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9장

성경
열왕기상

세미한 소리

열왕기상 19장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크고 힘이 세고 시각적으로 보기에 좋은 것을 선택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굉장히 좋아하는데 영화, 드라마의 원작이 되는 소설을 읽거나 글을 보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글은 입체적이지 않고 평면적이고 압도적인 귀를 즐겁게 하는 사운드도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화면은 입체적이고 사운드는 압도적이어서 귀를 즐겁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는 것을 굉장히 즐겨합니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적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지금 내가 처한 삶이 비루하고 누추하고 어디 돌파구가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기적이 일어나면 단번에 뚫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좋아합니다. 단번에 이 답답한 현실을 뒤집고 바꿀 수 있는 기적, 이 기적이 내 인생에 일어나기를 신앙인들은 기대하고 바랍니다.

하지만 기적 자체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순간적인 즐거움은 줄 수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놀라움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적 자체가 사람을 근본적으로 뿌리부터 완전히 바꾸어 내지는 못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사람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고 살아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삐뚤어진 우리를 꾸준히 교정시키고 바꾸어 나가고 결국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말씀 자체만이 기적이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승리 후의 절망

엘리야는 놀라운 승리를 경험합니다. 갈멜산에서의 승리는 정말 기념비적이었습니다. 850대 1로 싸웠지 않습니까? 불을 기다리면서 물을 부었습니다. 송아지를 잡아 각을 뜨고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고 그 위에 각 든 송아지를 올려두고 12통 물을 갖다 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렸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도망갑니다. 백성들이 그들을 잡아 처단합니다. 이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엘리야는 아마 기대했을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엘리야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는 장면을 상상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했다"고 이제 이 놀라운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니 "진실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바알은 헛것이라"고 아합과 이세벨이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고 북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줄로 알았습니다. 큰 기대를 가졌습니다. 이제는 해피엔딩이요,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너무나 다르게 일이 전개됩니다.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왕상 19:1-2)

아합은 현장을 직접 보았습니다. 현장을 보고 이세벨에게 달려가서 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전해줍니다. 하지만 이세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내일 이맘때까지 엘리야의 생명을 빼앗아 버리겠다. 지금껏 너를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이제 너를 죽여서 먼저 죽은 바알의 선지자들, 그들의 원수를 갚겠다." 오히려 이렇게 더 악한 전갈이 그에게 찾아옵니다.

이제 엘리야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탈진합니다. 영적 무기력에 빠집니다.

"그가 자기 생명을 위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왕상 19:4)

"이제 더 이상 못 하겠습니다. 이젠 넉넉하오니" 이 말은 "저는 할 만큼 다 했습니다. 못 하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다했는데 결과가 좋지 못하면 무릎이 꺾이고 일어날 힘조차 없지 않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못 하겠다고 탈진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질문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서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 19:9)

하나님 보시기에 엘리야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차분하고 부드럽게 그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의 질문에 대한 엘리야의 응답입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특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왕상 19:10)

엘리야가 죽음을 두려워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도 더 이상 어떻게 무엇을 더 보여주어야 하는지 엘리야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세미한 소리의 교훈

이런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그를 교육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는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왕상 19:11)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숩니다. 기적 아닙니까? 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불었던지 산을 가를 정도가 되고 바위를 부술 정도가 되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납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바람과 지진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나가시고 여호와가 보이지 않습니다.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왕상 19:12)

불이 있었으나 불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람과 지진과 불, 기적과 초자연적인 사건들, 이런 사건들 이후에 배후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좋아하는데 기적이 주는 메시지를 듣지 못합니다. 그것은 아합과 이세벨뿐만 아니라 엘리야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기적을 보았고 그 기적이 아합과 이세벨을 변화시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적 자체가 주는 메시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갈멜산 사건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거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단 위에 번제물을 올려놓았고 번제물 위에 불이 내렸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제단은 얼마나 예배를 드리지 않았던지 제단 자체가 다 붕괴되어 있었고, 무너져 내려 있었습니다.

무너진 제단에는 번제물을 올려놓을 수 없고 번제물을 올려놓을 수 없으면 불도 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바라면 예배가 회복되어야 됩니다. 이스라엘의 예배가 다 무너져 내렸는데 예배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박살이 났는데 갈멜산에서 번제단 하나만 온전하게 다시 수축하고 지금 이스라엘 전체가 다시 새롭게 되기를 원하느냐? 하나님은 오히려 이 질문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갈멜산에서 번제단 하나를 수축한 것으로 끝내지 말고 전 이스라엘의 모든 번제단을 새롭게 수축하고 예배를 회복하라. 이것이 기적이 주는 메시지입니다. 엘리야는 기적이 주는 메시지를 못 본 것입니다.

기적의 참 메시지

신약성경, 사복음서에 나오는 기적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중요한 것이 오병이어 기적 아닙니까?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의 핵심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아이의 작은 도시락입니다. 아이가 먹으면 자기 배부르는데 끝날 도시락이지만 그 도시락을 예수님의 손에 건네줍니다. 예수님은 그 도시락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십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기적의 메시지를 못 봅니다. 나에게 가지고 있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주께 가지고 나와서 올려드리면, 기적이 일어나고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데 내 것이라고 숨겨두고 가지고 있고 그것만 붙들고 사는 이 시대의 현실을 질타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 배고픔을 해결하시고 당장의 먹거리를 풀어 주시는 예수님의 능력만 봅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라다니며 왕 삼으려고 했습니다. 기적은 보는데 기적이 주는 세미한 음성은 못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기적을 보여주시고 삶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세미한 소리는 못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생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합니다. 계속해서 똑같은 일만 반복되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주신 기적, 그 이면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절망과 낙심과 무기력에 빠지지 않습니다. 메시지는 우리를 일어나게 하고 힘내게 하고 다시 용기를 가지게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적 자체보다 기적이 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 같은 압도적인 기적보다 그 후에 오는 세미한 소리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음성은 세미한 소리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기적을 쫓아다니기보다 기적이 주는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둘째는 승리 후에 오는 영적 무기력을 경계해야 합니다. 엘리야처럼 큰 승리를 경험한 후에도 절망에 빠질 수 있습니다. 기적 자체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주신 기적들의 참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갈멜산의 기적이 무너진 제단의 회복을 의미했듯이, 우리 삶의 기적들도 더 깊은 영적 회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무기력에 빠지지 말고 메시지를 붙잡고 말씀을 붙잡고 다시 힘내어 세상 가운데로 전진해야 합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주신 기적, 그 이면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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