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깊이 깨닫고 배워야 할 교훈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은 쉽게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에는 봉사하는 사람이 적고 헌신자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먼저 헌신하고 봉사하면 될 일인데, 자기는 힘들고 어려운 일은 피하면서 교회에 봉사자와 헌신자가 없다고 불평하기는 쉽게 합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지중에 살인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제도가 있어야 하고,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만 하면서 정작 자신의 거주지를 도피성으로 내어주기는 싫어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과 생각이 일치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언행일치의 완벽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이 부패하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며 저마다 손가락질하고 냉소적으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직접 성전에 들어가셔서 상을 뒤엎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과 장사하는 자들을 모두 내쫓으셨습니다. 지위가 높아서도, 권력이 있어서도 아닌, 오직 의로우신 마음으로 직접 행동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본도 보여주셨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기도가 부족하다, 교회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기도하지도 않고, 일하지도, 봉사하지도 않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는 희생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도피성은 특정 개인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안전망이었습니다. 나도 언제든지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해 개인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피성이 필요하다고 말만 하지 않고 실제로 자신들의 성읍을 기꺼이 내어주었습니다. 우리도 교회와 사회를 비판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 자신이 헌신하고 봉사하는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여섯 도피성의 주민들은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불평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그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과연 나는 얼마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있는지, 나의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성찰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불편한 것을 내가 먼저 감당하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먼저 손을 내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