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친구
열왕기상 20장
수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과연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진심으로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위해주는 친구가 누구인지 분별하려면, 인생의 위기 상황에서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을 보면 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두 번은 거대한 시련을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그 순간에도 내 곁을 지키며 변함없이 도와주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친구라 할 수 있습니다.
평안할 때는 모든 것이 원만합니다. 어려움이 없을 때는 어디든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에, 어려움이 길어지고 지속되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처럼 결국 하나둘 떠나가게 되고 마침내 홀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결코 나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는 분이 계시니,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창조하시고 지으시며 지금도 돌보고 계시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그러한 성품이 악한 왕 아합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합은 참으로 악한 왕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전체를 바알신앙과 아세라 신앙으로 물들게 한 장본인이었으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핍박했고,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영적 역사를 목격하고서도 끝내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런 악한 사람에게도 인생의 거대한 위기가 찾아옵니다.
"아람의 벤하닷 왕이 그의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이 명이 그와 함께 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그 곳을 치며 사자들을 성 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보내 이르기를 벤하닷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매" (왕상 20:1-3)
아람 왕 벤하닷이 32명의 왕들과 연합하여 북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올라왔습니다. 벤하닷과 32명의 왕들은 아합에게 조공을 요구합니다. 물질은 바칠 수 있었지만, 자녀와 아내까지 사람을 바치라는 요구는 아합으로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신하들을 소집하여 회의한 끝에 이러한 요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때에 벤하닷이 왕들과 장막에서 마시다가 이 말을 듣고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진영을 치라 하매 곧 성읍을 향하여 진영을 치니라" (왕상 20:12)
이제 마침내 전면 공격을 준비합니다. 심각한 문제가 벌어지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바로 이런 순간에 아합에게 남아있는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아합을 도울 수 있는 존재가 과연 누구인지 드러나게 됩니다. 평상시라면 바알의 선지자들이 그의 조언자가 되고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그의 지지자가 되어 인간의 울타리에 둘러싸여서 아합 왕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조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 닥치자, 바알의 선지자는 단 한 명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아세라의 선지자들 역시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 모두는 자신들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각자도생의 길을 택하며 모조리 사라져 버리고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마침내 하나님의 선지자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 아합에게 찾아옵니다.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이르되 누구를 통하여 그렇게 하시리이까 대답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이르되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대답하되 왕이니이다" (왕상 20:13-14)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 선지자를 보내어 아합에게 승리를 약속하시고 전쟁을 수행할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해 주십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그의 곁에 계신 이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아합이 악한 왕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편에서 전쟁의 승리를 도모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아합을 사랑하셔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아합은 참으로 미워할 만한 사람이며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고 악한 인물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죄 없는 사람들이 상처받고 무고한 백성들이 전쟁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되지 않겠습니까?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합을 기뻐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사 아합을 도우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평소에 나를 사랑한다고 여겨졌던 사람들이 인생의 위기가 닥치자 모조리 사라져 버리고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나를 지켜줄 것 같고, 도와줄 것 같은 이들이 아무도 존재하지 않고 남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의지하고 누구를 기대하며 살고 계십니까?
돈이 나를 지켜줄 것 같고, 권력이 나를 돌볼 것 같고, 사람들이 나의 울타리가 되어 줄 것 같지만 돈과 권력과 사람은 모두 가변적인 존재들입니다. 생각해 보시면 돈은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고, 권력도 일장춘몽과 같은 것이며,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번 갈대처럼 마음이 변하지 않습니까? 변하는 것, 가변적인 것들을 우리는 미련하게도 의지하고 기대하며 살아왔습니다.
변치 않는 하나님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지라도, 절대적이신 하나님,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지금도 살아 계셔서 창조하신 주님의 백성들을 이끄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오늘도 나를 지키고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서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람 왕 벤하닷은 한 번의 전쟁 패배로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듬해 다시 군대를 이끌고 올라옵니다.
"해가 바뀌니 벤하닷이 아람 사람을 소집하고 아벡으로 올라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매" (왕상 20:26)
두 번째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때도 마찬가지로 아합을 도운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왕상 20:28)
이때에도 바알의 선지자, 아세라의 선지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각자도생하기 위해 모두 숨어버렸습니다. 결국 아합을 도우신 분은 아합을 세우신 창조주이시고 아합을 지으시며 지금도 돌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는 야곱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고 어떤 경로로 밧단아람에 갔으며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먼 길을 떠납니다.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약속합니다. 나를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시면 이곳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겠습니다. 여기에 정착하겠습니다. 그렇게 서원하고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대로 그를 부자가 되게 하시고 그를 지키시며 돌보시고 안전하게 인도하셨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세겜에 정착하고 숙곳에 우릿간을 짓습니다. 그는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거부가 되어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재산이 그의 가정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그의 딸 디나가 큰 수치를 당하는 것을 그의 부가 막아주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을 학살하는 현장을 그의 물질이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결국 그는 다시 베델로 올라가지 않습니까?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진정한 안전감을 느끼고 참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 베델로 돌아와서야 그는 온전한 평안을 누립니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온전한 기쁨과 평안을 누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시는 이 자리에서 결국 나를 돌보고 지키시는 분,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그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하시며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생의 위기 때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물질과 권력과 사람은 항상 변하는 것이어서 지속적이고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영원토록 변치 않고 어머니 태중에 나를 지으시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지금껏 지키고 돌보고 계심을 고백합니다.
둘째는 우리가 잘못된 것들을 의지하고 살았음을 회개합니다. 우리는 미련하게도 늘 곁에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손길을 외면한 채 세상의 가변적이고 덧없는 것들을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사람을 의지했다가 배반당하고 실망하며 절망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며, 물질을 의지했다가 그것이 사라진 후 패배자의 삶을 살 때도 있었고, 권력을 붙잡았다가 일장춘몽처럼 사라진 권력의 허무함을 뼈저리게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립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를 의지했다가 위기 상황이 닥치자 홀로 버려진 아합처럼 우리가 그렇게 살지 않도록 도우시고, 오늘 이 자리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며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손을 굳게 붙잡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온전한 기쁨과 평안을 누린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며, 결국 나를 돌보고 지키시는 분,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시고 그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하시며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