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장

성경
열왕기상

때를 기다림

열왕기상 1장

세상의 모든 일 중에는 자기 스스로를 알려야 하는 일도 있고, 남들이 자기가 한 일을 알아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취업을 위한 면접이나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상세하게 말하고 기록해야 합니다. 내가 왜 이 회사에 지원했는지, 나는 이 회사에 적합한 인재인지, 나는 이 회사를 위해서 어느 정도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원하는 회사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일에 소극적이면 일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집니다.

반면에 어떤 당의 대선 후보가 되어서 국민을 위한 머슴으로 일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결정적인 순간에는 국민들의 선택을 기다려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기미가 보이면 국민들은 교만한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에 표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잠잠히 때를 기다리고, 국민들이 자기를 인정해 줄 때까지, 정말 적합한 사람이라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아줄 때까지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앞뒤가 바뀌고 순서가 바뀌면 그를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아도니야가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그가 스스로 자기를 높였기 때문에 결국은 수치를 당하고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다윗의 노년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왕상 1:1-2)

천하의 다윗도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입니까?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이후로 그는 전쟁터를 누비며 용맹함을 과시했습니다. 사울에게 쫓겨서 광야를 십수 년 쫓겨 다닐 때도 그는 한 번도 쓰러진 적이 없었습니다. 압살롬의 반란 때도, 그 이후에도 그는 항상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적진을 헤집고 다니고 담장을 뛰어넘는 위대하고 용맹스러운 장수였습니다.

하지만 그랬던 다윗도 세월의 흐름과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습니다. 이제 언제 하나님 나라에 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물밑에서 왕위 계승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지 않겠습니까? 다윗의 아들들, 왕자들은 모두가 다 어머니가 다릅니다. 각자 왕이 되기 위해서 그들은 투쟁하고 또 투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그 투쟁 과정에서 세 명의 아들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첫째 아들 암논과 셋째 아들 압살롬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둘째 아들 길르압은 성경의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가 보이지 않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그 이후로 이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도니야의 교만

이제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이런 상황에서 자기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왕상 1:5)

아도니야는 다윗이 낳은 넷째 아들입니다. 아도니야가 스스로 자기를 높여서 "내가 왕이 되리라" 했습니다. 그가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사실 그가 이렇게 생각할 만도 합니다. 자기 위로 세 명의 형들이 있었는데 사라지고 없지 않습니까? 죽었거나 어떤 이유로 보이지 않거나 해서, 그는 자연적으로 "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지금 왕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고 자기 스스로를 높여서 "내가 왕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까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까지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왕상 1:6)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아버지 다윗과의 관계도 좋았습니다. 아버지가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습니다. 즉 그는 이것을 아버지가 그를 인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인정했기 때문에 당연히 아버지의 속마음도 나를 왕으로 세울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왕상 1:7)

이제 자기 속마음을 다윗의 최측근들에게 말합니다. 그러자 그들도 아도니야를 돕습니다. 이것이 아도니야의 착각을 더욱 부추기게 됩니다. 요압이 어떤 인물입니까? 실질적인 군대의 최고 권력자가 아닙니까? 군사령관입니다. 아비아달은 제사장입니다. 한 손에는 군대 권력을, 한 손에는 종교 권력을 손에 쥐고, 아버지가 자기를 지지한다고 믿었으니 스스로 높여서 왕이 되겠다고 생각할 만도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기서 아도니야가 심각하게 빠뜨린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높여주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 다윗을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다윗이 죄짓기 전에는 다윗과 직접 소통하셨고, 죄지은 후에 그가 회개한 이후에도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아도니야를 세우시든지 다윗을 통해서 세우시든지, 그는 진짜 왕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를 높여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잘못한 것입니다. 심각한 착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다윗이 왕이 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왕이 될 만한 인물이었습니까? 그는 이새도 인정하지 않는 막내아들이었습니다. 먼지 같은 아들, 보이지 않는 티끌 같은 자라 해서 아버지 이새도 하찮은 막내라고 불렀습니다. 그랬던 다윗을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사무엘이 그의 집에 기름 부으러 왔을 때 다윗은 존재조차 없었지만, 하나님은 위의 형들을 모두 다 폐하시고 "아직도 남은 아들이 있느냐?" 하시며 하나님이 직접 그 아들을 찾아오셨지 않습니까? 이쯤 되어야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이 되고, 그가 왕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야는 그런 과정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세우실 생각이 없는데 스스로 자기를 높여서 자기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하니, 그가 결국 마지막에 굴욕당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서 선택한 사람은 아도니야가 아니라 솔로몬이었습니다. 결국 솔로몬이 왕이 되고 난 이후에 아도니야는 자기가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을 두려워하여 지금 제단 뿔을 잡고 말하기를 솔로몬 왕이 오늘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 솔로몬이 이르되 그가 만일 선한 사람일진대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려니와 그에게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 하고 사람을 보내어 그를 제단에서 이끌어 내리니 그가 와서 솔로몬 왕께 절함에 솔로몬이 이르기를 네 집으로 가라 하였더라" (왕상 1:51-53)

이렇게 굴욕당하고 말았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자, 하나님이 세우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자는 수치와 모욕과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결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혹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사람들이 몰라 주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하나님이 높여 주실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높여 주셔야 그것이 진짜입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므로 조바심을 내고 내 스스로 내 이름을 내려고 하다 보면 무리수를 두게 되고, 이것이 결국 자신에게는 부끄러움과 수치로 돌아오게 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아도니야처럼 스스로 자기를 높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높여 주실 때까지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몰라 준다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높여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아도니야는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으로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을 스스로 추진해서는 안 됩니다.

셋째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선행을 행하고 주의 일에 열심히 하여도 사람들이 몰라 준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하나님이 위로하시는 그것으로 충분한 인생, 그것으로 충분한 하루가 되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전심을 보이고,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 앞에 온전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때를 아시고 적절한 때에 우리를 세우시며 높여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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