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일관성
열왕기상 15장
부모가 자녀들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가장 힘든 일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한 번 정한 원칙은 상황이 바뀌더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상황이 항상 생기고 돌발적인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원칙이 무너지면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엄마의 말이 다르고 아버지의 원칙이 다르면 자녀들은 혼란을 겪게 되고 자기가 편한 사람에게 달려갑니다. 그래서 가정은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데, 그 원칙을 붙잡고 가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어찌 가정만 그렇겠습니까? 모든 공동체가 그러한데, 국가는 원칙을 세우고 나가는 것이 더더욱 중요한 공동체입니다.
국가의 지도자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일관된 방향을 가지고 나아가면 처음에는 서로 힘들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해집니다. 이 원칙의 틀 안에서만 살아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납득할 수 있는 원칙, 그 일관된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면 공동체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우상숭배의 계승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과 같이 우상숭배자였습니다. 어머니는 암몬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서 배운 우상숭배를 르호보암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르호보암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아비얌이 왕이 됩니다.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왕상 15:3)
솔로몬, 르호보암, 아비얌 이렇게 해서 3대에 걸친 왕들이 역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상숭배자였고 왕이 우상숭배에서 떠나지 않으면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당연히 우상숭배자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비얌의 통치 기간은 삼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비얌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아사가 왕이 됩니다.
정직한 개혁
아사는 아버지,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왕상 15:11)
여기 '정직하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야사르(יָשַׁר)'라는 단어입니다. 야사르는 곧은, 일관된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가 도덕적으로 정직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라는 소극적인 개념이 아니라 일관성을 가지고 곧은 마음을 가지고 항상 바르게 행동했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일관적인 원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굉장히 많습니다. 아사가 곧은 마음을 가지고 일관되게 행동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기준을 붙잡고 살아갔다는 뜻입니다. 이제 성경은 그가 어떻게 정직하게 행동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왕상 15:12)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냈다는 말은 동성애자들을 유다땅에서 다 축출했다는 뜻입니다. 이건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차별받는다고 저항하기 때문입니다. 유다공동체, 하나님께서 세우신 말씀의 공동체는 정확하게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레위기 18장 22절 말씀을 보면 동성애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사가 붙잡았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이 말씀을 가지고 어떤 상황 환경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말씀을 적용하고 지켜나갔습니다. 남색하는 자들을 쫓아낸 것은 자기 기준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었는데, 우상을 다 회파하고 우상숭배자들을 내어쫓고 조상들이 만든 우상까지 다 깨부수는 일이었습니다. 이건 오늘 우리가 볼 때는 속 시원한 개혁이었지만 당시 아사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솔로몬부터 비롯된 우상숭배가 르호보암으로, 아비얌으로 지금 삼대째 우상숭배자들이 왕이 되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왕만 우상숭배자가 아니고 이미 왕실에 들어와 있는 기득권자들은 모두가 다 우상숭배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정략결혼을 통해서 데리고 들어온 이방의 공주들, 또 그들과 함께 생산된 왕자들, 자신의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일가 친지들, 외척들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다 우상을 섬기고 있는데, 아사 혼자 "나는 일관되게 하나님을 섬기겠다. 그래서 당신들이 섬기는 우상을 다 깨부수겠다." 결국 왕은 외로운 존재고 혼자 남는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상을 깨부수고 우상숭배자들을 내쫓는 일은 그냥 기록된 단 한 줄의 말씀으로만 읽을 수 없는 일입니다. 상황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사는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즉, 일관된 사람이었고 곧은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말씀, 그 당시의 성경 말씀은 모세오경인데 십계명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다 도배되어 있지 않습니까? 아사가 붙잡았던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철저한 적용
거기서 아사는 더 어려운 일을 행합니다.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왕상 15:13)
왕이 이렇게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왕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설마 나에게까지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 마아가도 역시 우상숭배자였고 그 어머니가 아세라상을 만들었습니다. 아사가 왜 고민하지 않았겠습니까? 자기를 낳아준 혈육이고 어머니인데, 그런데 여기서 멈춰버리면 지금까지 그가 한 모든 개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태후의 위를 폐합니다. 어머니를 태후의 자리에서 내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가 만든 우상을 기드론 시냇가에서 찍어버리고 불태워버렸습니다. 왜 굳이 왕궁 밖을 벗어난 시냇가에서 이렇게 했느냐? 보라고 하는 일입니다. 백성들이 보라고. 일관되고 곧은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개혁을 추진해 나갑니다. 이것이 아사의 개혁이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되고 하나님 말씀이 우리 삶에 근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항상 자기 좋은 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내 몸이 편한 대로, 내 생각이 편한 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물질 가는 대로 따라가게 되어 있고 권력이 가는 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렇게 살아라 하는 기준이 하나님 말씀 아닙니까?
둘째는 영적인 일관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아사는 철저하게 말씀을 기준으로 동성애자들을 내쫓고 우상숭배자들을 내쫓고 특히 그의 어머니까지 이런 일을 행했을 때 고민했지만, 일관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인정받습니다.
셋째는 누구에게나 또한 어떤 상황에서나 하나님 말씀이 철저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나에게는 하나님 말씀을 적용하지 않고 남에게만 적용하고, 나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타인에게는 한없이 까다로운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에게도 일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고 곧은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철저하게 말씀을 잣대로 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보시는 말씀의 잣대에 속하는 자, 하나님 보시기에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