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4장

성경
여호수아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만 섬기라

여호수아 24장

모방의 위험성

인간에게는 누구나 다른 사람을 모방하고자 하는 타고난 본능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입모양을 세심히 관찰하며 말을 익히고 따라 하며, 주변 어른들의 행동 양식을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화 과정을 거쳐나갑니다. 이는 분명히 모방 기능의 긍정적이고 건전한 측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러한 모방의 본능과 충동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누군가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신도 그와 같은 성공을 이루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그 사람의 성공 비결과 방법론을 무작정 모방하고 학습하려 합니다. 심지어는 그 사람의 사소하고 개인적인 생활 습관까지도 세세하게 따라하려 합니다. 어떤 음식을 즐겨 먹는지, 어떤 취미 활동에 몰두하는지, 어떤 스타일의 옷을 선호하는지 등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까지 관찰하고 배우며 모방하려 합니다. 성공에 대한 열망과 욕구가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잘 어울리는 옷이 내 체형에는 전혀 맞지 않는 것처럼, 타인의 성공 방식을 무분별하게 따라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 접근하다 보면 자신 고유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핵심적인 가치들까지 파괴하여 결국 더 큰 실패에 빠질 위험성이 훨씬 높습니다.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선진국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 때문에 앞서 나간 강대국들의 각종 제도와 시스템을 비판적 검토 없이 무작정 도입하려 합니다. 우리도 하루빨리 그들과 같은 선진국 반열에 오르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접근으로는 결코 진정한 의미의 좋은 나라, 건강한 국가를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각 나라마다 고유한 역사적 배경과 현재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여건과 상황이 모두 다릅니다. 이러한 구체적 현실을 깊이 고려하지 않고 단지 겉보기에 좋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외국의 제도를 성급하게 도입한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화려함과 성공에 현혹되어 세속의 가치관과 방식을 무분별하게 모방하고 따라간다면, 그것은 영적 파멸로 이어지는 위험한 길입니다.

여호수아의 마지막 당부

바로 이런 이유로 오늘 말씀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의 생애 마지막 고별 설교를 통해 매우 중요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화려함과 성공에 현혹되지 말 것을, 세상에서 보기에 좋아 보이고 부러워 보이는 성공의 길을 무분별하게 따라가다 보면 결국 너희도 우상을 숭배하는 타락한 민족이 될 수밖에 없으니, 결단코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엄중하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23장과 24장은 모두 여호수아의 감동적인 고별 설교입니다. 평생을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던, 하나님 앞에서 충성과 헌신의 삶을 살아온 하나님의 충실한 종 여호수아가 자신의 지상 생애 마지막에 전하는 따뜻하면서도 준엄한 말씀이자, 우리가 마음을 다해 집중하며 들어야 할 귀중한 영적 유산입니다.

23장에서는 "오직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셨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고백의 메시지를 전했고, 오늘 24장에서는 우상 숭배의 위험성과 하나님만을 온전히 섬겨야 한다는 신앙의 순수성에 관한 말씀을 강력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수 24:14)

"하나님을 섬기되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기라." 이 명령의 핵심은 마음이 둘로 나뉘어지거나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한마음으로, 분산되고 흩어진 마음이 아니라 완전히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 한 분께만 온전히 집중하고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두 문명의 우상

그렇게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상 숭배를 완전히 끊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여전히 두 종류의 우상이 은밀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강 저쪽"에서 그들의 조상들이 대대로 섬겨온 우상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강 저쪽"이란 갈대아 우르 지역, 즉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의 시대부터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가리킵니다. 바로 그곳에서 발생하고 번성했던 각종 우상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은밀히 섬기며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겉보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외형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의 마음 깊은 곳과 가정의 은밀한 공간에서는 여전히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권 사람들이 숭배하고 있던 그 우상들을 계속해서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애굽에서 섬기던 우상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4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집트 땅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거주했습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의 조상들은 이집트 사람들이 숭배하던 다양한 우상들에 깊이 노출되었고 실제로 섬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인 현재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전히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그 영향력 아래서 이집트의 우상들을 마음속 깊이 품고 있었습니다.

"강 저쪽"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이집트에서 섬기던 우상들 사이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이 두 지역 모두가 인류 문명의 찬란한 발상지였다는 점입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요람이었고, 이집트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 고대 문명의 중심지였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두 문명권의 화려한 문화와 찬란한 문명, 그리고 압도적인 국력과 부강함을 깊이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언제쯤이면 저 강대하고 부유한 나라들과 같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렇게 광야를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족이 아니라, 우리도 저 문명국가의 백성들처럼 풍요롭고 부유하게, 안정되고 번영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과연 그 비결이 무엇일까?"

그러던 중 그들의 시선이 그 강대국들이 섬기고 있는 우상들에게 고정되었습니다. "혹시 우리도 저 우상들을 섬기면 어떨까? 우리도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그 신들을 섬기고, 그들의 종교적 관습과 의식을 따라 행하면, 그들의 신이 우리에게도 복을 내려주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겉으로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각 가정마다, 각 개인마다 은밀하게 메소포타미아의 우상들과 이집트의 우상들을 함께 소유하고 숭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히 이중적이고 분열된 신앙 생활이었습니다.

백성들의 각성과 언약

이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여호수아는 자신이 하나님 나라로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준엄한 경고를 전합니다. "너희가 이 문제를 지금 당장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앞에 온전한 백성으로 설 수 없다"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여호수아의 이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깊은 양심의 가책과 영적 각성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중적이고 분열된 신앙 상태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다음과 같이 분명한 결단을 내립니다.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하는지라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수 24:24-25)

이처럼 진심으로 회개하고 결단한 백성들과 함께 여호수아는 새로운 영적 출발을 위한 구체적인 율례와 법도를 제정합니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언약이 후대에까지 영원히 기억되고 지켜질 수 있도록 큰 돌을 세워 언약의 증거물로 삼습니다.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우고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라 그런 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수 24:26-27)

여호수아가 이처럼 돌까지 세우며 확실한 증거물을 남기는 것은, 인간의 연약함과 변덕스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훗날 다시 마음이 흔들리고 유혹에 빠질 가능성을 염려하여, 이 돌이 영원한 증인이 되어 그들의 신앙적 다짐과 언약을 상기시켜 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깊은 반성과 각성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고, 마땅히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의 마음과 관심은 여전히 세속적인 가치와 목표에 크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세상에서 크게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성공 비결과 방법론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에 따라 살아갈 때만 참된 성공과 복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수아가 23장에서도 분명하게 선언한 것처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셨다. 너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순종하며 살아간다면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아내는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세상이 추구하고 이루어낸 성공의 방식과 기준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세속적이고 일시적인 성공에 불과합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나일강 문명, 이집트 문명 등은 모두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 건설한 문명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신다면, 그 어떤 인간의 문명보다도 훨씬 더 위대하고 강력하며 영속적인 나라와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때 우리는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아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초자연적이고 위대한 능력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영적 능력이 부족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온전한 마음과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주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고 "안 된다, 불가능하다"고 체념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아직까지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섬겨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결론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소중한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마음이 둘로 나뉘지 않고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서 하나님편에 굳건히 서기만 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수아가 마지막 유언으로 당부한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분열되지 않고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 앞에 설 때, 그 옛날 역사 속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실 줄을 확신합니다.

둘째, 세상 문명의 성공을 동경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 사람들이나 나일강 문명권 사람들의 화려한 성공과 번영을 부러워하며 동경한 나머지, 그들의 우상을 은밀히 가져와서 섬기는 어리석고 분열된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의 원칙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참된 성공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때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서고 그 말씀을 굳게 붙잡고 살아감으로써,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아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영적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진정한 성공과 복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때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귀한 말씀의 교훈을 마음 깊이 새기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축복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가시는 신실한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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